• ‘제왕’ 인텔 위기에 반도체 업계 지각변동… 파운드리 1위 TSMC 승승장구에 삼성은 ‘절치부심’, 中 반도체 자립 밀어붙이기에 메모리도 따라잡히나

    2020년 09월 제 120호

  • #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건 삼성이 미국 IBM의 최신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위탁 생산하기로 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에서 세계 1위 대만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에는 희소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내세우며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미국이 최근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힘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긴장이 감돌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반도체 칩 전체로 확대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제품 판매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 범위가 아직 불명확해서 일단 제재 대상에 가장 중요한 메모리 부분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TSMC 반도체 공장 내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가 인텔과 삼성전자 등을 제치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절대 강자’였던 인텔이 흔들리며 불안한 1위를 지키고 있는 반면 AMD와 엔비디아 등 팹리스 업체들이 무서운 성장세로 따라붙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시가총액에서 TSMC는 물론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기업 엔비디아에 뒤처지기도 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총 1위였던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파운드리) TSMC에 밀려 1위를 내줬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매출 규모가 삼성전자의 15분의 1에 불과한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기업 엔비디아에 2위 자리마저 내준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기준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 파운드리 점유율 세계 2위, 이미지센서 세계 2위 업체인, 말 그대로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하지만 파운드리 및 팹리스 등 전문 반도체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반도체 업계의 1위(매출 및 영업이익 기준)인 인텔에도 해당되는 모습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흔들리는 ‘공룡’ 인텔

    인텔은 반도체 업계의 ‘제왕’이었다. 창업자 고든 무어의 ‘무어의 법칙(반도체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 증가한다)’을 앞세워 메모리부터 중앙처리장치(CPU), 서버 칩까지 모든 칩의 업계 표준을 제정해왔다. 그러나 이젠 몇 년 전 부도설까지 나돌던 AMD에도 위협받고 있다.

    실제 인텔은 지난 7월 “7㎚(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으로 CPU(중앙처리장치)를 양산하는 일정을 6개월 늦춘다”고 발표했다. 생산공정에서의 기술력 부족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인텔의 경쟁자인 AMD는 약 6개월 전부터 파운드리 업체 TSMC에 주문을 넣어 7㎚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과거의 명성에 기댄 인텔은 지난해 CPU 시장의 84.5%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AMD가 선전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협력관계였던 애플이 더 이상 인텔의 반도체를 쓰지 않겠다고 결별 선언을 한 것도 인텔에 적잖은 타격을 안겼다. 애플과의 결별로 인텔은 50억달러에 육박하는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사정이 이렇자 결국 인텔은 7㎚ 공정을 외주화하기로 결정했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인텔이 TSMC에 위탁 생산을 맡기면서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또 한 번 들썩일 것으로 보인다. 올 1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4.1%를 차지하는 TSMC가 인텔 물량까지 수주하면 2위인 삼성전자(15.9%)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물론 반도체 업계 일부에선 인텔의 외주 생산이 결국 삼성전자에도 긍정적일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5나노 이하 공정에서 인텔이 위탁 생산 업체를 결정하며 TSMC와 삼성을 다시 저울질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CPU가 아닌 제품군의 생산을 삼성전자가 맡을 가능성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시장 전체가 확대되면서 업계 2위인 삼성전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파운드리 생산라인이 들어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TSMC vs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작년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단기간 내에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TSMC는 삼성전자가 18.8%에 그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이 50%가 넘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높다.

    TSMC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30%대에서 올해는 40%대로 올라섰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영업이익률은 20%대다. 반도체 판매 가격뿐 아니라 라인 증설 등 시설투자 여부도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삼성 입장에서 시스템 파운드리 부문 1위인 TSMC가 위협적인 상대가 아닐 수 없는 셈이다.

    TSMC의 행보는 발 빠르다. TSMC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52억7000만달러(약 6조2500억원)의 투자를 승인했다. 이는 TSMC의 올해 투자 지출 목표인 170억달러(약 20조원)의 일부로 5나노 공정의 본격적인 양산 돌입에 맞춰 초미세 공정 설비 확대와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R&D)에 쓰일 예정이다.

    이에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부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시설투자에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인 14조7000억원을 투입해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 역시 10조58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올해 2분기 파운드리 부문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9월에는 경기 평택캠퍼스에 3번째 반도체 생산라인 ‘P3’를 착공한다. 총투자금만 3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생산라인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인텔이 7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의 외주화에 나섰고, 애플은 인텔과 결별하는 등 파운드리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 입장에서는 대만의 TSMC가 과반을 장악하고 있는 이 시장에서 지금이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아직 2라인이 가동되지도 않았는데 3라인 신축에 들어간 것을 보면 이런 분위기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삼성전자의 3차원 적층 기술 ‘X-Cube’를 적용한 시스템 반도체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의 장점을 살려 극자외선(EUV) 7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는 시스템 반도체에 업계 최초로 3D 적층 구조인 ‘X-큐브’ 기술을 적용하는 데도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반전의 계기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패키징은 공정 미세화만큼이나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기술로 삼성전자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IBM이 차세대 CPU를 삼성전자에 위탁 생산하기로 한 것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력을 인정한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수주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운드리’ 육성 전략이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지니 로메티 당시 IBM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이후에도 두 회사는 시스템 반도체 등에서 협력해 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대형 거래선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에서 7나노 공정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TSMC 양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1위 기업을 제쳤다는 평가와 함께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 확대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한다’는 비전을 직접 발표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파운드리, 모바일AP, 이미지센서, CPU·G PU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여갈 수 있는 분야로 파운드리·이미지센서 등이 꼽힌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올 들어 화성사업장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EUV 라인 가동을 점검하는 등 파운드리 사업을 챙기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평택에 파운드리 라인을 조성하기로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10조원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IBM이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서버용 CPU 생산을 삼성에 맡김으로써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이 입증됐다”며 “새로운 고객사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여전히 위협적인 중국의 반도체 야심

    메모리 부문에서도 삼성전자 등 국내 업계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당장 중국 업체의 도전이 거세다. 중국 YMTC는 지난 4월 128단 3차원 낸드플래시 개발 소식을 발표했다. 양산 여부를 떠나 기술 수준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상반기 공개한 것과 차이가 없다. D램 분야에선 CXMT가 올해 말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당국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중심으로 최대 10년간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고 국가주도 펀드를 통해 대대적인 금융 지원에 나서는 것을 골자로 한 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하며 미래 기술 패권을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일각에선 최근 거세지는 미국 견제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 지도부가 ‘기술 자립’ 행보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핵심 부품인 반도체 영역에서 해외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동시에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등 첨단기술과 반도체 산업 간 연계형 발전을 꾀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은 금융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대표적인 금융 지원은 국가주도 펀드를 통한 직접투자 방식과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융통 촉진이다. 앞서 중국은 2014년 반도체산업 진흥을 위해 국유펀드인 ‘국가 집적회로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해 1차로 218억달러(약 26조원)의 자금을 모집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2차로 290억달러(약 34조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또 중국 당국은 반도체 기업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주식시장 상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SMIC는 지난달 ‘중국판 나스닥’으로 통하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과학혁신판(커촹반) 2차 상장을 통해 462억8000만위안(약 9조원)을 조달했다. 중국은 R&D와 인재 육성, 수출입 지원 등에 대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며 ‘반도체 국산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한 오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후발업체의 기술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중국의 추격세가 매서운 만큼 시스템 반도체에선 성과를 못 내는 진퇴양난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A씨는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인텔, 삼성전자 같은 종합 반도체 기업들이 그동안 득세했다면, 지금은 팹리스와 파운드리 업체 등 전문기업들이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최첨단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종합 반도체 업체보다 좁은 독보적인 기술과 영역을 구축한 ‘특화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기업은 물론 정부의 지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