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축제, 하려면 이렇게...슬러시 2017 참관기

최초입력 2017.12.20 18:29:32
최종수정 2017.12.21 10:24:29

<최형욱의 IT 차이나·유럽>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슬러시는 테크크런치가 개최하는 ‘디스럽트’와 함께 전세계 양대 스타트업 컨퍼런스로 꼽힌다. 올해는 지난 11월 30일, 12월 1일 이틀에 걸쳐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됐다. 지난 2016년 2300여개 스타트업과 1100여명의 투자자들이 참석했던 이 행사는 올해 규모가 더 커져 스타트업 2500여개, 투자자 1500여명이 모여 축제를 함께 했다. 우리나라 역시 코트라가 주도해 만든 코리아 파빌리온이나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 콘텐츠진흥원과 같은 각종 기관들을 통해 선발된 70여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투자자를 만나고 네트워크를 맺기 위해 머나먼 북유럽의 끝자락까지 날아와 참석했다.
슬러시 2017에서 관심을 끈 또다른 뉴스는 삼성전자의 전략 혁신 센터장을 맡고 있는 손영권 사장의 참관과 기조 연설이었다.
하만 인수 등 삼성전자의 굵직한 인수 합병과 투자를 맡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 해외 스타트업 행사에 기조 연설자로 나선 것 자체도 이슈이지만 삼성전자가 현 제품군들을 기반으로 향후 데이터라는 부분을 어떻게 접목시키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투자할지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물론 손영권 사장 외에도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이나 게임엔진 개발사인 유니티의 설립자 데이비드 헬가슨, 텐센트의 마틴 라우 회장,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수퍼셀의 일카 파나넨 CEO를 비롯해 중국 스마트폰 회사인 원플러스의 공동 창업자, 중국 공유 자전거 오포의 창업자이자 CEO인 다이 웨이까지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활약중인 다양한 사람들이 연설자로 참여했다. 또 구글 벤처스나 소프트뱅크와 같은 글로벌 투자자들부터 BBC, CNBC 등 각종 미디어 회사까지 스타트업으로 만들어 질 세상을 기대하며 연설자로 참여해 그들의 생각들을 공유했다. 여기에 영국의 황세손인 윌리엄이나 스웨덴의 왕자와 같이 유럽내 황실의 젋은 피들도 슬러시에 참석해 부스를 둘러보고 스타트업이 자국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최근 글로벌 트랜드는 어떤 것들인지 살피기도 했다.

담소중인 일카 파나넨 수퍼셀 CEO와 윌리엄 영국 황세손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인구 550만명에 불과한 소국인 핀란드가 어떻게 11월만 되면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걸까? 더구나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동반 추락했던 핀란드의 IT산업도 어떻게 스타트업 창업 열기를 일으키고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슬러시에 왜 참석하는지 등 떠오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약점을 강점으로, 스타트업이 답이다

전세계 스타트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슬러시의 현 CEO는 대학교에 재학중인 25살의 학생이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슬러시의 CEO의 임기가 끝나면 스타트업을 창업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닌다(슬러시 CEO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핀란드에서는 젊은이나 대학생은 물론이고 놀랍게도 40대 중년들조차도 스타트업 창업에 대해 어색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을 통한 스타트업 창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원래부터 있었다거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노키아가 2000년대 중반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만 해도 대다수 핀란드 대학생들의 목표는 노키아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대다수 핀란드 국민들도 나라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키아를 자랑스러워 했고 핀란드 경제를 영원히 뒷받침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쉴새 없이 투자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 부스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마 제국이 멸망했던 것처럼 노키아도 굉장히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핀란드의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은 물론 대량의 실업 사태까지 겪게 된다. 노키아만 바라보며 취업을 준비했던 젊은 대학생들에겐 이 시기가 절망의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이 오히려 일부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로 작용하고 스스로 창업을 해 어려움들을 극복하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핀란드의 스타트업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슬러시는 이런 스타트업의 시작은 있었으나 지속 가능하게 할만한 원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한 행사다. 사실 핀란드는 스타트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나라가 아니었다. 550만이라는 적은 인구수에 따른 내수 시장의 한계, 주요 유럽의 변방인 북유럽이라는 지리적인 약점, 그리고 노키아라는 걸출한 스타가 무너지면서 더 이상 기술력이 없다는 이미지 등 수많은 어려움과 약점들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2000년대 중반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던 스타트업들의 최신 기술이나 비즈니스 트랜드, 그리고 주요 투자자들의 투자 트랜드와 관련한 핵심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스타트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거나 핀란드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한국과는 달리 정부의 투자 등 지원이 크지 않고 자국내 투자자 역시 많지 않아 스타트업 운영에 필요한 금전적인 부분도 문제로 부상했다.

결국 정부, 관계, 학계, 기업 등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하나 하나의 스타트 업들이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가기보다는 그들을 핀란드로 불러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며 그 결실이 바로 지금의 슬러시라는 행사다. 특히 로비오와 같은 성공한 1세대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알토 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슬러시라는,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타트업 이벤트이자 하나의 스타트업 생태계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발적 참여와 자원 봉사,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작게

슬러시에 직접 참여해보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자원 봉사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다. 슬러시 행사 진행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젊은이들로 쓰레기 분리 수거부터 커피나 물과 같은 음료 제공, 행사장 가이드까지 굉장히 많은 일들을 돕고 있다. 앞서 언급한 슬러시 CEO나 슬러시를 하기 위해 일년 내내 계획하는 사무국 사람들 역시 자발적으로 구성된 대학생 자원 봉사원들이다. 결국 이런 자원 봉사자들은 행사장내에서 단순히 시간을 때우며 봉사 활동에 대한 경력을 쌓기보다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분위기를 느끼고 그 안에서 다양한 스타트업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직업을 구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며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꿈을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100만원에 육박하는 입장료를 지불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슬러시라는 행사에 참여해 스타트업 창업이나 다른 스타트업 또는 투자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방법으로 자원 봉사를 활용하는 셈이다.

자원 봉사의 취지에 맞게 슬러시 행사 자체도 비영리를 추구한다. 결국 영리의 목적보다 최초 취지인, 스타트업들에게 좀 더 많은 투자자들을 연결해주고 스타트업들 사이에도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이벤트 행사장 안에 들어가 보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포르쉐, 에어 버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까지 매우 다양한 다국적 기업들의 부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각 부쓰에 들어가 보면 자사 제품이나 기술 홍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원하는 스타트업들을 위한 공간이나 지원책에 대한 홍보, 그리고 관련 스타트업들이 투자자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피칭을 하는 열린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부스 역시 슬러시 운영을 위한 기금 마련 목적 외에 기타 다른 영리 목적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의 입장에선 글로벌 기업들을 쉽게 만나고 기업 투자자들과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자신들의 기술을 설명하거나 해당 기업에 맞춘 기술을 판매하는 등 돈을 주고도 쉽게 얻기 힘든 기회들을 제공받는 셈이다.

슬러시에 마련된 구글의 부스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테슬라도 모델 X를 들고 슬러시에 참석했다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올해 슬러시 오프닝에 핀란드 대통령이 등장한 데다가 일반적인 인식으로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려면 핀란드 정부의 어마어마한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볼 것이다. 일단 정답부터 언급하면 핀란드 정부는 슬러시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행사를 진행할 때 필요한 기금이나 장소 대여, 기타 여러 지원 부분에서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다. 단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행사를 위한 글로벌 고위 인사들이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정부 인사들이 의전을 갖추는 정도가 전부다. 하다 못해 영국의 황세손이나 스웨덴의 왕자, 미국의 전 부통령이 행사장을 돌아다녀도 안내하는 사람들은 20대의 슬러시 사무국 사람들이었다.

슬러시의 이같은 다양한 측면을 통해 바라본 핀란드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선순환 구조에 이미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역할보다 대학생을 비롯한 스타트업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창업 열기와 할 수 있다는 의지, 작은 내수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보고 기획하는 목표, 그리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찾는 글로벌 시장의 투자자들, 이 모든 것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커가고 있는 슬러시를 통해 투영해 볼 수 있는 핀란드 스타트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우리에겐 필요한가?

올해 슬러시에도 우리나라 스타트업 70여곳이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스타트업이 향후 산업의 원동력이라는 판단 하에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환경은 아직 정부가 주도하는 성격이 강하다. 스타트업들 역시 정부의 펀딩을 받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결국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스타트 업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을 굳이 힘들게 물색해 돈을 구해 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풍족한 곡간을 두고 바깥으로 나가 동냥질을 하는 건 그만큼 시간 낭비이고 노력 대비 결과물 역시 확신할 수 없다.

슬러시에 마련된 한국관 [사진 출처 :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하지만 이런 환경이 스타트업들에게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키우는데 한계를 두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라는 환경은 이미 산업간 글로벌 국경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으며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갖고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쉴새 없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단 내수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나 글로벌 시장은 나중이라는 생각은 이제 조금씩 벗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글로벌의 좋은 투자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환경은 우리 나라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봤을 때도 인정받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정부와, 정부의 지원이라는 좋은 도구를 어느 선까지 활용해야 좋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마련되고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지도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글로벌 시장은 분명 우리 스타트업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시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형욱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수석상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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