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헬스케어 생태계 만들어야...될성부른 스타트업 적극 지원

최초입력 2017.11.01 16:44:50
최종수정 2017.11.01 17:41:57

<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혁명>

미국에서 열린 헬스 2.0 컨퍼런스 [사진 출처 :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
필자는 최근 미국에서 열린 헬스 2.0, 락 헬스 서밋 (Rock Health Summit)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및 학계의 대규모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의료계, 산업계, 학계에서 앞다투어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역동적인 모습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국내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적지 않은 위기감과 조급함까지 느꼈던 자리였다.

한국에도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지면을 빌려 필자가 행사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먼저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더 많이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한 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헬스케어 생태계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단연 스타트업이다. 기존 의료 시스템의 부족한 점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도전적인 해결책을 내어놓는 스타트업이 주로 혁신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들에서도 의료계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저마다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많은 스타트업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스타트업의 양적인 차이였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락헬스에서는 1년에 800개 정도의 초기 스타트업을 심사하여 그중에 1% 정도에 투자한다고 하였다. 지난 몇 년 간 그렇게 투자한 기업의 수가 이미 수십 개에 달한다.

필자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1년에 접하는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이 숫자의 1/10도 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의 산업 규모와 산업 발전 단계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다. 소수의 혁신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배출되기 위해서는 일단 충분한 숫자의 스타트업 풀이 갖춰져야 한다.

생태계도 필요하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미리 알아보고 투자하는 전문 펀드와 이를 육성할 수 있는 엑셀러레이터도 필요하다. 헬스케어 분야의 투자는 다른 분야와 다른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다른 분야에 비해 더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IPO에 이르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벤처 펀드의 기간보다 현저히 길다. 올해 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 중 업력이 거의 20년에 달하는 곳도 있다.

특히 미국에는 병원이 벤처 펀드에 투자하고 스타트업을 키우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의 병원 수터헬스(Sutter Health)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개발한 제품이 병원 내에서 검증받을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LA의 대형병원 세다스 사이나이(Cedars-Sinai)는 테크스타스(TechStars)와 함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제공하고 투자까지 한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생태계다.

역시 규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지적하였듯이 최근 FDA는 기술의 발전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으며, 혁신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내어놓으면서 업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혁신 플랜’의 경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제품이 아닌 제조사를 기준으로 규제하겠다는 파격적인 안을 발표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더 강화하고 있다. 반면 이번 행사에서 소개된 많은 스타트업과 사업모델이 한국에서는 불법이거나, 합법과 불법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것들이 많아 자괴감이 절로 들었다.

또한 이번 행사에는 FDA 국장 및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 책임자가 발표나 패널 토의에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 철학과 노력을 설명하고 산업계와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을 패널 토의뿐만 아니라, 네트워킹 행사에서도 참가자들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전문성 측면에서 산업계 전문가들과의 토론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런 개방적인 자세 때문에 필자도 여러 질문을 던질 기회가 있었다. 이 역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미국과 한국은 의료 체계, 규제, 시장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다. 하지만 완벽한 의료 체계는 없으며,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외국에서는 헬스케어 산업 생태계가 정비되고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그 혁신의 수혜를 환자들이 누리기 시작하고 있다. 아직 한국은 여러 규제나 지엽적인 논란 때문에 혁신이 시작되지도 못하거나, 유망한 스타트업이 해외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업계 종사자들의 시름은 커져만 간다. 글로벌과의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한국 헬스케어 산업에도 돌파구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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