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의 생각] 대우조선, 진실의 순간

최초입력 2017.03.15 15:03:00
최종수정 2017.03.15 18: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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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생각-22] 나는 2013년 5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좀 지났을 때 '큰 곳, 급한 곳, 중요한 곳'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STX 부실 문제를 바둑에 비유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같은 어젠다가 크고 중요하다면 STX는 급한 곳이었다. 바둑 격언 중에 큰 곳보다 급한 곳이 먼저라는 게 있다. 아무리 좋은 수(手)를 많이 둬도 급한 곳을 손쓰지 않으면 판 전체가 엉망이 되는 이치다. 지금 똑같은 주장을 한다. STX가 대우조선해양으로 바뀌었다. 한국 경제에서 큰 곳도 있고 중요한 곳도 있지만 가장 급한 곳은 바로 대우조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정국이라 더더욱 그렇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이 대우조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여기서부터 위기는 시작될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말로는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하지만 대우조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한 아무리 영양제를 먹는다고 해도 건강해지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배를 잘 만든다는 조선사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이자 국가적 불행이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걸 어떡하겠는가. 대한민국의 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자학한들 버스는 지나갔다.

 상황 파악은 거의 다 돼 있다. 물론 회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 향후 조선경기를 어떻게 전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시나리오 1, 2 식으로 구분할 일이지 대우조선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대우조선은 지금 진실의 순간에 와 있다. 곧 유동성 위기가 닥친다. 대우조선의 목을 죄는 회사채 만기가 4월 21일에 돌아온다. 4400억원이다. 재작년 10월에 4조2000억원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는데 3월 15일 현재 통장 잔액은 3800억원. 여기에 오는 7월에 3000억원, 11월에 2000억원, 그리고 내년 3월에 3500억원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제때 상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지금 결정해야 한다.

 어떻게 하느냐? 구조조정의 기본이다. 큰 줄기로 보면 2가지 중 하나다. 여기서 분질러 버리느냐, 아니면 지원해서 끌고 나가느냐. 분지르는 건 법정관리로 집어넣으면 된다. 이 경우 발생하는 손실은 주주, 채권자, 그리고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집단의 극렬한 저항이 예상된다. 직장을 잃어버리는 근로자도 있고 일감이 없어져 도산하는 협력업체도 생길 것이다.

 지원하는 방안은 엄청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재작년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작년에 자본 확충까지 했는데 또 손을 벌리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더 이상 지원은 없다"고 말한 건 식언이었느냐는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채권자들은 이른바 '로스컷'을 해야 할 것이다. 100원짜리를 50원만 받는 식이다.

 뜨거운 감자다. 정책 당국자들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려 결론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짓는 배가 몇 척이고 앞으로 수주 받을 게 어느 정도이고, 파산 시 발주처에 물어주게 될 돈(RG)이 얼마고 하는 것만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다. 그럴 거면 그냥 서별관회의 같은 걸 열어 의견을 모으면 된다. 화끈하게 파산시켜 정리하자니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하고, 살리자니 돈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상화 추진엔 얼추 3조원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고통 없는 구조조정은 없다.

 정부가 최선책을 도출한다 한들 국민적 합의를 보지 않으면 소용없다. 어떤 결정이든 시비에 휘말리고 세월이 흐른 뒤 이 문제를 처리한 담당자들은 피를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소신 있고 용기 있게 움직일 수가 없다. 그들이 소명감과 전문적 식견으로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결정했더라도 사후적으로 일이 꼬이면 '선의'는 '배임'이 되고 '뇌물'이 되고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대우조선에 정치가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까지 한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어느 대선주자도 대우조선을 언급하지 않았다. 거제를 찾아가 민심을 달래고 허풍을 떤 정치인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건 국민의 눈을 잠시 가리는 사기 행위일 뿐이다.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욕먹지 않겠다고 발 빼면 비겁한 정치인이 되고, 어렵지만 용기 있게 나서면 책임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대우조선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어느 쪽이라도 좋다. 결정하고 승복하고 책임지기. 이게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 실력은 이런 데서 판가름난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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