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최고존엄 건드린 정치인들과 비난의 무게

최초입력 2017.03.16 06:01:00
최종수정 2017.03.15 18: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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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의 뉴스메이커-6] 최근 두 명의 정치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입에 올렸다 먼지날 만큼 두들겨 맞았다. 먼저 홍준표 경남도지사. 지난달 28일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 만났을때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대장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이다. 홍 지사 발언에 민주당은 살기 어린 논평을 내놨다. '인간말종식 화법'이라고 했다. 싸움닭 홍준표가 이런 공격에 움츠러들 사람은 아니다. 그는 이후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란 발언은 팩트"라며 "야권의 비판은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는 손혜원 민주당 의원이다.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 나가 노무현의 자살을 말하며 "(자살이 가져올 결과를) 계산한 거지. 내가 여기서 이렇게 떠날 때 여기서 모든 일은 끝날 거다라고 했고"라고 말했다. 야권 지지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감히 얻다대고…. 그것도 민주당 의원이란 인간이….' 주로 이런 반응이었다. 친문 핵심그룹으로 분류되는 손혜원은 싹싹 빌며 자신의 경박한 입을 "무지의 소치"라 쥐어박은 뒤 문캠프 홍보 부본부장직에서 물러났다.

 '한국 정치에 신성불가침이 존재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있다'고 답하겠다. 원래는 없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후로 그렇게 됐다. 그가 죽은 이후로 여야를 막론하고 노무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인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랬다가는 신성불가침에 도전하는 행위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손혜원은 그저 말실수 수준인데도 박살이 났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가 노무현 외에 또 누가 있는가. 없다. 우리나라에선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이승만이나 박정희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서 말하지 않는다. 누가 '박정희 전 대통령님'이라 부르면 십중팔구는 '박정희병 환자'로 취급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호칭할 때는 꼬박꼬박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다. 노무현병 환자라고 이죽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노무현을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으로 표현한 홍준표는 어마어마한 불경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논평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정진우 부대변인은 "허황된 대권욕에 불탄 홍준표 경남지사가 인간말종식 화법으로 트럼프 코스프레에 나섰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눈에서 또다시 피눈물 나게 하는 패륜적 욕설"이라고 치를 떨었다. 또 "아무리 정치권에서 저속한 발언이 난무하더라도 해도 되는 말이 있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며 "정치인에게 허용되는 발언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정치논평의 삭막함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인간말종'이란 표현이 쓰인 건 처음 본다. 흡사 최고존엄 모욕에 격분한 북의 조선중앙TV 논평 같다.

 그런데 말이다. 노무현을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으로 평하는 것이 과연 패륜이고 인간말종식 화법인가. 정치인에게 허용되는 발언의 수위를 넘어선 것인가. 박정희를 비하하는 세력들은 '기생 끼고 술 마시다 부하 총에 맞아 죽었다'는 표현 정도는 아무 양심의 거리낌없이 뇌까리지 않는가. 그 표현이 야비한 측면은 있지만 어느 정도 팩트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시비 거는 사람도 없다. 물론 노무현이 뇌물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검찰수사에서 대통령 가족에게 돈을 주었다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이 있었던 것은 팩트이고 자금흐름도 드러났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자살로 모든 검찰 수사는 중단됐다. 무죄추정의 원칙상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날 때까지는 무죄이다. 그러나 검찰수사 단계에서 대통령 탄핵도 하는 마당에 검찰 수사 내용에 근거해 '뇌물 먹었다'는 단정적 표현을 썼다고 해서 '인간말종'으로 취급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아닌가.

 노무현 자살을 계산된 행동으로 표현한 손혜원은 또 어떤가.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다 계산을 한다. 하물며 인생을 정리하는 마당에 계산이 없겠나. 노무현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또한 본인의 죽음으로 모든 상황을 끝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무현의 자살을 가리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으로서의 그 모든 존엄을 지켜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존엄을 지켜내려는 의지 또한 계산인 것이다. 더구나 손혜원의 발언은 노무현의 평소 스타일이 '고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승부사'라는 정청래 전 의원 발언에 맞장구를 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비하가 아니라 칭송 모드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런데도 어느 신문은 사설까지 써 가며 손혜원의 가벼운 입을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집권 시엔 썩 우호적이지 않은 신문이었는데 죽은 노무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설을 쓰다니 세상 참 묘하다.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좀 더 교양 있고 예의를 갖추는 언어를 구사했으면 한다. 노무현 아니라 어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비판과 풍자는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 노무현은 비판은커녕 일상의 언어로 가볍게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이 될 만큼 신성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노무현이 대통령일 때는 그가 구사하는 분열의 언어에 절망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권위의식이라곤 없었던 솔직함, 소탈함 앞에 마음이 누그러지곤 했다. 노무현의 권위, 신성불가침이 내게는 몹시 어색하다. 저승의 노무현은 어떻게 생각할까.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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