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9만 日후쿠이현이 알려준 지역발전의 해답

최초입력 2017.03.20 15:00:00
최종수정 2017.03.20 18:39:24

저자 후지요시 마사하루 <이토록 멋진 마을>
▲ 저자 후지요시 마사하루 <이토록 멋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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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17] 후지요시 마사하루의 '이토록 멋진 마을'

우리나라 지역의 자치단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은 '지역 발전'을 외치면서도 그 방법을 중앙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중앙정부에 더 많은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산업특구 지정을 요구한다. 또 대기업들에 각종 혜택을 제시하면서 투자를 요청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 발전 정책이라는 것이 특색도 없고 자연히 효과도 없다.

 하지만 이 책 '이토록 멋진 마을'은 지역 발전의 해법은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지역의 과제는 문제에 직면한 지역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국가적 정책은 지방에서 효과를 내기 어렵다. '향토주의'가 효과를 발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166쪽)


 이 책은 동해에 접한 일본 중부 외곽의 인구 79만명 수준의 작은 현인 후쿠이(福井)현이 어떻게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동네가 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후쿠이현은 나고야처럼 대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훗카이도처럼 관광도시도 아니다. 어업의 중심지도, 자원의 중심지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일본 내에서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 명당 서점 수 1위, 노동자 가구 실수입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행복도 조사에서도 당연히 1위다.

 이 책 안에는 그 비결이 담겨 있다. 지역 개발 하면 '대기업 유치'나 '대규모 쇼핑단지 조성' '카지노를 포함한 관광단지 개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 빈곤에 시달리는 한국의 정치인, 행정가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해외 답사 간다는 핑계로 유럽이나 동남아의 휴양지만 다니지 말고 이곳에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컴팩트시티의 핵심 시설인 도야마시의 트램 모습. /사진=황소자리
▲ 컴팩트시티의 핵심 시설인 도야마시의 트램 모습. /사진=황소자리
 후쿠이현 도야마시의 오늘은 2002년에 취임해 지금까지 4연임 중인 모리 마사시 시장이 있어서 가능했다. 모리 마사시 시장은 취임 후 도시의 미래 계획을 수립할 팀을 꾸린다. 간부들은 모두 제외시키고 젊은 직원들로만 팀을 구성한다.

 이유는 이렇다. 간부직원들은 은퇴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고, 또 이들은 모두 성장 시대의 정책에 익숙하기 때문에 저성장 시대를 대비한 정책을 마련할 수가 없다. 또 지금 결정하는 정책에 대해 비용을 부담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역시 젊은 세대다.

 이렇게 해서 나온 대표적인 정책이 '콤팩트시티'다. 걸어서 20분 안에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 아래 도심에 슈퍼마켓과 병원을 유치하고 도심으로 이주해오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트램 등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한 것이다.

 이 모델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 유래했다. 1979년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주택 건설업이 침체했고 주력 산업이던 임업이 타격을 받았다. 포틀랜드시 경제 활성화와 난개발 방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도시성장경계선'이라는 개념이었다.

 '도시성장경계선'은 20년 후의 인구 예측에 기초해 도시 성장을 계산한 뒤 개발할 수 있는 영역에 선을 그은 것이었다. 경계선을 만들면 난개발과 무계획한 도시 확대를 막을 수 있다.

 중점 거점 지역을 매력적인 거리로 만들기 위해 시 재정을 집중 투자하면서 '콤팩트시티' 계획은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도심의 인구가 8년 사이 1만7736명 늘었고 특히 24~40세 젊은 인구가 시내로 유입돼 전입 초과를 기록했다. 도심 자체가 활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이런 콤팩트시티가 왜 필요한지는 지역 출신들이라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해 도시를 확장해 구도심 외에 거주 중심의 또 하나의 도심을 만들었으나 성장이 멈추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두 개의 중심지 모두 쇠락해 버리는 현상을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목격할 수 있다.

 고령화는 지역에서 더 급격하게 진행된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 의료비 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소비 여력이 떨어져 경기 활력을 잃게 된다. 도야마시는 이런 문제를 아주 재미있는 정책을 통해 해결했다.

 바로 '손자와 외출 지원정책'이었다. 박물관, 과학관, 동물원, 다테야마 어드벤처 등 여가문화시설에 손자나 증손자를 데려올 경우 무료로 입장시켜주는 정책이었다. 별것 아닌 이 정책의 효과는 놀라웠다. 그에 대해 모리 시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손자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시의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면 외출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집에 틀어박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걷다보면 고령자의 건강수명은 늘어나지요. 이것은 미래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요인이 됩니다. 게다가 손자를 데리고 가면 반드시 지갑 끈이 느슨해집니다. 가령 아빠 엄마는 동물원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한 개밖에 사주지 않아요. 할머니라면? 세 개 정도는 사줄 겁니다. 귀갓길에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초밥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겠지요. 고령자의 외출이 지역경제에 공헌하는 셈입니다. 이뿐입니까. 외출하는 습관으로 노인은 건강해지고 손자에게는 조부모 세대와 교류할 기회가 마련되는 것입니다."(68쪽)


 비슷한 정책이 하나 더 있다. '외출 정기권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중교통을 통해 중심 시가지로 올 때 교통비를 4~10% 수준으로 깎아주는 정책이다. 이 정책으로 노인들의 활동이 늘면서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고 소비 지출이 늘었다.

 도야마시는 이 정책을 관광객들에게도 확대 실시했다. 도야마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경전철 무료권을 나눠줬다. 경전철 이용권이라고 해봐야 1인당 200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액수다. 하지만 그 효과는 놀라웠다. 2011년 4월 도야마시에 묵인 외국인 숙박객은 522명에 불과했으나 2014년 4월에는 19배인 9739명로 증가했다. 무료 티켓 효과로 여행객이 도야마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1박을 추가해서 시내 관광을 한 것이다.

 사실 이 정책은 스위스 바젤에서 따온 것이고 콤팩트시티 계획도 포틀랜드를 모방한 것이다. 모리 시장은 개인후원회의 지원 아래 시간이 될 때마다 함부르크·밀라노·헬싱키 등 외국의 '멋진 마을'을 며칠씩 탐방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지역에 맞게 시행했다.

안경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답게 후쿠이현 사바에시 입구에는 안경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황소자리
▲ 안경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답게 후쿠이현 사바에시 입구에는 안경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황소자리
 후쿠이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 14개 생산되고 일본 1위 제품이나 기술도 51개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지역 중소기업이 이룬 성과다.

 그런데 점유율 세계 1위 제품은 대부분 사양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안경, 섬유, 칠기 같은 분야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후쿠이현 사바에시에 있는 아게하라직물공업에서는 '아게하라 벨벳'을 생산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제품이 세계 시장의 25%를 차지한다.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 하더라도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 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바에시 지역연계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데미즈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섬유와 칠기는 사양이라고 말합니다만 어느 사장님은 이렇게 웃어 넘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양 사양,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무엇이 왜 사양인가. 첨단을 향해 진행되는 산업 속성상 이전 것은 언제나 사양이 될 수밖에 없을 뿐이다'라고요."(176쪽)


 업계 전체는 사양일지 모르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사바에시에서는 지역민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뒷받침한다. 특히 안경·섬유·칠기 같은 사양산업이더라도 가치를 더해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 혁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후쿠이는 교육 경쟁력에서는 전국 1위인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고 과정의 가시화'라는 교육철학이었다. 후쿠이에서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학생들이 직접 보고서로 쓰게 한다. 사고 과정을 반추해보면 자신의 최초 생각과 토론 후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고 과정의 가시화다.
"가령 릴레이에서는 0.1초 단축을 목표로 한다. 목표가 정해지면 팀마다 기록을 단축할 방법을 생각한다. 발이 빠른 학생이 바통 패스 거리에서 조금 더 길게 달린다거나 바통을 잡을 때 손 내미는 방법을 바꾸어본다거나 여러 방법을 생각해 그것을 적는다. 알게 된 것, 생각한 것, 다음에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 등을 망라해 쓴다. 다 써놓고 보면 다음 체육수업 시간에 잊지 않고 확인해서 생각을 어디에 집중할지 판단할 수 있다. 기록 단축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룹이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이 빠른 학생과 느린 학생의 협력이 필수적인 것이다."(250쪽)


 후쿠이현의 학교는 수학 교실을 학년마다 따로 만들어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학시간에 1학년생이 사용하는 그 교실 벽에는 2학년생과 3학년생이 수업에 사용한 그래프나 공식이 붙어 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학생들은 왜 1차 함수를 배운 직후 1차 방정식을 배우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교사가 '오늘부터 1차 방정식이다'라고 말하면서 교과서를 펴라고 하기 때문에 그냥 막연하게 공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수학의 교실에 오면 지금 공부하는 수학이 1년 뒤, 2년 뒤에 '이렇게 되네' 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향후 전망과 배움의 전체 상이 보이는 체제이지요."(255쪽)


 후쿠이현 '이토록 멋진 마을'은 우리에게 정상을 알려주는 등산로일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후쿠이현으로 떠나보자. 하지만 우리가 후쿠이현에서 봐야 할 것은 그들이 시행하는 정책 그 자체는 아니다. 그들의 상상력이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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