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이승엽 伊 지노빌리 존경받는 스포츠장인들

최초입력 2017.03.21 06:01:00
최종수정 2017.03.20 18:39:37

[쇼미 더 스포츠-36] 장인(master)은 통상 오랫동안 한 분야에 전념하고 그 능력과 기술을 널리 인정받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장인이라고 해서 꼭 최고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꼭 그러할 필요도 없다. 최고의 퍼포먼스는 장인이 아닌 다른 어떤 천재(genius)들을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다. 서양에서 장인들이 천재들과 다른 점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하고, 많은 이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점이다. 여기 자신의 현역선수 생활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 스포츠 장인이 있다. 이제 그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 글을 쓴다.

 

이승엽 선수 /사진=isportskorea.com
▲ 이승엽 선수 /사진=isportskorea.com
◆국가대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가장 화려했던 영광의 순간에는 늘 '국민타자' 이승엽이 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당시 일본최고 투수였던 마쓰자카에게 홈런을 뽑아내는 등 한국 야구사에 최초의 올림픽메달(동메달)을 선사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2006년에는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돔에서 극적인 역전 홈런을 치며 일본 대표팀을 침몰시켰다. 당시 승리는 양국이 거의 최정예 전력으로 처음 붙어 승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또 2008년 베이징에서는 한국 야구 100년사 최고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금메달을 조국에 선사하기도 했다. 2013년 WBC를 끝으로 그의 국가대표 시절은 끝났지만, 이승엽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야구팬들과 국민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였다.

미국 프로농구 샌안토니오의 마누 지노빌리가 휴스턴의 야오밍과 쿠티노 모블리를 제치고 드리블 하고 있다. /사진=AP
▲ 미국 프로농구 샌안토니오의 마누 지노빌리가 휴스턴의 야오밍과 쿠티노 모블리를 제치고 드리블 하고 있다. /사진=AP
 애국심은 왠지 동양인 특히, 우리 한민족의 전유물 같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게 사실이고 특히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러해 보인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이 선수의 애국심과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아르헨티나의 농구영웅 지노빌리의 이야기이다. 올림픽 농구에서 '드림팀'은 곧 미국을 의미하는 동시에 '최강'을 의미한다. '드림팀'은 92년 첫 출범 이래 올림픽에서 속된말로 전 세계 농구를 씹어먹었고, 그들의 적수는 영원히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드림팀에도 흑역사는 있었으니, 바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아르헨티나전 패배였고, 그 중심에는 지노빌리가 있었다(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은 아르헨티나 것이었으며,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도 미국 드림팀 외에 금메달을 차지한 유일한 국가이다). 사실 지노빌리의 위대함은 드림팀을 침몰시겼다는 하나가 전부가 아니다. 지노빌리는 지난해 39세의 나이까지 20년을 끊임없이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로 헌신했다. 부상에 굴하지 않았으며, 역할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부상을 염려한 소속팀의 반대에도 그는 대표팀의 일원임을 늘 자랑스러워 하며 조국을 위해 뛰었다. 이런 그의 헌신에 아르헨티나 국민은 사랑과 존경을 아끼지 않았으며, 아르헨티나가 낳은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스타 중 하나인 리오넬 메시도 자신을 '축구계의 지노빌리'로 불러달라며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적극 표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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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살기

 이승엽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무엇보다도 홈런이다. 한 시즌 최다홈런(56개), 통산 최다홈런, 세계 최연소 300홈런 등 KBO리그의 모든 홈런기록은 다 이승엽의 것이다. 일본에서의 활약까지 합친다면, 그 기록의 가치는 더 높아짐은 물론이다. 중요한 건 그가 세운 금자탑이 앞으로 꽤 오랜 시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의 기록들은 지금보다 적은 시즌 경기 수에서 세운 기록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지노빌리의 유로스텝은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역동적이고,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에게는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등 NBA 최고스타들이 가지고 있는 폭발적인 득점력이나 운동능력은 없다. 신체조건 또한 보통 아니 오히려 보통 이하라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끊임없는 노력으로 체득한 화려한 스텝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전후좌우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통해 수비수를 따돌리는 모습은 정작 유럽 출신이 아닌 그에게 '유로스텝'의 NBA 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에 충분했다(NBA TV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노빌리의 유로스텝이 다른 NBA 스타들의 모든 기술을 제치고 최고의 기술로 뽑힌 바 있다).

 

 ◆원클럽맨

 원클럽맨은 굳이 따지자면 사실 축구용어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이적이 잦은 축구에서 한 팀에서만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한 선수에 대한 일종의 칭송의 표현이다. 이승엽과 지노빌리는 사실 이 기준에서 보면, 원클럽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둘 다 복수의 리그에서 뛰었고, 이는 당연히 하나 이상의 팀에서 뛰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주무대로 뛰었던 리그에서 그들은 아주 오랜 기간 오직 하나의 유니폼만 입었고,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승엽은 삼성라이온즈 푸른 피의 상징이었고, 팀의 연고지이자 자신의 고향인 대구를 진심으로 사랑해왔다. 그는 국민타자이지만, 그 이전에 대구와 삼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2002년 삼성과 대구 팬들에게 극적인 홈런으로 첫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안긴 그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3개의 우승 반지를 더 모았다.

 지노빌리의 주무대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미국 샌안토니오였다. 그의 나이 25세인 2002년에 이 낯선 곳에 와 15년을 쭉 보내고 있다. 그 15년 동안 그는 NBA 파이널 트로피를 4번 들어올리며, 팀 던컨, 토니 파커 등과 함께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항상 NBA 최고의 강 팀 중 하나로 꼽히게 만들었다.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감독은 지노빌리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대신했다. "지노빌리는 샌안토니오의 리더이자, 영혼 그 자체이다."

 

 ◆은퇴

 이승엽은 올 시즌을 끝으로 자신의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 시즌 보여준 그의 기량을 감안하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함에도 떠나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하기 그지없다. 이승엽보다 한 살 어린 지노빌리는 지난 시즌 절친한 팀 동료인 팀 던컨과 동반 은퇴를 고려한 바 있다. 하지만, 팀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고, 올 시즌을 코트에서 불사르고 있다. 그가 은퇴를 공식화 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몇 년째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어쩌면 올해가 그의 유로스텝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획 일 수도 있다.

 우리 시대 최고 스포츠 장인들인 그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아쉽고, 심지어 슬프기까지 하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해야만 하고 그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도 우리만큼 괴로울텐데….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봤다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긴, 우리에게도 자신 떠날 때를 아는 영웅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에필로그

 이승엽과 지노빌리는 자국 최고 스포츠스타 중 하나이긴 하나, 서로 다른 종목, 다른 나라의 선수들이다. 어찌 보면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동년배라는 사실 외에는 크게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종목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스타임에도 개인보다 팀을 최우선시하는 모습 그리고 정말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에 있어서 둘은 무섭도록 닮았다. 스포츠라는 승부의 세계에서 이들과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선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20년 넘는 시간 기복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자신의 팀에 헌신하며,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과 국민의 사랑을 모두 받았던 선수를 찾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정지규 스포츠경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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