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왓슨' 한국어 가르친 도전의 상징 로메티 회장

최초입력 2017.09.11 06:02:00
최종수정 2017.10.13 14:23:06

로메티 IBM 회장
▲ 로메티 IBM 회장
[글로벌 CEO열전-27] 지난 6일 IBM의 인공지능(AI) 왓슨의 한국어 버전이 공개됐다. 이름은 에이브릴. SK C&C와 IBM이 오랜 기간 협업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한국어를 공부한 왓슨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서비스에 들어가는데 일단 가능한 작업은 8가지다. 사람과의 대화, 자연어 이해, 자연어 분류, 검색과 평가, 문서 변환, 언어 번역, 이미지 인식, 성향 분석이 그것이다. 한국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왓슨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콜센터를 대체할 수도 있고, 문서 분류와 변환 등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검색과 평가 학습을 강화해 마케팅 도우미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완성된 제품이 아닌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어떻게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왓슨은 이미 암진단과 치료, 헬스 등 여러 분야에서 실력이 입증된 만큼 시간이 갈수록 똑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왓슨의 성장 뒤에는 버지니아 로메티 IBM 회장이 있다. 2012년 100년이 넘는 IBM 역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회사 내에서는 추진력이 뛰어나고 냉철한 실용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컴퓨터와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컴퓨터 사업 매각 등 IBM의 미래를 바꿀 굵직한 결정에 참여했다. 컨설팅과 인수·합병(M&A)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것이 고속 승진의 비결이었다. 무엇보다 2011년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과 대결해 승리하며 주목을 받았던 왓슨을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로 키운 주인공이 바로 로메티 회장이다.

구글을 비롯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많지만 상용화에 성공해 수익을 내는 곳은 IBM이 독보적이다. 왓슨은 암 진단 같은 의료 분야를 비롯해 법률과 금융, 유통, 제조, 교육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 500개가 넘는 기업이 왓슨을 도입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2015년 왓슨 매출이 1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앞으로 인공지능 보급이 늘어나면 도입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왓슨의 수요도 늘어 IBM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로메티 회장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뉴칼라'론을 설파한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직업 일부가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인공지능과 인간은 공생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아닌 '뉴칼라'의 수요가 많아질 것이다." 아직 뉴칼라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초고속 연결망과 사물인터넷 등 새로 등장한 기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할 직업 또는 신인류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과 협업할 수 있어야만 뉴칼라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루빨리 뉴칼라를 육성해야 한다는 로메로 회장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그는 백악관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는 미래 인재에 관한 그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앞으로 대학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정보기술을 다룰 실무자를 키워야 하는 것이죠. IBM은 이런 인재를 육성할 학교를 많이 세울 테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로메티 회장은 취임 이후 IBM에 새로운 색상을 입히려고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한 편으로는 포화시장에 있는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그가 매각한 대표적인 부문은 서버와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다. 한때 IBM의 주력 분야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가 누적됐던 서버 사업은 2014년 레노버에 넘겼고, 반도체 사업은 글로벌파운드리에 매각했다.

반면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나 분야에는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로메티 회장이 인공지능과 함께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빅데이터다. 그가 사령탑에 오른 이후 IBM이 다양한 정보 생산 기업들과 제휴하고 있는 배경이다. 날씨정보 제공업체인 웨더컴퍼니와 공동으로 스마트폰과 자동차, 빌딩, 항공기에 센서를 장착해 이들이 보내는 날씨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 등 모바일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과 보안과 기업용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협업하는 것이나 빅데이터 수집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클라우드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새로운 성장 사업이 가시적인 결실을 보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회장에 취임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출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로메티 회장은 실망하지 않는다. 왓슨을 비롯한 전략 사업의 성장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섭고 겁이 나더라도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라. 불편한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 넣어라. 성장과 편안함은 공존하지 않는다. 싱싱함을 유지하라." 그가 IBM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에 오를 수 있었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언제나 싱싱함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세상을 이끌어갈 뉴칼라의 덕목이기도 할 것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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