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의 폭락·급등 전망 우리 증시에선 왜 힘들까

최초입력 2017.09.11 06:02:00
최종수정 2017.09.10 18:30:0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켓인사이드-56] 2007년 10월 30일. 그러니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약 1년 전 얘기다. 월가의 투자은행 오펜하이머에서 금융주를 담당했던 애널리스트 매러디스 위트니는 "씨티그룹이 부실자산이 많아 앞으로 투자자들은 배당을 제대로 못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매도 보고서를 냈다. 미국을 대표하는 30종목 중 하나였던 씨티그룹에는 날벼락 같은 보고서였다. 목표주가로 주당 30달러를 불렀다. 전날 41.9달러로 마감했던 씨티그룹 주가가 앞으로 30%가량 떨어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보고서가 나온 당일 씨티그룹 주가는 7% 떨어졌고, 그해 연말 이 회사 주가는 귀신같이 30달러를 찍었다. 투자자들은 배당을 못 받게 됐다. 뿐만 아니다. 씨티그룹 주가가 급락하자 미국 증시 전체가 맥을 못 췄다. 1만4000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다우지수가 연말 1만2000선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게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매러디스 위트니의 씨티그룹 보고서다. 위트니는 이 보고서를 내고 주주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용기가 대단하다.

반대로 주가 상승을 예측하는 데도 과단성이 필요하다. 지난해 6월 24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글로벌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삼성전자 주가도 이날 하루 2%가 빠지면서 140만원대를 기록했지만 일주일 만에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고 7월 들어서는 마의 154만원 고지를 뚫었다. 그후 연일 최고가 가격을 갈아치우던 삼성전자는 지난 8일 현재 240만6000원으로 마감했다. 1년 새 무려 55%가 오른 셈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130만~140만원대에서 헤매고 있던 지난해 6월. JP모건은 목표주가를 190만원으로 제시했고 모건스탠리, 노무라 등은 180만원을 불렀다. 시가총액 1위, 한국 증시에서 가장 덩치 큰 주식이 30~45%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당시 국내 증권사들의 목표주가 평균치는 약 169만원. 외국계 증권사들이 훨씬 과감했다. 지난 1년 새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이 가파르게 나타나자 이들 외국계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250만원에서 270만원으로, 다시 300만원으로 발 빠르게 치고 나왔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돌아오면서 실적이 좋아진 데다 자사주 매입 소각까지 나타나자 삼성전자의 주당순이익(EPS)이 한 해 20~30%씩 높아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순이익이 오르는데 주식 수는 줄어드니 주당 순이익은 더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구조를 간파한 외국계 애널리스트들이 먼저 목표주가를 과감히 올려주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따라들어왔다. 지난해부터 올해로 이어진 삼성전자 대세상승장에서 외국인이 먼저 과실을 따 먹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일 증권사가 내놓는 애널리스트 주식 분석 보고서에 목표주가 괴리율을 적시하도록 하는 의무공시제가 시작됐다. 지난해 한미약품 등 실제 주가에 비해 목표주가가 너무 높은 종목들이 나타나면서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으로 마련한 제도다. 제도 시행 전부터 목표주가가 평준화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로도 목표주가 하향 추세가 뚜렷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발간된 증권사 보고서의 목표주가 하향 비율은 17.7%에 달한다. 상반기 월평균 5.4%를 크게 웃도는 수준. 물론 최근 기업 실적이 하향 조정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작년에 비하면 더 심하다. 최근 3개월간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간의 평균 괴리율은 28%에 달해 지난 연말(55%)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알게 모르게 목표주가를 비슷하게 맞추고 있는 눈치작전인 셈이다.

흔히 주식시장을 꿈을 먹고 산다고들 한다. 꿈이 없는 주식은 안 팔린다. 시장에 다 알려진 종목은 더 이상 안 오른다. 애널리스트가 목표주가를 만드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현재가치를 토대로 미래가치를 계산해내야 한다. 분석에 상상력을 더해야만 목표주가가 나온다. 대박이든 쪽박이든 현재주가와 목표주가는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괴리율 공시제가 목표주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 증시가 대박이나 쪽박이 나올 수 없는 환경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코스닥시장에는 증권사 커버리지가 없는 종목이 85%다. 전체 1200개가 넘는 종목 중 증권사에서 목표주가를 제시하는 종목이 커버리지가 있는 종목이 170개밖에 안 된다. 나머지 버려진 종목 1000개 속에서 오를 만한 주식을 발굴하려면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상상력이 가미돼야만 한다. 애널리스트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만든 자료가 컴퓨터 속에 사장된다면 백날 애널리스트 신뢰도를 평가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평가도 종목에 대한 특성화와 차별화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실제 투자에 필요한 보고서가 아니라 평가에 대비한 보고서만 나오게 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도 매러디스 위트니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한예경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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