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상들의 애견외교 선물·홍보에 회담동반도

최초입력 2017.09.12 06:02:00
최종수정 2017.09.13 10:40:16


▲ '개공포증'아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의 정상회담 자리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EPA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65]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애완견 외교는 악명이 높다. 푸틴 대통령은 2007년 러시아 남부 도시 소치에서 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애완견 '코니'를 데리고 갔다. 메르켈 총리가 어린 시절 개에 물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회담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들고나온 전략이었다. 대형견 코니를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곁눈질하는 메르켈 총리의 모습은 푸틴 대통령의 전략이 적중했음을 보여줬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방 안을 어슬렁거리는 개를 바라보며 "개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죠? 온순하니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했고, 메르켈 총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어쨌든 개가 기자들을 물진 않겠죠"라고 대답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코니는 메르켈의 발치에 앉고 냄새를 맡는 등 주위에 머물면서 메르켈 총리를 진땀 흘리게 했다. 후일 푸틴 대통령은 애견을 동반한 것에 대해 "메르켈 총리에게 잘해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에도 애완견 외교를 통해 이목을 끌었다. 2012년 9월 베네수엘라 대선 때 블랙 러시안 테리어 한 마리를 우고 차베스 당시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4선 도전에 나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인데, 이 때문인지 차베스는 무난히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강아지 외교로 중남미 최대 우방인 베네수엘라와의 굳건한 관계를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었다.

이를 벤치마킹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강아지 외교로 접근해 화제를 모았다. 쿠릴 열도 반환 협상이 한창이던 2012년 7월 푸틴 대통령에게 아키타종 암컷인 '유메'를 선물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앞둔 2016년 12월 또다시 강아지를 선물하겠다고 했으나 푸틴 대통령은 거절했다. 만약 푸틴 대통령이 선물을 받아들였다면 일본은 정상회담 때 양국 우정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 프랑스 '퍼스트 도그' 네모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진=EPA
지난 8월 2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스페인·이탈리아 정상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 애완견 '네모'를 동반하기도 했다. 애완견을 통해 '손님 맞이'를 하기 위한 것으로, 정상회담 분위기를 유화적으로 만들고 마크롱 대통령의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날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된 네모가 처음 '공개석상'에 나오는 자리여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네모가 프랑스 공상과학 소설 '해저 2만리' 주인공 이름을 따온 강아지라는 점에서 프랑스 문화를 홍보하는 효과도 거뒀다.

애완견이 외교에 활용된 사례는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미국을 처음 방문할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애완견을 위해 개 목걸이와 뼈다귀를 선물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평화'와 '통일'이라는 진돗개 두 마리를 전했다. 이에 북측은 '단결'과 '자주'라는 풍산개 두 마리로 화답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는 애완견 외교의 절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흉기 피습으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던 그는 사건 당일 자신의 트위터에 "로빈(아내)과 세준(아들), 그릭스비(애견)와 저는 한국민의 지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다. 애완견 그릭스비를 아내, 아들과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이후 그는 그릭스비의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까지 만들고 애완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한 미국대사의 외교 수단은 강아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리퍼트 전 대사의 강아지 외교를 소개하기도 했다.

애완견 외교가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천방지축 애완견들이 말썽을 부리면서 외교 결례가 빚어진 사례도 수두룩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가운데)와 애완견 바니. /사진=AP
▲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가운데)와 애완견 바니. /사진=AP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핏불테리어 '피트'는 적어도 5명을 물었고, 프랑스 대사의 바지를 찢어 놓는 '외교 결례'까지 저질렀다가 그만 백악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부시 전 대통령의 스코티시테리어 바니는 백악관 출입기자의 손가락을 물어 다치게도 했으며, 자신을 쓰다듬으려는 프로농구팀 보스턴 셀틱스 홍보국장에게 달려드는 등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니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2013년 숨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명복을 빌었다.

[박의명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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