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이 꿈꾼 내세 '덕흥리고분 무덤방'

최초입력 2017.10.13 06:01:00
최종수정 2017.10.13 08:50:55

[고구려사 명장면-30] 덕흥리고분의 무덤방은 글자 그대로 고구려인들이 죽어서 가고 싶은 내세를 구현한 곳이다.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인들의 꿈과 상상이 가득한 하늘세계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도상들을 통해 꼭 내세관만이 아니라 고단한 현실 속에서 삶을 지탱해갈 수 있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 세계관 등도 읽어볼 수 있겠다.

유주자자 진의 묘지명에는 '석가문불(釋迦文佛)의 제자'라고 하였다. 무덤 주인공인 진(鎭)이 불교 신앙인임을 밝힌 것이다. 이에 어울리게 무덤 곳곳에는 불교와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널방 동벽의 북쪽에는 활짝 핀 커다란 연꽃 2송이가 마치 하늘로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남벽의 동쪽편에도 마찬가지로 한송이 연꽃이 피어나는 그림이 있다. 이 두 연꽃 그림 사이에 해당되는 동벽 남쪽에는 칠보공양이라는 불교 행사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두 장면의 연꽃 송이와 칠보공양도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또 남벽 서쪽편 마굿간 앞에도 희미하지만 연꽃 그림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런 그림을 무덤 주인공을 모신 널방 벽에 그린 것은 불교적 내세의 삶을 기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널방 동벽 칠보 행사도(복원)
▲ 널방 동벽 칠보 행사도(복원)
덕흥리 무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꽃들로 장식된 세계는 중생들이 죽은 뒤에 가기를 염원하는 극락정토이다. 그래서 이 무덤방을 바로 서방 정토세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무량수경'이 구현된 세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칠보공양도의 상단 한가운데에 그려진 나무는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보리수나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널방의 연꽃 사례를 보면 앞방 천장석에 흔적이 남아 있는 활짝 핀 연꽃도 불교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안악3호분에도 앞방 천장석에 활짝 핀 연꽃 그림이 있음을 환기해보자. 덕흥리고분의 예와 마찬가지로 안악3호분의 연꽃 역시 불교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소수림왕 불교 공인 이전에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칠보공양도 행사를 주관하는 인물은 중리도독(中裏都督)이라고 쓰여 있다. 이 중리도독이 무덤 주인공인 진이라면 왜 묘지명에 이 관직이 기록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이 중리도독을 무덤 주인공과는 다른 인물로 보기도 한다. 중리도독이 진이든 혹은 다른 인물이든, 이 칠보공양 불교 행사에 무덤 주인공이 참여하였음은 물론이다. 특히 칠보공양도와 묵서명은 고구려 고분벽화 중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여기서만 유일하게 확인되는 견우직녀도와 함께 덕흥리고분의 벽화가 갖는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배가시켜 준다.

덕흥리고분 무덤방에는 불교신앙의 세계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앞방 천장에는 5세기 고구려 사람들이 상상하는 하늘세계의 모습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삼조오로 표현된 해, 두꺼비를 품고 있는 달이 각각 동서에 그려져 있고 북쪽의 북두칠성, 남쪽의 남두육성을 비롯해 64개의 별자리가 사방에 펼쳐져 있다. 이들 별자리가 방위별로 배치되고, 화수목금토 5행성 역시 방위로 나뉘어 자리 잡고 있다. 별과 별자리들은 밝기에 따라 별의 크기를 달리하여 그려진 점도 인상적이다. 천문관측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천문과학 같은 그런 의도가 아니다. 밤하늘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것은 그곳에 있다고 믿고 있는 하늘세계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하늘세계의 묘사는 별자리 신앙과 관련된다.

별과 별자리들 사이 사이에 천장 가득 온갖 새와 짐승, 물고기,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 그려져 있다. 북쪽 하늘에 북극성, 북두칠성과 함께 그려진 일신양두(一身兩頭)의 지축상은 일종의 지신(地神)이다. 지축의 동쪽에는 천마가 그려져 있는데, 경주 천마총의 천마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앞방 동벽 천장 (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 앞방 동벽 천장 (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앞방 서벽 천장 (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 앞방 서벽 천장 (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도록)
남쪽 하늘에는 견우직녀 사이를 흐르는 은하수 좌우에 부귀(富貴), 길리(吉利)의 소망을 담은 상상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동쪽 하늘에는 날개 달린 물고기 형상의 비어(飛魚), 불꽃을 밟고 날갯짓하는 불새 양수(陽燧)가 하늘을 날고 있다. 서쪽 하늘에는 장수에 대한 바램을 담은 천추, 만세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갖가지 신이한 동물들은 중국 '산해경'이 담고 있는 세계와 연결된다.

별자리와 이런 신이한 존재들 사이로 연꽃 줄기를 손에 쥔 채 하늘을 나는 선인(仙人)과 옥녀(玉女)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세계에 신선 신앙과 도교 사상이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묘지명에는 '주공(周公)이 땅을 보고 공자(孔子)가 날을 택했으며 무왕(武王)이 때를 정했다. 날짜와 시간의 택함이 한결같이 좋다'고 쓰고 있으니, 중국 위진시대 풍수지리에 의해 장지를 결정하는 장지풍수관(葬地風水觀)도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덕흥리 고분에는 불교신앙이 중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신선신앙과 도가, 풍수관과 산해경의 세계 등이 두루두루 어우러져 있다. 이런 다양한 사상과 관련들이 어떻게 함께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까? 진이 살던 시대를 상기해보자.

당시 중국 대륙은 남북조시대, 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여러 곡절로 제 땅을 지키지 못하고 수많은 유민이 발생하고 이주해 갔다.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귀족과 관료 등 지배층들도 마찬가지였다. 안악3호분의 동수도 그러했고, 덕흥리고분의 유주자사 진도 매한가지다. 진 역시 태어난 곳과 벼슬하던 왕조에서 생을 마치지 못하고 먼 동쪽 고구려까지 망명해왔다.

현실의 고단함이 깊어갔던 시대, 그런 시대에는 현생의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장생불사, 정토왕생의 내세를 꿈꾸는 많은 신앙과 사상들이 나타나고 커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상과 염원이 가득한 하늘세계, 그 화려한 벽화의 이면에는 현실의 고단함이 배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위 벼슬을 하고 고구려에 들어와서도 국소대형 등 관등을 받고 고구려왕명을 받아 평안도 일대 중국계 이주민들을 다스렸던 유주자사 진. 그의 삶도 그럴진대, 하물며 일반 백성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랴. 덕흥리고분 벽화 속에서 눈에 보이는 내세에 대한 기원만 읽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현실의 고단함도 함께 읽어볼 때, 그 시대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진의 묘지명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부유함은 7세에 미쳐 자손이 번창하고 관직도 날마다 올라 자리는 후왕(侯王)이 되기를…무덤을 찾는 이가 끊이지 않기를' 묘지명대로 오늘날 이리도 유명해진 덕흥리고분에는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주자사 진이 소망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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