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탄 브로드컴 회장은 반도체 3위 기업인 퀄컴 사냥에 성공할까

최초입력 2018.02.12 06:01:00
최종수정 2018.02.13 10:59:24

혹 탄 브로드컴 회장
▲ 혹 탄 브로드컴 회장


[글로벌 CEO열전-47] 세계 반도체 3위와 4위 업체가 하나로 합치는 일을 놓고 엄청난 밀당(밀고 당기기)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3위가 4위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4위가 3위를 품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눈길을 끌었지만 눈덩이처럼 커지는 머니게임도 흥미를 유발한다. 퀄컴 사냥에 나선 브로드컴 이야기다. 드라마의 주연은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혹 탄 회장이고, 조연은 폴 제이컵스 퀄컴 회장이다.

탄 회장은 지난 5일 새로운 인수 가격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제안했던 주당 70달러보다 12달러나 많은 82달러를 베팅하겠다는 것이었다. 퀄컴의 평균 주가와 비교하면 많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퀄컴이 보유한 부채까지 포함하면 인수 총액은 146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에도 인수를 타진했지만 퀄컴의 제이컵스 회장은 너무 저평가했다며 거절했다.

탄 회장은 이번에 반드시 퀄컴의 동의를 받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FT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검토했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퀄컴은 이 정도의 금액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 8일 제이컵스 회장은 탄 회장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퀄컴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브로드컴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퀄컴의 가치가 과소평가됐다는 관점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까지 하며 배수진을 쳤던 탄 회장은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인수 금액을 더 높일 것인가, 아니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설 것인가? 앞으로 펼쳐질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작전이 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보인다.

퀄컴의 거절로 어려운 국면에 직면해 있지만 탄 회장이 여기서 중단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말레이시아 페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탄 회장은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MIT에서 공부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땄다. 첫 직장생활은 말레이시아에서 했지만 곧 싱가포르 벤처캐피털로 회사를 옮겼다. 그곳에서 5년간 일하면서 그는 기업 인수·합병을 비롯한 기업금융에 눈을 떴다. 그가 젊은 시절 쌓았던 경력은 펩시와 GM, ICS와 IDT, 코모도어인터내셔널 등 그후에 몸담았던 미국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저력이 됐다.

그가 비즈니스 리더로 부상한 발판은 싱가포르 반도체 업체인 아바고다. 탄 회장은 2006년 이 회사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로 영입됐다. 미국 반도체 기업에 오래 근무했던 경험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아바고의 사령탑에 오른 뒤 그는 퀄컴과 브로드컴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브로드컴 인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때 그는 370억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새롭게 태어난 브로드컴은 탄 회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통신용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키우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의 퀄컴 인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회사가 합쳐져 창출할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그는 퀄컴 인수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브로드컴과 퀄컴은 강점이 다르다.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두 회사가 결합하면 제품의 종류와 범위를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기술 개발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주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탄 회장의 말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브로드컴은 통신 분야 반도체 기술이 뛰어난 기업이다. 이에 반해 퀄컴은 모바일 통신 반도체와 블루투스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회사다. 퀄컴이 현재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이동통신 분야의 기술 독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도 퀄컴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브로드컴과 합치면 천군만마를 얻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탄 회장은 믿고 있다. 물론 브로드컴 입장에서는 퀄컴을 인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탄 회장은 퀄컴 인수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걸 확률이 높다. 그것이 그의 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브로드컴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퀄컴 인수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1971년 나는 깡마른 말레이시아 18세 소년이었다. 내 부모님은 미국의 MIT는커녕 말레이시아 대학도 보낼 형편이 못됐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렇게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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