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의 기권 결정, '포기할 줄 아는 용기'였던 이유

최초입력 2018.02.13 06:01:00
최종수정 2018.02.13 11:30:47

한국 테니스의
▲ 한국 테니스의 '간판스타' 정현이 지난 1월 26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4강전에서 로저 페더러에게 아쉽게 기권패한 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쇼미 더 스포츠-76] 지금은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이라 약간 잠잠해졌지만 올해 스포츠계 최고 화제는 역시 정현 선수의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4강 진출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긴 하지만 호주오픈 4강 진출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개인 종목 올림픽 금메달이나 축구 월드컵 4강보다 더 어렵고 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일을 해냈고 이에 걸맞은 관심과 찬사가 정현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다. 정말 정현 선수는 이번 호주 오픈을 통해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확한 서브와 패싱샷,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불려도 손색없는 백핸드 스트로크, 타이브레이크를 모두 따내는 등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재치 있고 개념 있는 인터뷰까지 모두가 완벽한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호주오픈에서 알 수 있는 정현 선수의 숨겨진 장점은 그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호주 오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으로 정현 선수가 4강전에서 경기를 끝내지 못하고 중간에 기권패한 것을 꼽을 것이다. 정현 선수의 발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는 내용이 각종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 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으로 정현 선수가 기권패한 사실을 그다지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훌륭한 정현 선수가 뭔가 "잘못한" 것을 두둔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랄까?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발에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었으니 좀 이해해주자.' 하지만 정현 선수가 경기를 중간에 멈춘 것은 이렇게 이해하고 봐줄 일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우선 개인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중간에 기권하는 일이 경기를 끝까지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끝까지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끝까지 하는 선수를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에 많은 선수가 동의한다. 따라서 선수 자신에게나 팬들에게 실망을 안길 수 있는 경기 포기보다는 힘들어도 눈 딱 감고 끝까지 경기를 하는 것이 속 편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보편적이라는 걸을 알면서도 정현 선수는 자신이 최상의 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없기에 경기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완주를 위한 완주에 집착하기보다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후 자신만의 마무리 지점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적절한 상황에서 포기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지속하면 부상의 회복을 더디게 하거나 아예 회복하지 못할 손상이 생길 수 있다. 부상 부위가 아닌 다른 관련 부분에 추가 부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밸런스가 무너지는 기술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포기하지 않으려다 오히려 지는 것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사실 정현 선수의 4강 상대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는 정현의 컨디션이 100%라고 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하길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상으로 인해 경기다운 경기를 펼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1세트가 끝난 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하는 것이 아름다운가? 부상을 악화시켜서 다음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현 선수는 미래에 페더러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몸을 보호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이번 대회 4강 진출까지 정현 선수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테니스는 신체적 접촉이 없어서 격렬하지 않은 운동이라는 착시현상을 주는 운동이다.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지 보는 사람이 정확하게 느끼기 어렵다는 얘기다. 본인의 테니스 수준에 관계없이 테니스 단식 경기를 여름에 1세트 또는 1시간만 뛰어 보시라. 한동안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30도를 웃도는 호주에서 11일간 6경기, 장장 777분을 쉬지 않고 뛰었다. 발에 특별한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뛰고 발이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이상한 거다. 더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때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현명한 것이고 용기 있는 행동이다.

스포츠, 나아가서는 우리 문화엔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미화하고 권장하는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현 선수 기권이 정현 선수의 완벽한 호주오픈에 옥에 티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불굴의 의지는 아름답다. 하지만 많은 경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인 이유는 상식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따져 보면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오히려 해가 되는 (부상을 악화시키는 것 같은) 비합리적인 일일 때가 많다. 이런 일을 앞뒤 따져 보지도 않고 미덕으로 여기고 부추길 이유가 뭘까? 보기 좋자고? 감동을 주니까? 그런 거 말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스포츠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포기에 대한 이분법적 편견에서 벗어나 소신껏 행동하는 용기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지혜를 가진 정현 선수를 다시 한 번 칭찬하고 싶다.

[김유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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