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패기, 그 불편함과 느림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

최초입력 2018.04.10 06:01:00
최종수정 2018.04.09 20:15:16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31] 장작은 팰 때 한 번, 태울 때 한 번 몸을 데운다

'노르웨이의 나무-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라르스 뮈팅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물고기 모양으로 쌓은 장작
▲ 물고기 모양으로 쌓은 장작


노르웨이에서 몇 년 전 이런 TV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다. 일명 느린 TV. 노르웨이의 서남부 해안도시 베르겐에서 수도 오슬로로 가는 기차 맨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7시간 동안 이 카메라가 찍은 장면을 '베르겐 기차 여행(Bergen Line)'이란 제목으로 방송한 것이다.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덮인 풍경이 7시간 펼쳐졌다. 금요일 밤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평소보다 4배 높은 1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뿐 아니다. 크루즈선이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을 항해하는 장면을 134시간 동안 실시간 방송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노르웨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50만명이 6일 동안 시청했다. 이런 현상을 노르웨이 사람들은 "긴긴 겨울밤 온가족이 장작난로 옆에 모여 뜨개질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오래된 전통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tvN
▲ tvN '숲속의 작은 집' 포스터. 자발적 불편이 깨우쳐 주는 가치에 주목한 프로그램이다.


'느린 삶'에 대한 갈망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북유럽 사람들만의 '사치'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갈망이 봄 새싹처럼 움트고 있다. tvN의 '나영석표 예능'의 성공은 우리 속에 숨어 있는 '느린 삶'에 대한 갈망을 제대로 포착해낸 결과다. 산골이나 어촌마을에 들어가 세 끼 밥을 해먹는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영석 PD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피실험자가 숲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자발적 고립 프로젝트'를 모토로 한 '숲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전기는 태양열로 하고, 난방은 장작을 패서 하고, 음식도 최소한으로 해먹는 '친환경 미니멀 라이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느린 삶'에 대한 갈망과 '느린 삶'을 선택하는 용기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의 문제와 관련 있다. 경제 기관차의 속도가 느려지니 사람들은 거기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또 기관차에 몸을 싣고 있는 것과 거기에서 뛰어내려 다른 차를 타거나 아니면 걷는 것을 비교했을 때 기회비용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뛰어내릴 용기를 내게 한다. 제자리걸음인 경제 성장이 '삶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여하는 바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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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나무'는 장작 패기에 관한 책이다. 원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똑같은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지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나무'라고 한국어판 제목을 붙인 이 책의 부제는 '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책이 19개 나라에 번역, 소개되면서 60만부나 팔려나갔다. 장작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을 넘어선 다른 무엇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노르웨이에서 땔나무 사용량이 계속 줄어들다가 최근 들어 폭증해서 1976년의 열 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다. 우선 청정에너지로 환경주의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벌목 기술의 발전으로 경제적인 에너지원이 됐다. 하지만 환경·경제적인 문제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장작불의 귀환을 돈 문제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장작불을 때면서 풍요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먼 옛날 불 주위에 모여 앉은 선조들처럼 우리도 불에 끌린다. 라디에이터의 열과 장작 난로의 열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중략)장작불과 잉걸불은 햇빛과 같은 적외선 전자기파 복사열을 내보낸다. 복사열이 도달하면 피부와 몸속이 빠르고 강렬하게 데워져 몸이 편안해지고 안도감이 느껴진다. (중략) 여기다 나무 냄새와 소량의 나무 연기, 수리로 달라지는 불꽃의 유희가 어우러지면서 우리는 태곳적 불의 마법과 연결된다."(33쪽)

"장작을 패고 쌓는 것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며 시골의 장작더미를 보면 숲과 집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옛 낭만적 민족주의의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형태일 뿐 아니라 크로스컨트리 스키, 소박한 지방 신문, 말코손바닥사슴 사냥 못지않은 우리 문화의 정수다."(34쪽)

장작 더미 앞의 저자 라르스 뮈팅
▲ 장작 더미 앞의 저자 라르스 뮈팅


2007년 1월 노르웨이의 노를란 스테이겐의 외딴 마을에서 지독하게 춥고 궂은 날에 엿새 동안 전력 공급이 중단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 위기를 넘겼다. 집에 있던 장작과 장작 난로 덕분이었다. 이런 까닭에 노르웨이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주택에는 대체 난방 수단을 갖추는 것이 법률적 의무인데 장작 난로야말로 여기에 제격인 셈이다.

노르웨이에서는 8시간 동안 화로에 장작이 타는 모습을 방송한 적도 있다.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꽃과 '탁탁' 소리가 모두였다. 노르웨이 사람 5명 중 1명이 이 프로그램을 봤다.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꽃과 소리에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고 한다. 시냇물 소리,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비 떨어지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등에 집중하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얘기다.

영화
▲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장면. 이 영화가 가진 힐링 효과는 대부분 소리에서 온다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는 바로 이 ASMR를 극대화한 영화다. 영화는 시골집에서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음식을 해먹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화가 주는 힐링 효과의 대부분은 타닥타닥 도마 소리,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 아삭아삭 씹는 소리 등에서 온다.

ASMR에 치유 효과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복잡한 감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등 온갖 소음이 섞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른 모든 소리가 제거된 단 하나의 순수한 소리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동안거에 든 선승들이 벽에 점 하나 찍어 놓고 면벽 수행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작 패기와 장작불 지피기에 집중하다보니 저자는 나무마다 장작이 탈 때 불꽃의 색깔이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는 것은 물론 나무마다 장작불의 용도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거의 득도의 경지로 느껴진다.

"장작 애호가들은 침엽수의 탁탁 타는 소리를 좋아하고 벽난로 구멍으로 보이는 사시나무의 넓고 납작한 불꽃을 음미하며 저녁에는 더 단단한 나무로 열을 낼 것이다. 단단한 나무는 오래 탈 뿐 아니라 다음 장작을 태우기 위한 잉걸(불이 피워진 숯덩이)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뚫린 난로에서 침엽수를 때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데, 불꽃에서 불똥이 튀기 때문이다. 야외 모닥불 가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해거름에는 활엽수를 쓰는 것이 좋다. 추울 때는 본능적으로 불꽃 가까이 다가가게 마련이어서 불똥 때문에 참낭과 옷에 구멍이 나기 십상이다....견목은 불쏘시개로 쓰기 힘들므로 경험 많은 벌목인은 가문비나무와 사시나무를 듬뿍 베어 둔다. 이 나무들은 생장 구조 덕분에 가는 작대기로 쪼개기 쉬운데 그래서 불쏘시개로 안성맞춤이다."(70~71쪽)


장작 더미
▲ 장작 더미


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은 현대인에게 남은 가장 원시적인 노동의 형태 중 하나이다. 저자는 "장작 패기처럼 고된 육체노동을 하면 현대의 다른 직업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작 패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일상에서 더 사려 깊게 행동하고 아이들과 더 적극적으로 놀아주고 평소에 말하기 꺼려지던 것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육체노동을 하면 정신적 평안을 얻을 수 있다. 한 번 쪼갠 장작은 영영 쪼개진 채다. 쪼갠 것을 되돌릴 수도, 개선할 수도 없다. 그날의 짜증은 나무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나무에서 난로 속으로 사라진다. 땔나무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한 가지는 타서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위원회도 땔나무를 조사하지 않고, 경쟁하는 다른 장작과 비교할 일도 없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면 엉성하게 자르고 서툴게 쪼갠 장작도 모두 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장작이 내뿜는 열은 완벽한 장작이 내뿜는 열과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집불통 소나무 뿌리를 태울 때 향기가 나지 않던가?(138쪽)

사실 인류가 시간을 내서 운동이라는 것을 따로 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육체가 제거된 노동이 어쩌면 우리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기도, 걷기도, 바이크도, 등산도 장작 패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몸에 낀 비계덩어리뿐 아니라 정신의 비계덩어리도 덜어내는 일이다.

신영복 선생은 "우리 몸의 중심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프고 불편한 곳"이라고 답했다. 손가락에 티눈이라도 하나 박혀도 우리는 손가락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하고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지만 '자발적 불편함'이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해준다는 의미로도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다르게 보였다.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혼잡한 도로,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도 심각하게 다가왔고 새로운 가치에 눈뜨게 했다. 또 이것이 연쇄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유발했다. 각자 '자발적 불편함'을 하나씩 선택했으면 좋겠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불편함 하나만이라도. 분명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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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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