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조작사건과 촘스키의 '플랙(Flak)'

최초입력 2018.04.17 15:02:00
최종수정 2018.04.19 09:20:36

/삽화=양만금 화백
▲ /삽화=양만금 화백


[전광우·손현덕 통쾌한 경제-65] 지난 주말 벌어진 '드루킹'의 댓글 조작 사건의 파장이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해명이 있긴 했지만 현 정권의 실세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이는 것도 부담일 것입니다. 사건의 내막이야 언론을 통해 소상하게 보도돼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론 조작입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매크로 프로그램(macro program)'과 같은 여론 조작 장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로 쉽게 말하면 여론 뻥튀기입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저에겐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놈 촘스키입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만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인데 벌써 16년이나 됐습니다. '미국의 양심'이라는 말도 듣고 현존하는 지식인 중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도 꼽히는 분입니다. 당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로 있었습니다.

놈 촘스키/사진=연합뉴스
▲ 놈 촘스키/사진=연합뉴스


두꺼운 철테 안경을 걸친 백발의 노교수는 노타이에 푸른색 와이셔츠 바람으로 대학 농구장에 마련된 연단에 섰습니다. 수용 인원을 고려해 주최 측이 티켓을 2300장 팔았는데 강연 1시간 전쯤에 모두 매진됐습니다. 강연은 무려 3시간이나 지속됐고 도중에 박수 소리가 터져나오는 등 강연장은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촘스키 교수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좌파 지식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저랑은 결이 다른 분입니다. 그의 논리 체계와 사유 세계가 궁금했습니다.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때마다 완곡하게 거절당해 오기가 발동해 직접 티켓을 구입해 들어보게 된 것입니다.

촘스키는 이날 강연에서 링컨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 대해 냉소를 퍼부으며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민이 당사자가 아닌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비판하는 한편 자유경제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무역의 성장을 한마디로 '조크'라고 치부하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온통 위선과 거짓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그런 그가 언론에 대해 쓴 책이 하나 있는데 최근의 이 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어 소개합니다. 에드워드 허먼 당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재무담당 교수와 같이 1988년에 쓴 책입니다. '언론의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 of communication)'을 주류 미디어에 적용해 뉴스가 어떤 식으로 왜곡되는지 5가지 필터(five filters of editorial bias)를 사례와 함께 다뤘습니다. 허먼이 이 책의 제1 저자이고 촘스키는 제2 저자입니다.

참고로 올해 90세가 넘은 허먼 교수는 1960년대 미국 반전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500명의 지성 중 한 명으로, 이 과정에서 촘스키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 후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스쿨에서 언론학 강의를 하기도 하지요.

이 책이 출판된 지 거의 20년 만인 2006년 4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이 돼 소개됐습니다. '여론조작: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전공서적 형태로 나왔는데 얼마 안 가 절판됐습니다.

허만과 촘스키 교수의 '프로파간다 모델'에 따르면 "대중매체에는 5가지 편집 왜곡 기재가 작동해 언론은 지배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소위 '플랙(Flak)'이란 겁니다. 꽤나 어려운 영어 단어인데 '대공격' 정도로 번역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했는데 "독자편지, 항의, 소송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negative responses to a media statement or program e.g. letters, complaints, lawsuits or legislative actions)"이라고 했습니다. 의역을 하자면 불만을 가진 세력이 미디어를 길들이기 위해 공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미디어 입장에서는 '플랙'을 당하면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치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자기 검열이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플랙'이 나타나면 광고 수입이 줄고 송사에 따르는 법적 비용이나 이미지 관리 비용 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플랙'은 주로 누가 만드느냐? 이건 영향력 있는 그룹, 주로 싱크탱크들이 만든다고 허먼과 촘스키는 주장합니다. 미디어들은 이들 압력단체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요.

30년 전 촘스키가 말한 언론 환경과 지금의 언론 환경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당시에는 구글도 없었고 페이스북도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네이버도 없었고 다음카카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카카오에 팔린 우리나라 토종 포털 1세대인 다음이 촘스키의 이 책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인지과학을 공부하던 다음 창업주인 이재웅은 이 책을 영화화한 다큐멘터리 '합의조작'을 관람하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촘스키가 말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인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고 촘스키는 직접 인터넷 포털이라고 말한 적 없지만 본인 마음속에서는 바로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26세 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다음을 창업했다고 하지요. 그 당시 소회를 적어 2003년 5월 모 일간지에 기고했습니다.

이렇게 미디어 포털이란 게 우리나라에도 생겨났는데 참으로 공교롭게 촘스키가 말한 '플랙'의 변종도 동시에 생겨나게 됐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사건의 핵심인 댓글입니다. 여론과 미디어에 대한 대공격이지요.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함으로써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고, 언론사들은 여러 가지 부정적 요인을 생각해 스스로 주눅 들고.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시민 참여에 활기를 불어넣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선 진정한 민주주의와 소통을 실현할 수 있는 기념비적 '선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재난이 되고 있다는 경각심이 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격을 모독하는 이른바 '악플'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일부 특정 세력은 조직적으로 댓글 달기에 뛰어들어 '집단적 광기'를 순식간에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악용된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해 공론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원래 의도는 공론장(public sphere)이었는데 이제는 난장(wild publics)이라는 괴물로 진화했다는 비판인 거지요.

사태가 오죽했으면 여당인 민주당이 이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열게 됐나 싶습니다. 신경민·박광온 의원이 주관했는데 주제는 '가짜뉴스, 혐오·차별 표현, 댓글 조작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추미애 대표가 축사를 했는데 "악성 댓글은 익명의 가면에 숨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디지털 테러"라며 "국민 사이에 불신과 분열을 부추기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신경민 의원의 짤막한 제언 3가지가 강력하면서도 핵심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1)네이버와 다음은 권력이다. 권력만큼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2)악성 댓글과 가짜 뉴스는 공적·사적 규제가 필요한 정치적·사회적 현상이다.

(3)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신 의원은 "과연 포털 뉴스의 댓글 기능이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뉴스 플랫폼 사업자들의 책임이 한층 더 강조돼야 할 상황이고,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시급해 보입니다. 더욱이 민주당이 관여된 사건이니 만큼 쉽게 넘어갈 수는 없어 보입니다.

[손현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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