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홍콩' 파나마에서 최고급 게이샤커피 맛보다

최초입력 2017.03.04 06:01:00
최종수정 2017.03.07 10:51:02

파나마시티 알브룩 공항.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시티 알브룩 공항. /사진=김인오 기자
[뉴스&와이] Part 1. 치리키 주, 보케테

- '신(神)이 내린 땅'…디벨로퍼가 만든 커피 농장과 게이트 커뮤니티(gate community)

- 세계에서 가장 비싼 3대 커피 '게이샤'를 따는 느고베부글레 인디언, 그리고 인터내셔널 리빙 지(紙)를 따라 날아든 '스노우버드 족(族)'

보케테 마을 풍경. /사진=김인오 기자
▲ 보케테 마을 풍경. /사진=김인오 기자
 "멀리서 왔으면서 왜 시티는 안 가고 먼 산 동네를 가는 거야?"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파나마시티의 쨍한 햇빛과 바닷바람에 잠시 넋을 놓은 사이 택시를 운전하던 아우렐리오 투뇽 씨(Aurelio Tunon)가 말을 건넵니다. "조용히 혼자 커피나 마시면서 쉬고 싶거든…."

 30여 시간을 날아 온 '중남미의 홍콩', 파나마에서 가장 먼저 머무르기로 한 곳은 치리키 주의 볼칸바루(Volcanbaru) 산골짜기 '보케테(Boquete)' 마을입니다. 수도인 파나마시티보다 옆 나라 코스타리카가 더 가까운 곳입니다.

 파나마시티에서 버스로는 6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이 걸리는 다비드(David)시에서 다시 50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보케테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3대 커피 중 하나로 꼽히는 '게이샤 커피'가 나오는 곳입니다. 차를 타고 들어갈수록 귀가 먹먹해지는 이유는 백두산(해발 2744m)보다 높은 볼칸바루(해발 3475m)가 내뿜는 기압 때문입니다. 평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느낌이지만 그래도 높은 고도와 기압은 커피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한 조건 중 하나라고 합니다.

보케테 마을. /사진=김인오 기자
▲ 보케테 마을. /사진=김인오 기자
보케테 마을과 커피농장의 인디언 아이들. /사진=김인오 기자
▲ 보케테 마을과 커피농장의 인디언 아이들. /사진=김인오 기자
 낮잠을 자다 일어난 오후 3시, 반짝이는 태양 사이로 안개비가 뿌립니다. 마치 누군가가 하늘에서 선스프레이를 뿌리는 느낌입니다. '신이 있다면 하늘에서 이곳에 물을 줘가며 가꾸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낭만 섞인 착각이 들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이곳 사람들은 보케테를 '신이 내린 땅'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거의 매일 벌어지는 이 특이한 현상을 보케테에서는 '바하레케(Bajareque)'라고 부릅니다.

커피 열매를 따는 사람. /사진=김인오
▲ 커피 열매를 따는 사람. /사진=김인오
수확한 커피 열매를 나르는 느고베부글레 인디언들. /사진=김인오 기자
▲ 수확한 커피 열매를 나르는 느고베부글레 인디언들. /사진=김인오 기자
 볼칸바루라는 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 흙은 화산토입니다. 바하레케 같은 특수한 기후(microclimate), 고도 조건까지 합쳐서 가질 건 다 가진 보케테는 파나마의 대표 커피 생산지가 됐다고 합니다. 루이즈 카페의 커피 농장은 여기저기 커피나무와 이름 모를 꽃, 오렌지와 아보카도 나무, 산딸기 등등이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산 속 정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오일을 발라 놓은 것처럼 윤기가 도는 진초록빛 커피 잎사귀들 사이로 색색의 원피스를 입은 느고베부글레(Ngobe-Bugle) 인디언들이 새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러 갑니다. 인디언들의 예리한 눈을 피해 남겨진 열매는 혼자 까맣게 무른 후 땅으로 떨어져 여기저기서 싹을 틔웁니다.

게이샤 커피가 탄생하는 과정들. /사진=김인오 기자
▲ 게이샤 커피가 탄생하는 과정들. /사진=김인오 기자
 "게이샤(Geisha)는 일본의 '기생'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유독 일본에서 고급 커피(specialty coffee)를 찾다 보니 게이샤로 발음되면서 마케팅 효과는 좋았습니다만…." 이곳에서 20여 년간 일했다는 카를로스 씨의 말입니다. 게이샤는 에디오피아의 아라비카 원두 게샤(Gesha)종이 파나마 보케테로 넘어온 것입니다. 현지에서도 한 잔에 1만원이 넘는 가격을 자랑하는데 '루왁(사향고양이 배설물에 섞인 원두로 만드는 커피)·아이보리 블랙(코끼리 배설물에 섞인 원두로 만드는 커피)'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꼽힙니다. 게이샤 커피는 일본과 우리나라, 미국에서 주로 찾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요미식회'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강원도 강릉 카페 보헤미안로스터즈에서 '팔수록 손해 보는 커피' 메뉴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습니다. 다양성을 중시하면서 농장마다 각각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데, 잘 알려진 브랜드 겸 농장으로는 '에스메랄다(Esmeralda)·시톤(Sitton)·코토와(Kotowa)·엘리다(Elida)·루이즈(Ruiz)·도스 헤페스(Dos Jefes)' 등이 있습니다.

포장된 게이샤 커피. /사진=김인오 기자
▲ 포장된 게이샤 커피. /사진=김인오 기자
보케테 마을, 땅 판다는 내용의 팻말. /사진=김인오 기자
▲ 보케테 마을, 땅 판다는 내용의 팻말. /사진=김인오 기자
휘날리는 파나마 국기. /사진=김인오 기자
▲ 휘날리는 파나마 국기. /사진=김인오 기자
 게이샤 커피는 보케테 마을에서 일어난 부동산 개발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시작된 1세대 개발은 '커피 농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파나마 여성과 결혼한 영국 퇴역 해군 대령이 들여온 커피들이 결국 보케테에서 잘 자라게 되면서 미국·캐나다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자)들이 커피 농장을 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브라질이 커피를 대량 재배·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의 커피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브라질이 남아도는 커피 콩을 증기기관차의 땔감으로 쓸 때 파나마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커피 농장들이 줄줄이 파산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보케테에서는 '게이트 커뮤니티(gate community)'를 만드는 2세대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게이트 커뮤니티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은퇴자들을 위한 거주지역으로 골프클럽·수영장·스파 등이 갖춰진 고급 주택가입니다. 넓은 주택 용지에 들어서서 지문 인식 등을 거쳐야만 겨우 현관에 다다를 수 있을 정도로 외부와 차단된 곳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인디언들은 '게이트 커뮤니티 집에 가는 것이 코스타리카 국경을 넘기보다 더 힘들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2001년께 보케테에 처음 들어선 게이트 커뮤니티는 리조트와 골프클럽, 스파 등이 갖춰진 '바예 에스콘티도(Valle Escondido)'로, 샘 탈리아페로(Sam Taliaferro)라는 디벨로퍼가 지었습니다. 당시 167~300㎡ 정도 면적의 집 한 채당 가격은 15만달러에서 22만5000달러(1억7000만~2억5500만원) 선이었는데, 보케테에서 태어나 자란 카를로스 씨에 따르면 당시 땅값은 1ha에 5000달러(568만원) 선으로 167~300㎡ 면적으로 치면 9만5000~17만원 선이었습니다. 디벨로퍼들이 '인터내셔널리빙(International Living)' 같은 잡지 등을 이용해 '은퇴 후 따뜻한 중남미에 살아보세요' 식의 홍보에 성공하면서 보케테의 땅값이 폭등했고 커피 농장은 속속 게이트 커뮤니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카를로스 씨는 "2003년에는 1ha가 25만달러까지 폭등하면서 너도 나도 땅을 팔았다"며 "(땅을) 판다는 의미의 '세벤데(se vende)' 팻말이 여기저기 세워지는 바람에 한때 보케테의 별명이 '세벤데 마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와중에 보케테의 커피 농장들은 '고급화'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농장들이 게이샤 커피 수확에 성공했습니다. 보케테에는 고급 커피(specialty coffee)와 이른바 '스노버드(snowbirds·매년 추운 겨울을 피해 게이트 커뮤니티를 찾아 장기 거주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북미 대륙·유럽 은퇴자들을 일컫는 말)'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김인오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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