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 옆 고층빌딩 숲 파나마시티의 열정과 욕망

최초입력 2017.03.06 06:01:00
최종수정 2017.03.07 10:59:10

[뉴스&와이] Part 2. 파나마 시티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 숲…마천루 짓기 경쟁 속 '트럼프 오션클럽' vs 진짜 랜드마크 '파나마 운하'

-돈세탁 '파나마페이퍼스'와 건설사 뇌물 수수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의 한가운데 선 모색 폰세카

해안을 따라 늘어선 파나마 고층 빌딩숲. /사진=김인오 기자
▲ 해안을 따라 늘어선 파나마 고층 빌딩숲. /사진=김인오 기자
 푸른 바다를 따라 고층 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파나마시티. 영화 '파나마 사기극(Panama Deception)'의 배경이기도 한 파나마시티는 '중남미의 홍콩' 같습니다. 랜드마크 경쟁을 하듯 높게 올려 지은 건물 숲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꽈배기 모양의 '엘 토르니요(El Tornillo)' 빌딩과 '트럼프 오션클럽(Trump Ocean Club)'입니다. 둘 다 2011년 지어진 건물로 당시는 파나마가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돈으로 130억달러(14조7000억여 원) 규모의 대형 공공 공사를 벌이면서 연간 GDP 상승률이 2008년 이후 최고치인 11.8%를 기록하던 때입니다.

엘 또르니요와 트럼프 오션클럽. /사진=김인오 기자
▲ 엘 또르니요와 트럼프 오션클럽. /사진=김인오 기자
 높이가 242.9m(지상 52층)에 이르는 토르니요 빌딩은 2011년 글로벌 건축물 평가사인 엠포리스(Emporis)사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의 10대 고층 건축물'에 들었습니다. 현재는 파나마 보험사인 BBA가 쓰는 중입니다. 파나마시티 해변의 끝자락 푼타 파시피카(Punta Pacifica)로 가면 '트럼프 오션클럽'이 나옵니다. 디벨로퍼인 트럼프사(社)의 중남미 첫 리조트라고 합니다.

트럼프 오션클럽 현관 바닥. /사진=김인오 기자
▲ 트럼프 오션클럽 현관 바닥. /사진=김인오 기자
트럼프 오션클럽 상가 내 공인중개소. /사진=김인오 기자
▲ 트럼프 오션클럽 상가 내 공인중개소. /사진=김인오 기자
 '무엇을 하든 가장 눈에 띄게 하라'는 트럼프의 건물답게 리조트는 284m(지상 70층) 높이로 파나마에서 가장 키가 큰 빌딩입니다. 알파벳 'D'자 모양을 하고 있는 트럼프 오션클럽은 호텔과 레지던스, 상점으로 구성됐고 호텔의 경우 성수기인 12~2월(파나마는 '여름'인 이 3개월을 제외하면 나머지 9개월이 우기임) 가장 낮은 가격은 1박에 19만원 선 정도입니다.
파나마 운하의 갑문.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 운하의 갑문. /사진=김인오 기자
 엘 토르니요나 트럼프 오션클럽처럼 화려한 '마천루'인 건 아니지만 파나마시티에 오면 가봐야 한다는 곳이 있습니다. 파나마 전체로 봐도 명실상부한 랜드마크인 이곳은 바로 '파나마운하(Panama Canal)'입니다. 운하를 주로 이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칠레, 일본, 페루, 한국, 콜롬비아, 멕시코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파나마운하를 오가는 가장 큰 단골은 한진해운이었지만 현재는 현대글로비스가 큰 손님이 되었습니다. 한때 한진해운은 파나마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해 선박을 건조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이렇게 만들어진 한진 네덜란드호가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가압류된 상태입니다.

 전망대에 가만히 앉아 느릿느릿 지나가는 배를 넋 놓고 바라봤습니다. 선원이 갑판에 나와 '배가 통과하는 걸 지켜봐줘서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정신이 들었는데 1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배가 운하를 완전히 통과하는 데는 8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100년을 넘게 열고 닫혔을 갑문을 보니 이런 시간들이 새삼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파나마 운하의 갑문을 통과하는 배.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 운하의 갑문을 통과하는 배. /사진=김인오 기자
 북미와 남미를 잇는 지름길 격인 이 운하를 만들자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16세기 중남미 대륙을 밟았던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운하 건설의 역사는 19세기부터 시작됩니다. 한 번에 완성되지는 못하고 두 번의 시도를 거쳐야 했습니다. 첫번째는 1880~1893년에 이르는 시기로 앞서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발을 이뤄냈던 프랑스의 드 레셉스(de Lesseps)사가 노하우를 살려 공사에 도전했습니다. 드 레셉스사는 프랑스의 외교관을 지낸 후 개발업자가 된 페르디낭 마리 비콩트 드 레셉스(Ferdinand Marie Vicomte de Lesseps, 1805~1894)가 세운 회사입니다. 15년이 채 안되는 공사 기간 동안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인해 무려 2만1900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뒤를 이어 20세기에는 미국이 도전했습니다. 남미 대륙으로 세력 확장을 꿈꾸던 미국은 콜롬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려던 파나마를 지원했습니다. 1903년 독립이 성공하자 미국은 현재의 운하를 기준으로 폭 10마일(1.6㎞) 이내 지역을 미국 영토로 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파나마와 맺었고 바로 다음 해인 1904년 미국은 10년간 총 3억8700만달러(현재 기준 4000억여 달러)를 들여 1914년 8월 15일 82㎞에 달하는 파나마 운하 공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플로리다주에도 '파나마시티'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명칭은 해리슨(Harrison)이었는데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짓던 1906년, 현재의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 개발을 주도한 디벨로퍼 조지 웨스트(George Mortimer West)가 미국 시카고와 파나마를 가로지르는 방향에 놓인 해리슨을 파나마시티로 바꿨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미국의 희망과 달리 파나마는 1950년대 이후 운하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196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마르틴 토리호스(Martin Erasto Torrijos Espino) 대통령이 1977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만나 '미국은 1999년 12월 31일자로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파나마는 2000년 1월 1일 이후 운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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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따르면 파나마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경제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히고 최근 IMF는 중남미 국가들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2018년 중남미 최고 1인당 GDP 국가는 칠레에서 파나마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015년 이후 연간 GDP 성장률이 5% 선인 파나마 경제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파나마운하입니다. 새 운하가 옆에서 추가로 개통(2016년 6월 26일)되기 전에는 매년 평균 1만5000여 척의 배가 기존 운하를 이용했다는데 이 운하 통행료 등으로 거둬들이는 수입 19억여 달러는 파나마 국민소득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모색 폰세카 사무실 안내판을 뗀 아랑고 빌딩. /사진=김인오 기자
▲ 모색 폰세카 사무실 안내판을 뗀 아랑고 빌딩. /사진=김인오 기자
 파나마를 대표하는 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 스캔들입니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스캔들의 한가운데 있던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 & Company)가 돈세탁의 매개가 된 20만여 개 역외 회사의 금융·고객 정보가 포함된 1150만여 건의 기밀문서입니다.

 파나마에 머무는 동안, 파나마 신문인 라에스트레야(La Estrella de Panama)와 라프렌사(La Prensa) 등에 따르면 파나마 검찰은 지난 2월 9일(현지시간) 모색 폰세카를 세운 두 파트너 변호사 위르겐 모색(Juergen Mossack)과 라몬 폰세카(Ramon Fonseca)를 체포했다고 합니다. 파나마 페이퍼스 외에도 중남미 최대 건설사인 브라질의 오데브레히트(Odebrecht)와 관련된 또 다른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파나마 신문 라프렌사, 1면 톱에는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에 엮인 도쿠멘국제공항 공사 기사가 실려있다.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 신문 라프렌사, 1면 톱에는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에 엮인 도쿠멘국제공항 공사 기사가 실려있다. /사진=김인오 기자
 오데브레히트는 공사를 수주하는 대가로 남미 각국 관료들에게 뇌물로 8억달러(9048억여 원)를 줬다고 시인한 바 있는데 이 과정에서 모색 폰세카는 오데브레히트가 해외 계정을 통해 뇌물을 보낼 수 있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오데브레히트는 파나마에서도 8억달러(우리 돈 9048억여 원) 규모의 토쿠멘국제공항(Tocumen International Airport) 2터미널 공사를 수주한 바 있습니다. 오데브레히트가 기존에 수주한 지하철 2호선 공사와 콜론 재개발 사업을 비롯해 이 회사가 입찰한 파나마 운하 4교·지하철 3호선 공사 역시 부정 청탁 사건을 의식하게 된 상황입니다.

 지난 2일부터 김경환 국토교통부 차관의 '해외건설 수주 지원단'이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건설시장을 방문 중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중남미 첫 방문국 파나마에서는 국내 건설사들이 관심을 가지는 '파나마 운하 4교(공사비 12억 달러 규모)·지하철 3호선(21억 달러 규모)·제4송전선(4억5000만 달러 규모)·파나마-콜롬비아 송전망 연결(4억5000만 달러 규모)' 수주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중 가장 규모가 큰 두 프로젝트(지하철 3호선·파나마 운하4교)는 오데브레히트의 입찰이 무효화되면서 틈새가 생긴 사업이기도 합니다.

 굳이 파나마 페이퍼스와 모색 폰세카, 그리고 오데브레히트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지만 모색 폰세카 건물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모색 폰세카는 아랑고 치과와 함께 아랑고 빌딩(Arango Orillac Building)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겪은 후여서인지 조용한 분위기 속에 치과를 찾은 한두 명만이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원래는 건물 앞에 층별 안내 팻말이 있었지만 파나마 페이퍼스 스캔들이 알려진 후로 세계 각국의 언론이 다녀가면서 북새통을 이뤘던 탓인지 팻말은 사라졌습니다.

파나마시티 수산시장의 가게 주인이 생선을 다듬는 모습.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시티 수산시장의 가게 주인이 생선을 다듬는 모습. /사진=김인오 기자
고층 빌딩 숲을 마주한 파나마 시티의 빈민가. /사진=김인오 기자
▲ 고층 빌딩 숲을 마주한 파나마 시티의 빈민가. /사진=김인오 기자
 땅거미가 질 무렵 건물을 뒤로하고 시내를 걸었습니다. 보케테에서 파나마시티를 오가며 보낸 1주일간의 일정은 어느덧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산과 커피, 해변과 빌딩 숲. 극단의 땅을 오가는 날 동안 파나마의 모든 것 혹은 진짜의 모습을 다 보겠다는 욕심은 차마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빌딩 숲이 내다보이는 구시가지 카스코 비에호(Casco Viejo), '위험한 빈민가'라는 중간 지역, 비린내 물씬 풍기는 수산시장, '열정적인 연인'이라는 의미의 후에르테 아마도르(Fuerte Amador) 리조트와 요트 선착장 등등이 달리는 차 밖의 풍경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파나마의 대표 맥주, 파나마. /사진=김인오 기자
▲ 파나마의 대표 맥주, 파나마. /사진=김인오 기자
 파나마를 다시 찾을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추운 겨울이 오면 파나마의 따뜻한 날씨와 보케테의 '바하레케'부터 그리울 것 같습니다. 안녕, 파나마.

[김인오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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