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 그럴까' 웹소설 선풍적 인기 비결

최초입력 2017.03.09 15:01:00
최종수정 2017.03.09 18: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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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사이드-78] '에이~ 로맨스 소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이거 봐라?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얼짱 재벌 2세와 스펙은 낮지만 열심히 살면서 일에서만큼은 똑부러지는 여비서라…. 뭐 알콩달콩 티격태격하다 이어지겠네, 뭘 이런 걸 보나? 어디보자… 흠… 음? 벌써 21회차… 그래, 그러네… 38회차… 뭐? 기다리면 무료인데 보고 싶으면 이용권 충전하라고? 참나, 이게 뭐라고…. 어엇? 또 충전해버렸네. 개미지옥도 아니고 이건 뭐… 휴….'

 카카오페이지의 마수(?)는 무서웠습니다. 계속 충전하는 저를 보고 자괴감이 들었지만 몹쓸 손가락은 또 충전을 눌러버렸지요. 로맨스소설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읽은 사연입니다. 최근엔 웹툰도 출시됐는데요. 솔직히 또 이용권 충전해버렸습니다. 가세가 기울 판입니다. 로맨스 소설이라 하면 솔직히 곁불도 쬐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살기 팍팍하고 바쁜데 언제 낭만 찾냐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이 소설, 흡입력이 진공청소기 저리 가라였습니다. 웹툰은 또 어떻고요. 3월 7일 기준 카카오페이지에서만 구독자가 33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근래 매경프리미엄 기사로 게임소설 '달빛조각사'로 10억원대 연봉을 번다는 작가를 소개한 적 있었는데요. 이런 흡입력이라면 로맨스 소설로도 10억원대까진 아니더라도 억대 연봉은 너끈히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콘텐츠만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이런 시장에서 고수입을 올리는 이들의 세계가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로맨스 소설, 이른바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샤랄라(?)'한 감성을 터뜨리는 소설의 주독자는 소녀들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년을 바라보는 '아재' 기자의 감성도 흔들어버렸습니다. 게다가 '기다리면 무료'라는 미끼 서비스가 있지만 조마조마하게 '다음 편 계속'으로 돈 내고 안 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 콘텐츠 생태계가 새삼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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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정경윤 작가를 만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올라왔습니다. 원래는 약사였답니다. 당연히 '그 좋은, 더 풀어 쓰면 안정적인 직업을 놔두고 왜?'라는 말부터 나왔습니다.

 "약국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뭔가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거 좋아하고 만화도 참 좋아했어요. 약학대학 다닐 때 혼자 노트에 끄적거리고 킥킥거리고 했었지요. 약국을 열고 나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싶은데 로맨스소설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자주 드나들던 로맨스소설 사이트가 있는데요. 콩닥콩닥하는 마음으로 저도 올려보기 시작했지요."

 이게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답니다. 반응이 일단 좋았답니다. 댓글이 수십 개 달리고 다음 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엄청 늘었지요. 역시 약사인 남편은 처음에는 바쁜데 뭘 그런 걸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합니다. 출판사에서 '차향(정 작가의 필명)' 님과 정식계약을 하자고 찾아온 겁니다.

 "남편은 사기꾼 아닌지 알아보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떨리는 마음으로 진짜 출판사가 맞는지 여기저기 수소문해보기도 하면서 담당자를 맞이했습니다. 진짜였고요. 첫 계약을 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어요."

 그런데 얼마 안 가 정 작가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출판사에서 퇴고 등을 한 1차 교열 원고를 다시 보내줬다네요. 비문투성이에다 말도 안 되는 주술 구조 등 문장 곳곳이 난도질돼 있더랍니다. 보통 작가 같으면 다 맥락이 있는 건데 왜 고치냐면서 출판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정 작가는 그냥 풀이 죽었답니다. 정식으로 글을 배우고 문장연습을 한 게 아니라 기본기가 너무 약했다는 반성을 했다지요. 그 길로 약사고시 공부를 할 때처럼 문장 연습에 열을 올렸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녀작은 책을 열어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수준이었어요. 제가 뭐 작가적인 고집이나 대단한 철학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기에 자존심 상했다기보다 반성이 더 많이 되더라고요. 더욱 문장 구조나 묘사, 스토리 전개 등에 신경을 쓰게 됐고요. 문학 교과서도 다시 구해 읽어보며 보완하게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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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기본기가 쌓인 후 정 작가는 2009년부터 쉬지 않고 글을 썼답니다. 여전히 약국에서요. 환절기에 손님이 몰릴 때가 사실 그에겐 가장 곤혹스러울 때라고 하네요. 머릿속에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서 이를 노트북에 옮겨야 하는데 '감기약 하나 주세요' 하는 손님 때문에 산통이 깨질 때도 여러 번이었다지요. 그래도 틈틈이 밤잠을 아껴가며 글을 썼답니다. 어느 정도 탄력이 붙기 시작해서는 새벽 4시에 꼭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면서 직업 작가의 길로 서서히 들어섰답니다.

 그래서 그가 낳은 작품만 10여 편.

 물론 그 와중에 우여곡절도 좀 있었답니다. 어떤 소설은 하도 악플을 다는 특정인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 한때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네요. 물론 다시 복귀하는 건 그의 팬들 덕분이었고요. 왜 안 쓰냐, 어디 아프냐 등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열렬히 그의 글을 기다린다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댓글을 거의 안 보는 걸로 마음먹고 로맨스소설의 세계로 화려하게 귀환했다지요.

 다시 빅히트작 '김비서' 얘기로 돌아와 볼까요.

 "김비서는 쓰면서도 유쾌했어요. '옛날 추억 속 오빠 찾기'란 화두가 떠올라서요. 이를 바탕으로 일필휘지라고 하지요. 말 그대로 주루룩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사건이 커지고 추리물처럼 재미가 더해지자 밤에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독감 시즌이라 손님들이 밀려 왔을 때인데 그래도 짬짬이 거의 온종일 쓴 거 같아요."

 그렇게 적잖은 성취감을 얻게 된 정 작가.

 요즘 근황은요? 여전히 '글의 감옥'에서 마감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답니다. 약국일은 그만뒀답니다. 약사가 하는 일이 기계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손님을 대해야 하니 감정노동자이기도 한데 병행하기가 너무 어려워 가족들과 상의 끝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그는 "글쓰는 일은 내가 창조하는 거니까 거기서 스트레스가 오히려 풀리더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논쟁적인 소설도 있지요. 또 젊고 발랄한 대학생 트렌드를 따라가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저 자신이더라고요. 행복한 얘기, 달달한 얘기를 나누면서 사랑 얘기로 대리만족을 주는 작가. 독자들도 이런 제 모습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착하고 예쁜 얘기만 써도 쓸거리가 워낙 많은데 굳이 이제는 다른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다만 배경이나 문체 등은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차기작은 동양 환타지풍으로 역사물, 궁중물에 재도전해보고 싶어요."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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