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소재 한중 합작영화 '22'가 中서만 대박난 까닭

최초입력 2017.08.23 06:01:00
최종수정 2017.08.22 17:39:17

[재계 인사이드-90]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이날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22'가 요즘 중국 극장가에서 화제랍니다. 개봉 5일 만에 박스오피스 6418만 위안(약 110억원, 중국 CBO 2017년 8월 17일 기준)을 기록했거든요. 다음날에는 중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흥행 돌풍이 꾸준히 이어지더니 결국 1억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재밌는 건 이 영화가 한중 합작으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영화
▲ 영화 '22' 메가폰을 잡은 궈커 감독(이어폰 낀 인물)


궈커(郭柯) 영화감독이 중국에서는 생소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22명의 위안부 할머니를 찾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답니다. 궈 감독은 이들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한 분 한 분 찾아가 말동무도 해드리고 허드렛일도 도우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갔다네요.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중국 각지에 할머니들이 계시니 저예산으로 촬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네요.

김원동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
▲ 김원동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


이러던 중 궈 감독이 한국 자본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촬영 대상자 중 한 분이었던 고(故) 박차순 할머니 덕분이었답니다. 궈 감독이 한창 촬영에 매진할 때 한국의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대표 김원동)는 2015년에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극영화 '소리굽쇠'를 제작해 선보인 바 있는데요. 김원동 대표가 '소리굽쇠' 개봉 당시 펀딩을 통해 모인 후원금으로 박차순 할머니의 병원 치료비를 돕고 있었답니다. 궈 감독도 마침 중국에 사는 박차순 할머니를 촬영하고 있었다네요. 자연스레 연락이 닿은 두 사람은 '22'영화 제작에 의기투합하기로 하고 김 대표가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는 한편, 책임프로듀서로서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하게 됐답니다.

그렇게 5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끝에 지난해 일단 각종 영화제에 선보였는데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1회 서울인권영화제,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제3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다큐경쟁부문 등에 줄줄이 초청받았다는군요.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답니다. 지난해 'Chinese Visual Festivial'에서 관객인기상과 심사위원상을, 2016년 제1회 얄타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또 2016년 중국 우한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추천영화상을 각각 받았다네요.

물론 영화 제작 후 호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김 대표는 8월 14일을 맞아 한중 동시 개봉을 추진했는데요.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았다네요. 그래서 방향을 틀어 중국 상영만 하게 됐는데 예상치 못한 흥행 돌풍에 '22' 관계자들은 연일 환호성을 지르게 됐답니다.



다음은 중국에 있는 김원동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일문일답.

-이번 영화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겁니까? 중국 위안부 이야기인데 한국 업체가 왜 함께 기획 제작하게 됐는지요?
▷저희가 촬영한 22명의 할머니들은 중국 촬영 당시까지는 생존해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인데요. 이들은 모두 중국 한족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즉 일제강점기에 한국(당시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오신 한국 출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의 얘기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소수민족 할머님들도 있었고요. 궈 감독과는 고 박차순 할머니로 인연이 닿았고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중국 간 공감대가 형성될 부분이 있다고 봐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제작에만 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궈 감독이 저를 찾아왔을 당시에는 이미 감독 본인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촬영을 시작한 초기 단계였는데 이미 모든 제작 자금이 바닥이 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작을 지속하고자 합작 파트너로서 저를 찾아왔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합류한 후 우여곡절 끝에 제작은 완료했는데 그 후에도 후반기 제작 비용이 부족해 이 자금을 구하느라, 또 후반 작업까지 완성한 후에는 배급사를 찾지 못해 계속 중간에 부득이한 사유로 개봉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작 과정이 늘어지면서 아쉽거나 안타까웠던 적은 없었는지요?
▷가장 아쉬웠던 것은 아무래도 중국에 비해 어느 정도 위안부 문제에 훨씬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을 줄 알았던 한국에서 철저하게 냉대를 받은 것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여러 차례 비슷한 상황을 겪어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한국인인 저보다도 궈 감독의 실망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특히 지난해 몇몇 한국에서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돼 특별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GV)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거의 150석 가까운 영화관에 관계자를 제외하면 5명 남짓한 관객이 와서 궈 감독 얼굴을 볼 면목이 없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영화 제목 22는 어떤 걸 상징하는 겁니까?
▷촬영 크랭크인을 할 당시에 중국 내에 생존이 확인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숫자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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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22' 포스터


-한중 동시 개봉을 했으면 더 의미가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한국에서는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들은 어떤 이유를 대던가요?
▷큰 배급사부터 작은 배급사까지 정말 안 만나본 데가 없어요. 한국에 배급사로 등록된 회사는 모두 만나봤던 것 같습니다. 위안부 소재의 다큐멘터리라면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시사도 안 해보고 거절한 배급사부터 배급을 해줄 테니 우선 선금 5000만원을 달라고 한 배급사까지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거의 99%의 배급사는 수익성이 없어 거절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저희가 본격적으로 '22'의 배급사를 찾던 당시에는 공교롭게도 마침 같은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극영화인 '귀향'이 얘기치 않게 흥행에 성공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귀향의 성공으로 인해 똑같은 소재의 영화가 연속으로 개봉된다면 필패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배급사들 사이에 매우 팽배해 있었습니다. 둘째, 극영화는 귀향이 성공했으니 그렇다 치고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한국에도 기존에 여러 편 있었으나 개봉되는 족족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에 위안부 소재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개봉하면 무조건 손해라고 하는 선입견을 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한국 배급 시장 혹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느낀 아쉬움이나 개선점이 있다면?
▷교과서같이 케케묵은 얘기라고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는 결국 본연의 내용의 힘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스타 캐스팅과 대자본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배급 시장과 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팝콘 영화에만 투자가 몰리고 집중되는 부분이 제일 아쉽습니다. 게다가 한국 영화 관객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도 불구하고 배급사와 멀티플렉스들의 횡포로 인해 많은 훌륭한 다양성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당하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사실 다큐 영화라 중국에서도 배급사나 상영관을 잡기 쉽지 않았을텐 데요.
▷중국에서는 다행히도 크라우드펀딩(텐센트 공익 사이트)을 통해 제작비 조달에 성공했던 게 행운이었습니다. 무려 3만2099명의 일반인이 후원해주셨는데요(모두 엔딩크레디트에 명기했습니다). 더불어 더 감사하고 공교로웠던 건 이 후원자 중에 중국 유명 영화감독이나 평론가 그리고 스타 배우, 영화 제작자, 유력 배급사 관계자 등 의식 있는 유명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펑샤오강 감독이 대표적인 예지요. 이분들이 후원금 외에도 각 지방의 멀티플렉스들을 설득해주시는 등 물심양면으로 발벗고 나서줬고 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적극 홍보해준 게 부족했던 홍보·마케팅 비용(P&A, 100만위안)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 지역에 골고루 배급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 됐습니다. 정말 우연과 기막힌 타이밍이 조화를 이룬 기적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흥행 스코어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총제작비와 손익분기점, 지금대로였을 때 예상 관객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면?
▷개봉 4일차(8월 17일 오후 11시 기준) 6418만위안(약110억원)입니다. 관객 수로 추산하면 250만명 정도 됩니다. 개봉 5일차인 8월 18일에는 기존에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2016년 8월에 개봉한 '우리는 중국에서 태어났어요(我生在中)'가 갖고 있던 중국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깼습니다. 21일 이후 다큐 영화 '마의 벽'이라는 1억위안도 돌파했네요. 이번 영화의 총제작비는 400만위안(6억5600만원 상당)인데요. 사실상 손익분기점이라 할 수 있지요. 손익분기점을 관객 수로 환산하면 약 16만명인데 개봉 첫날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한중 간 사드 배치 문제로 외교 문제가 심각한데 이번 개봉에선 이런 영향이 있진 않았는지요?
▷신경이 왜 안 쓰이겠습니까.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한중 합작을 한 것은 틀림없으나 중국내에서의 정상적인 개봉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한중 합작의 모양새를 취하지 않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중국 당국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저희 회사 이름과 저를 포함한 몇 명의 한국 제작 스태프 이름만 간신히 올리는 정도로 합의를 봤습니다. 국적은 별도로 표기하지도 않았고요.

-그밖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록 이번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한중 동시 개봉은 실패했지만 지금 이렇게 중국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흥행 돌풍의 힘을 빌려 비록 작은 규모로라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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