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흑역사, 민영화 실패에서 대우조선 사태까지

최초입력 2017.09.08 06:02:00
최종수정 2017.09.07 17:21:04

KDB산업은행 /사진=매경DB
▲ KDB산업은행 /사진=매경DB
[뉴스&와이] 한국 정책금융의 대표주자인 산업은행 수장의 역사는 최근 20년간 '흑(黑)역사'의 반복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산업은행 총재·회장 중 3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고 평균 재임기간은 절반(18개월)에 그쳤다. 그마저도 대부분 검찰 수사 등으로 불명예 퇴진해 '수장 흑역사'의 대표주자로 산업은행은 기록돼 왔다. 7일 제38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 제청된 이동걸 동국대 초빙교수가 이 같은 흑역사를 종식시키고 기업 구조조정과 성장 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지에 관가와 금융권,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산업은행의 흑역사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국민의정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북한 화해 기조 본격화와 탈권위주의의 초기 단계인 김대중정부에서 산업은행 총재를 맡은 이들은 정치적 공세 논란 속에서 퇴진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첫 산업은행 총재를 맡은 재무부 세제실장 출신 29대 이근영 총재는 현대상선 불법 대출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는다. 현대상선 불법 대출 사건은 이른바 '대북 송금' 사건의 발단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뒤이어 취임한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 엄낙용 총재는 대우자동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다가 대북 송금 사건을 둘러싼 평가를 놓고 정부와 대립해 취임 8개월 만에 자진 사퇴한다. 국민의정부 입장에서는 '돌출 발언'이었고, 경제·금융 논리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보면 '소신 발언'으로 평가된다.

SK글로벌과 LG카드 경영 정상화에 주력해 대체로 호평받는 참여정부 첫 총재인 유지창 32대 총재(2003년 4월~2005년 11월)가 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명예롭게 이임했다. 그러나 유지창 총재를 제외하면 예외 없이 흑역사는 이어졌다. 정건용 31대 총재(2001년 4월~2003년 4월)는 금융 브로커 김재록 씨(엔베스투스글로벌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06년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창록 33대 총재(2005년 11월~2008년 5월)는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요청에 따라 내연녀 신정아 씨가 일하는 성곡미술관을 부당하게 후원한 혐의로 역시 검찰 조사를 받고 물러났다.

고도성장기 경제 개발 차원에서 혼연일체의 진수를 보여줬던 정권(정부)과 산업은행의 관계는 권력형 비리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논란을 받게 됐다. 참여정부에 대한 당시 야당의 전방위적 정치적 공세도 한몫했다. 산업은행 바깥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공세 후폭풍에 따라 전개돼온 산업은행 총재의 흑역사는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민유성 34대 총재(2008년 6월~2011년 3월)가 취임하면서 자생적인 흑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서울을 글로벌 금융 허브로 만들자는 기조를 내세웠고, 이 같은 글로벌 기조는 금융산업의 대형화 전략으로 이어졌다. 대형화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금융회사를 키워내는 마중물 역할을 이른바 'KDB금융그룹'이 달성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씨티은행과 모건스탠리를 거쳐 우리금융지주 재무총괄 부회장,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를 역임한 민유성 당시 총재는 민영화 임무를 부여받고 취임했고 산업은행은 2009년 10월 산은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한다. 정책금융 기능은 정책금융공사로 이관됐다.

하지만 민유성 총재 체제 산업은행의 민영화 전략은 당시 금융관료들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산 직전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다. 리먼브러더스 인수는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외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당시 민유성 체제 수뇌부를 놓고 '민영화 5적(敵)' 또는 '리먼 5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민간 출신인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인 강만수 총재가 35대 총재(2011년 3월~2013년 4월)로 취임한다. 민영화 바통을 이어받은 강만수 회장의 재임 기간은 순탄치 못했다.

국가신용등급을 그대로 인정받는 산업은행의 조달금리는 민간 금융사들 사이에서 '시장 마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산업은행은 무서운 속도로 점포를 확장해 나갔다. 2011년 9월 내놓은 파격적인 다이렉트 예금 상품은 결국 2012년 9월까지 244억원의 역마진을 기록하면서 감사원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산은금융지주 메기 효과에 기반한 대형화 전략은 가시화되지 않은 채 결국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2015년 1월 1일을 기해 산은금융지주를 해체하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합치기로 결정한다.

이 같은 통합과 산업은행 조직 정상화라는 막중한 과제를 부여받고 임명된 인물은 홍기택 중앙대 교수다. 경제학자인 홍 교수는 박근혜 대선 캠프에 대한 경제 자문을 인연으로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홍 회장은 2015년 1월 산은·정책금융공사 통합 과정을 비교적 매끄럽게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저성장 장기화에 따라 조선·해운·철강을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위기관리 수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책임 회피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임명 등 논공행상에 집중해 관가와 정치권의 질타를 받았다.

2013년 STX조선해양 자율협약으로 시작된 채권단 차원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부실 은폐 논란으로 범정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확장된다. 같은 해 10월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투입하기로 하는 초법적 결정이 내려졌고,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대명사가 됐다. 대우조선해양 경영 정상화가 한창이던 2016년 2월 홍 회장은 AIIB의 리스크 담당 부총재로 선임됐다.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와 최종구 현 금융위원장 등 국제금융가 영입 대상들이 쏙 빠진 채 홍 회장에 대한 정권의 보은 인사가 단행돼 관가는 소리 없이 분노했다.

기존 자구안과 신규 자금으로 경영 정상화에 실패했다는 점을 정부는 2016년 6월 자인하고 추가 자구안을 내놓았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처리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 거세지자 홍 회장은 중국 현지에서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소위 '들러리'였다"는 돌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휴직을 거쳐 AIIB 부총재에서 물러난 홍 회장은 무책임한 언행으로 '교수 출신 산은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고착화시켰다는 게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직원들의 평가다.

홍 회장 후임인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출신 이동걸 회장은 2012년 대선 당시 금융인들을 대표해 박근혜 당시 후보자를 지지한 전력으로 산업은행 회장에 임명됐다는 꼬리표를 단 채 한진해운·현대상선 조건부 자율협약과 대우조선해양 2차 구조조정, 금호타이어 매각을 담당했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류대란이 일어났고 상대적으로 해운사로서 규모와 전통이 취약한 현대상선이 살아남아 해운업계의 비난이 거셌다.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고 반복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결국 올해 초 3조원의 추가 자금 지원 결정이 이뤄졌다. 최근 불발된 금호타이어의 중국 더블스타 매각과 관련해서는 당초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상표권 계약을 철저히 하지 못해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금호타이어 중국 매출 부진이 심화됐고 이를 빌미로 더블스타는 2350억원의 매각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와 대우건설·KDB생명 등 자회사 매각 등 숙원 과제는 동명이인인 이동걸 회장(동국대 초빙교수 출신)에게 넘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교수 출신인 이동걸 신임 회장이 홍기택 교수의 교수 트라우마와 이동걸 회장의 정권 낙점 인사 논란을 극복하고 산업은행 역할 재정립에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지속돼 온 흑역사를 뒤로하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수장을 맞은 산업은행이 어떻게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줄지는 우리나라 정책 금융 발전과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금융권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석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