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발견·확산·진화 그 옆엔 첨단기술 있네

최초입력 2018.01.24 15:01:00
최종수정 2018.01.25 11:07:11

이런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준다면 어떨까요 /출처=서모플랜 홈페이지
▲ 이런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준다면 어떨까요 /출처=서모플랜 홈페이지


[식품야사-4] 우리는 보통 커피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커피 산업을 바꿔놓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다방커피 문화가 있었다면, 지금은 스타벅스, 할리스 등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적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사무실과 집에서 많이 쓰였던 드립커피머신은 어느새 네스프레소와 같은 캡슐커피로 대체되었습니다. 캡슐커피라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커피는 그 탄생에서부터 '기술'이 중요했고 '신기술'이 계속 산업을 바꿔놨습니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한 가지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커피의 세세한 것에 대해서 사실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단지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커피와 커피산업을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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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지극히 단순화시켜 본다면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목적은 '카페인 섭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커피콩에 들어 있는 각성 효과가 있는 성분인 카페인과 기타 성분을 물에 내려서 먹는 것이 커피입니다. 그런데 이 커피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커피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크게 달라집니다.

인류가 처음 커피를 발견하고 나서 오랫동안 소위 '터키식 커피'가 보편적인 섭취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로스팅한 커피 원두를 갈아서 물에 설탕과 함께 넣은 다음 끓여 마시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 경우 커피 가루가 입에 남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 초에 천 필터와 드립 기술이 발명돼 좀 더 맑고 깨끗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위에서 보실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커피 추출 기술이 계속 나오고 혁신이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는 인스턴트커피, 종이 커피필터 등 현재 가장 주류가 되는 기술이 발명되었습니다. 이 기술들은 소비자와 기업들에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했습니다.

500년에 걸친 기술 경쟁에서 현재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술을 꼽자면 바로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에스프레소 커피일 것입니다.

커피 추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속도였습니다. 18세기에 이미 유럽에서는 카페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립커피나 버큠 포트, 프렌치 프레스 등은 커피 하나를 내리는데 보통 3~5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물도 끓여야 하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빠르게 커피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서 이 속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190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증기압을 이용해 물을 강제로 밀어내 커피를 빠르게 내리는 방법이 발명됩니다. 지금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가장 가까운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더 빠르고 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이 계속되었는데요. 지금과 같이 모터펌프를 차용한 에스프레소 머신은 1961년 페마(Faema)의 E61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일리가 1935년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 그가 만든 회사가 지금의 이탈리아 일리커피(Illy Coffee)다. /사진=일리커피
▲ 프란체스코 일리가 1935년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 그가 만든 회사가 지금의 이탈리아 일리커피(Illy Coffee)다. /사진=일리커피


에스프레소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커피 추출 기술에 비해 강점이 많았습니다. 첫째, 에스프레소는 추출 속도가 빠릅니다. 불과 15초 정도면 에스프레소 하나가 나옵니다. 둘째, 이 에스프레소는 바리스타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나타납니다. 또 에스프레소는 카푸치노, 카페라테같이 다양한 카페 메뉴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커피에 부가가치를 더해줍니다. 셋째, 우리가 커피의 표준처럼 생각하는 크레마라는 부산물이 에스프레소에는 나옵니다. 기름덩어리인 이 크레마는 커피의 향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에스프레소는 고객 입장에서도 기업 입장에서도 압도적인 장점을 가진 기술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빠르게 더 비싼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이는 개별 카페의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은 곧 유럽을 평정하고 전 세계로 퍼져갑니다. 에스프레소의 글로벌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1971년 시애틀에서 만들어졌던 커피 원두 판매점 스타벅스는 1983년 하워드 슐츠가 경영에 참여한 이후 본격적으로 매장을 늘려가는데 이 과정에서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가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 퍼져갑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스타벅스는 1980년대 초부터 이미 에스프레소 머신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드립커피 방식의 커피가 우위에 있었는데 스타벅스로 인해 커피 매장의 주류는 에스프레소가 됩니다. 물론 전체 시장을 보면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여전히 크지만, 카페 시장에서의 주류는 에스프레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메리카노'라는 단어인데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연하게 먹는 것을 '아메리카노'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연하게 커피를 마시는 미국 스타일 커피를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커피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연하게 많은 양을 먹는 커피가 더 많았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탄생하면서 소량의 커피가 추출되는 에스프레소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자신들은 양이 많고 묽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너희는 '촌스럽게 커피에 물을 타 먹는다'고 얘기하게 된 식입니다.

전 세계에 에스프레소 문화를 전파한 스타벅스는 어떤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고 있을까요? 2014년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위스의 서모플랜(Thermoplan)이라는 직원 300여 명의 작은 회사가 전 세계 2만5000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쓰이는 머신을 만든다고 합니다. 2008년부터 스타벅스 매장에 등장한 마스트레나라는 이 기계는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이 고객들의 눈을 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효율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1억8000만달러(약 1900억원)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모플랜이 보급형 머신이라면 블랙 이글이라는 고급 머신도 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의 빅토리아 아르두이노에서 제작하는데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을 기념해 이 회사에서는 서울에디션 블랙이글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3000만원 밖에 안 한다고 합니다
▲ 가격은 3000만원 밖에 안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9세기 후반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으로 커피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문 고종이 '최초로 커피를 마신 한국 사람'이라는 설명이 언론을 통해서 정설로 받아지고 있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틀린 얘기인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이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면 조선 사람들 중에서도 틀림없이 커피를 마셔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커피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역사적인 사실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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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경성에서도 카페 문화는 크게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커피 추출 기술을 보면 터키식이 보편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1934년 12월 21일 동아일보에는 '커피를 만드는 법'이라는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커피는 그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고 MJB 같은 것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 비싸서 경제상 어려우니까 '짜바'같은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커피 큰 숟가락 다섯쯤과 뜨거운 물 네 컵을 넣고 한 20~30분쯤 끓이되 처음에 끓거든 곧 불을 낮추고 천천히 끓이면서 뜨거운 물로 차관(커피포트)에 담고 뜨거운 우유와 각사탕과 같이 식탁에 내되 식탁에는 각 사람의 성미에 따라 우유도 넣고 너무 진하면 뜨건 물도 타서 냅니다>

광복 이후 커피 문화는 다시 사라집니다. 군사독재 정부가 외화 유출을 막겠다고 커피 수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군으로부터 나온 커피가 암암리에 유통되자 한 기업에 독점적으로 커피 수입과 인스턴트 커피 제조를 허용해줍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바로 '동서식품'입니다. 동서식품은 지금도 우리나라 전체 커피 원두의 42%를 수입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1970년 처음 나온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믹스(설탕과 프림을 함께 넣은 커피), 커피자판기 등이 등장하면서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합니다. 그러다가 88서울올림픽이 치러진 1988년 커피 수입 자율화와 함께 소위 원두커피 전문점 시장이 열립니다. 쟈뎅, 도토루 같은 원두커피 전문점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커피 시장에도 다양성이라는 것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원두커피 전문점들은 주로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려 판매했다고 합니다. 20세기 말에는 'RTD(Ready to Drink)'라고 하는 컵커피가 등장하고, 스타벅스와 비슷한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스타벅스가 신세계그룹과 손잡고 상륙했고, 이제는 우리도 알고 있듯이 커피를 즐기는 방식의 주류는 에스프레소가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테크놀로지)만 바뀐 셈입니다.

패티 김 선생님께서도 좋아하신 에스프레소 커피 /출처=매일경제
▲ 패티 김 선생님께서도 좋아하신 에스프레소 커피 /출처=매일경제


우리나라에 처음 에스프레소 방식 커피가 도착한 것은 언제일까요? 미국에서도 에스프레소가 보편화된 것이 1990년대인 것을 본다면 우리나라도 빠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탈리아 음식과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1967년 개업)인 라칸티나의 이태훈 대표에게 에스프레소 커피를 언제부터 취급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그는 창업자인 부친 이재두 씨가 가게를 운영할 때 부터 식당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에도 라칸티나에서는 라심발리(La Cimbali)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다만 당시에 조선호텔 지하 1층 카페센트로에서도 에스프레소를 팔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오래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합니다.

1981년 10월 20일 매일경제신문에 보면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 맘마미아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서초동 제일생명빌딩(지금의 교보생명 사거리 근처) 옆에 있던 이 식당은 가수 패티 김이 운영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판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테크놀로지란 것은 무엇일까요? 과학적인 지식이 실용적인 목적, 산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테크놀로지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커피는 계속적인 테크놀로지 혁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메이커에서의 기술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커피산업의 모든 영역(재배, 물류, 로스팅, 블렌딩 등)에서 첨단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심지어 블록체인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테크놀로지와는 무관해보이는 커피믹스 얘기를 해볼까요? 1993년 등장한 스틱형 커피믹스는 현재 설탕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형태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림이나 설탕을 덜 먹고 싶어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 양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길쭉한 커피믹스에 차례대로 커피, 프림, 설탕을 차례대로 넣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유통 과정에서 이것이 섞이지 않도록 집어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동서식품에서 주장하는 대로 정말 섞이지 않는지 커피믹스를 옆으로 잘라보았습니다.

인스턴트커피에도 테크놀로지는 있습니다.
▲ 인스턴트커피에도 테크놀로지는 있습니다.


제일 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라 본 커피믹스 입니다. 두 번째는 흔들지 않고 20회 정도 위아래가 바뀔 수 있게 빙글빙글 돌려본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치 칵테일을 만들듯 50회 흔들어 보았습니다. 시시한 기술 같지만 첫 번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동서식품에 따르면 카누(Kanu)도 고급 커피에 근접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기술적인 도전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식품과 비교하면 커피에서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은 두드러집니다. 우리가 요리하는 방식, 먹는 방식은 사실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커피는 지속적인 기술적 진보가 있고 이에 따라 커피산업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바리스타가 아니어도 에스프레소를 내릴 수 있는 캡슐커피머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 새로운 커피 경험을 하게 해주는 콜드브루. 모두 새로운 커피 테크놀로지의 결과입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레마가 있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다를지도 모릅니다.

[이덕주 유통부 기자 mrdjle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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