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익 비트코인 몰수' 수원지법의 결정을 뜯어 봤더니

최초입력 2018.02.09 06:01:00
최종수정 2018.02.09 09:24:10

수원지법 형사 8부(부장판사 하성원)는 지난달 30일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등으로부터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대금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안모씨(34)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범죄수익으로 얻은 191.32비트코인을 몰수하고 6억9587만원을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본관 전경.
▲ 수원지법 형사 8부(부장판사 하성원)는 지난달 30일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등으로부터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대금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안모씨(34)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범죄수익으로 얻은 191.32비트코인을 몰수하고 6억9587만원을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본관 전경.


[전국구 와글와글-16] 실물화폐로 한발짝 다가선 '가상화폐', 항소심 재판부 경제적 가치 인정 왜?

가상화폐 규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법원이 범죄수익에 이용된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몰수할 수 있다는 항소심 판결을 내놨다.

수원지법 형사8부(부장판사 하성원)는 지난달 30일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등으로부터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대금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안 모씨(34)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범죄수익으로 얻은 191.32비트코인을 몰수하고 6억9587만원을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법률상 '재산'에 해당한다며 몰수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심과 정반대의 결과다.

원래 이번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9일 예정됐으나 재판부는 3주 더 미뤄 선고를 했다. 그만큼 살펴봐야 할 내용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법정화폐와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를 경제적 가치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첫 판결이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규제 쪽으로 무게추가 쏠린 가상화폐 정책을 손봐야 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파급력을 지닌 판결은 안씨가 운영한 음란 사이트 수사에서 비롯됐다.

안씨는 2013년 12월부터 3년 동안 미국에 서버를 둔 불법 음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121만여 명을 모집해 음란물 46만여 건을 올리고 사이트 이용료 명목으로 1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안씨를 기소한 검찰은 안씨가 벌어들인 부당수익 19억원 중 현금 14억여 원을 추징하고, 216비트코인은 몰수했다.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비트코인은 몰수 대상이 아니다'며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객관적 기준 가치 상정이 불가능하고, 전자화된 파일 형태로 물리적 실체가 없다. 압수한 비트코인 중 범죄수익만 따로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등에 따르면 안씨는 법적 화폐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음란 사이트 회원과 광고업체로부터 후원금, 광고수익 등의 명목으로 비트코인을 받아 챙겼다. 회원과 광고주에게 고유의 일회성 비트코인 주소를 발급해 주고 그 주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이체받는 방식이었다. 안씨는 자신이 합법적으로 설립한 A사이트 광고대금 등이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압수한 216.12비트코인 가운데 191.32비트코인은 음란 사이트 운영을 통해 얻은 불법 재산으로 판단했다. 후원금 입금 목록에서 확인되지 않은 24.80비트코인에 대해서만 음란사이트 운영 수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몰수 대상에서 제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씨가 음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받은 비트코인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범죄수익'으로 봤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범죄행위로 생긴 재산 또는 범죄행위의 보수로 얻은 재산은 범죄수익으로 보고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대 쟁점이었던 비트코인 몰수 근거는 뭘까? 재판부는 7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외국의 몰수 사례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①발행량이 정해져 있고 무한정 생성·복제·거래되는 디지털 데이터와 차별화되는 점 ②온라임 게임 아이템 거래 때 사용하는 '게임머니'도 재화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2012년) ③비트코인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블록체인 정보가 10분마다 갱신된다는 점만으로 비트코인의 동일성이 상실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④비트코인 거래소를 통한 법정화폐 전환과 비트코인을 지급수단으로 인정하는 가맹점이 존재하는 점 ⑤미국 뉴욕지방법원이 2014년 마약 밀거래 사이트 서버 운영으로 취득한 14만4000비트코인을 몰수한 뒤 경매로 환가 처분해 국고로 귀속한 점 ⑥안씨가 비트코인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포인트를 회원에게 지급하고 받은 비트코인은 현금으로 환전한 점 등이다.

피고인인 안씨 측은 비트코인 몰수 근거 규정이 현행법에 없고, 정부가 비트코인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 시세가 실시간으로 급변해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없는 점,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은 10분마다 거래기록이 갱신돼 피고인이 보관하고 있는 비트코인과 압수된 비트코인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는 점을 주장하며 "비트코인은 몰수 대상이 아니다"고 맞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은닉재산'을 '몰수·추징의 판결이 확정된 자가 은닉한 현금, 예금, 주식, 그밖의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몰수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결국 범죄수익을 이루는 '재산'이란 사회통념상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는 일반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반사회적 범죄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범죄를 조장하는 경제적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제정됐다"면서 "압수된 비트코인을 몰수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돌려주면 음란사이트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그대로 보유하게 해 법 제정 취지에 비춰 매우 불합리하다"고 몰수 이유를 댔다.

이번 판결로 가상화폐는 법정화폐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섰다. 반대로 정부는 지난달 30일 가상화폐를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는 투기 상품으로 규정하고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는 계좌 서비스 제공 중단을 통한 폐쇄 조치까지 언급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가상화폐를 재산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한다면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가상화폐 정책이 선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서 대체 불가능한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상화폐가 금융 어젠다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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