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응가'속 미생물, 은행에 보관하는 시대

최초입력 2018.04.13 15:01:00
최종수정 2018.04.13 15:00:3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말랑말랑과학-146] 건강한 한국인의 대변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보관·관리하는 은행이 만들어진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과 천랩은 지난 11일 열린 '2018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콘퍼런스'에서 건강한 한국인들의 장내 미생물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B)의 구축 현황을 공개했다. 이른 바 '한국인 장내 미생물 은행' 설립 프로젝트다.

인간의 몸은 10%만 인체 세포로 이뤄져 있고, 나머지 90%는 모두 미생물이다. '10%만 인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몸 속에 존재하는 100조 이상의 세균은 입 안, 피부, 기관지, 생식기 등에 흩어져 있지만 대부분은 소장과 대장에서 자란다. 따라서 우리 몸의 90%에 해당하는 미생물, 그중에서도 장내 미생물을 이해하는 일은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의 유전정보)과 대사·면역 질환, 알레르기, 아토피, 심장병, 우울증, 치매 등 각종 질병 간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연구진도 이 대열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장내 미생물 은행 구축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까지 과기정통부가 80억원을 투입해 진행하는 이 사업은 건강한 한국인 대변과 혈액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 자원과 그와 관련된 임상정보를 모두 일단 한곳에 모으는 데 목적을 둔다. 실물 자원과 정보가 연계돼야만 비로소 마이크로바이옴이 각종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 건강기능식품 개발 등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실제 건강인들의 분변과 임상정보 등 자원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고, 생명연이 은행 구축 및 운영·관리를, 바이오벤처 천랩이 미생물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유전정보 분석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분변에서 채취한 균주는 총 4563주, 306종에 달한다. 마이크로바이옴 샘플은 총 247가지다.

특히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식습관이나 문화 등과도 밀접하게 관계돼 있어 국가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정보를 정리할 필요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가령 천랩에 따르면 한국인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는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뚱보균(피르미쿠테스·firmicutes)'의 비중이 68%에 달해 높은 편인 반면, 일본인에게는 비만을 억제하는 '날씬균(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한국인만의 특수한 장내 미생물 정보가 담긴 인트라넷이 완비되면 실물 자원을 연구기관에 분양한다는 방침이다. 각 기관에서 직접 배양까지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은 대부분 공기에 노출되면 죽는 '절대혐기성 세균'이다. 일반 세균과 달리 분리 배양 기술에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비가 발전해 분양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정숙 생명연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배양에 어려움을 겪었던 혐기성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확보·분리해 연구에 활용하도록 분양할 계획"이라며 "얼마나 잘 자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인지 등 은행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일단은 연구 목적만 허용하지만, 시스템이 안정화될 경우 상업화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된 국내 여러 연구 과제들이 소개됐다. 면역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김유미 카이스트 교수는 "장내 미생물 구성에 따라 똑같은 식습관을 가져도 비만 여부가 갈리기도 하고, 똑같은 항암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위암과 대장암 환자들의 시료를 모아 정상인에게는 있지만 암 환자에게는 부족한 미생물을 찾으면 암 정복의 실마리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박한수 GIST 교수도 "항암제 약효가 마이크로바이옴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데, 약효가 안 듣는 환자들이 아예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장내 미생물을 주입하는 게 암 치료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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