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시장에서 카르텔로? 커피시장의 새로운 기운

최초입력 2017.05.16 06:01:00
최종수정 2017.05.30 10:54:02

[올 어바웃 커피-3] "엄마, 하라르에는 길이 없어서 낙타를 타고 다니지만 자유로워요. 날씨도 딱 맞아요. 여기선 커피와 상아, 사향 같은 걸 아덴에 있는 항구로 실어나르는 회사를 해요. 내 회사이니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어요"-1890년 11월 10일 에티오피아 하라르에서, 아들 랭보(Arthur Rimbaud)가.

파리의 천재시인인 랭보는 15살부터 시를 썼지만 나중에는 에티오피아로 건너가 커피 무역상이 됐다. /사진=구글
▲ 파리의 천재시인인 랭보는 15살부터 시를 썼지만 나중에는 에티오피아로 건너가 커피 무역상이 됐다. /사진=구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파리의 천재시인 랭보(1854-1891)는 20대 중반까지만 시를 썼다. 사랑했던 유부남 시인 폴 베를렌의 총을 맞은 후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쓰고 나서는 1980년 즈음 시에서 커피로 등을 돌려버렸다.

에티오피아로 간 랭보는 19세기판 '큐그레이더'(커피 감별사)가 됐다. 하지만 커피 콩을 분류하는 일을 하면서 '풀 한 포기 없으니 지겹고 심지어 더워서 못 살겠다'며 푸념하던 그에겐 커피 무역이 더 잘 맞았나보다. 베를렌이 붙여준 별명('바람 구두를 신은 사람')마따나 랭보는 관절염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돌며 하라르에서 자란 커피 콩을 프랑스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시인 출신답지 않게 무기 무역도 했다). 하라르는 예가체프, 시다모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3대 커피 산지다.

아프리카 커피 콩(생두·green bean)이 랭보같은 무역상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드는 동안 브라질 커피 콩은 '선물거래소(futures market)'를 통해 미국으로 갔다. 1882년 '뉴욕코코아거래소'에선 브라질 커피 콩 선물이 처음 거래되기 시작했다.

개장 전의 뉴욕ICE 커피 생두 선물 거래소 화면. 전산으로 이뤄지는 뉴욕ICE커피선물거래는 우리 시간으로 월~토 7:30~03:00, 현지 시각으로 월~금 03:30~13:00에 시장이 열린다. /사진=뉴욕ICE 화면캡쳐
▲ 개장 전의 뉴욕ICE 커피 생두 선물 거래소 화면. 전산으로 이뤄지는 뉴욕ICE커피선물거래는 우리 시간으로 월~토 7:30~03:00, 현지 시각으로 월~금 03:30~13:00에 시장이 열린다. /사진=뉴욕ICE 화면캡쳐
시간이 가면서 다른 중남미·남미(남미), 아프리카 국가 등의 커피 콩도 하나둘 포함됐다. 1986년이 되자 사람들은 뉴욕상업거래소(NYBOT)에서 커피 콩 선물을 사고팔았다. NYBOT가 국제선물거래소(ICE)로 인수된 2007년 이후부터는 ICE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오프라인 거래가 사라지고 온라인 거래로 대체된 것 정도가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고 한다.

선물거래(futures trading)는 간단히 말해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가치를 사고파는 것이다. 선물시장에서는 실제 물건(현물·existing goods)이 아니라 선물계약이 거래되는데 이를 통해 선물의 균형가격이 결정된다. 선물계약(futures contracts)은 미래의 특정 시점(결제일)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일정한 양만큼의 현물을 사고팔기로 하는 약속이다.

커피 선물시장의 양대 산맥은 뉴욕과 런던의 ICE이다. 뉴욕ICE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아라비카종의 선물계약이 거래되고 런던ICE에선 로부스타종의 선물계약이 거래된다. 나머지는 '세계 커피 시장의 사우디아라비아' 격인 브라질의 증권선물거래소(BM&F BOVESPA) 정도를 꼽는다. 베트남이나 인도, 싱가포르, 일본 등지에서도 커피선물거래가 있다고는 하지만 비중이 워낙 작아서인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5월12일 마감된 뉴욕ICE 커피생두 선물 거래. /사진=뉴욕ICE
▲ 5월12일 마감된 뉴욕ICE 커피생두 선물 거래. /사진=뉴욕ICE
뉴욕ICE에서는 현물거래가 시작되는 3·5·7·9·12월(결제일)에 앞서 선물거래가 이뤄지는데 선물계약의 이름은 커피의 머릿글자를 딴 'C'다. 기본적으로 계약 하나에 해당하는 커피 콩이 3억7500파운드(약 1억7009만7139㎏)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보니 거래소 회원으로 등록한 기업(대형 로스팅 업체·식음료 회사)이나 금융사 등이 거래에 참여한다. 선물가격을 예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아라비카 콩의 예상 수확량과 이를 좌우하는 날씨를 비롯해 보관 비용, 환율·이자 비용, 로부스타 콩의 가격 변화 등 온갖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다.

옵션(option·선물계약 등을 매매하는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고안해낸 파생금융상품)도 추가되면서 시장은 더 복잡해진다. 그래도 선물계약은 안정적인 가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가격 리스크를 회피(hedge)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커피 콩을 사고파는 사람들에겐 보험 같은 존재다. 커피 콩, 특히 아라비카종은 생산지 날씨 등(가뭄·이상 저온·폭우·병충해) 변화에 따라 생산량이 급변하는데 이에 따라 가격도 1~2년 만에 반 토막이 됐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2배로 폭등하는 식으로 변덕을 부리기 때문이다.


▲ '커피시장의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의 날씨에 따라 아라비카 생두 가격이 급변해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이 크게 출렁이지 않는 이유는 선물시장의 존재 덕분이기도 하다. 올해 이후로는 브라질의 생산량(2017~2018년 수확연도)이 13% 줄어들고 수입국의 재고도 8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생두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지난 3년간 이어진 극심한 가뭄을 겪은 브라질은 올들어 290년 만에 원두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변덕 때문에 반세기 전에는 국제적인 '커피 카르텔'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앞서 1회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1962년의 '국제커피협약(ICA)'이 그것이다. 회원인 생산국이 일정 물량만큼만 커피 콩을 생산하는 대신 회원인 수입국은 이를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사줌으로써 생산국의 이윤을 보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각국의 배신 속에 ICA는 1989년을 기점으로 효력을 잃었다. 1970년대 후반 시장 가격이 오른 틈을 타 생산국들이 앞다퉈 생산량을 늘리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 시대'의 승자가 된 미국 등 선진국이 남미 경제 지원에 대해 힘을 빼기 시작한 것도 ICA가 약해진 배경이다.

협력이 끝나자 냉혹한 경쟁이 시작됐다. 안정적인 거래를 원한다면 '카르텔'이 아니라 커피 콩 생산자와 수요자들이 미래의 예상 가격을 두고 수 싸움을 벌이는 '선물시장'에 달려가야 한다. 각자 가진 정보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애초에 부르는 선물 가격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 틈바구니에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투기세력이 끼어들어 선물계약을 주식처럼 사고팔며 차익(arbitrage)을 올리는데 이 과정이 반복되면 '차익=0'이 되는 수준에서 균형 가격이 찾아진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1계약당 18.75달러를 단위로 조정된다.

이렇게 보면 시장이 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덱스 펀드(index fund·특정업종이나 전체 시장 주가 흐름과 같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설정한 펀드)'를 이용해 선물시장에 뛰어드는 투기꾼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커피 선물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물시장이 투기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면 가장 중요한 미래의 '적정 가격 발견' 기능과 '가격 변동 리스크 절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냉전시대 때 국가들이 만들었던 커피 카르텔과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 대형 농장·로스팅 업체·투기꾼들이 경쟁 중인 커피 선물시장은 각각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장의 고민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의 시계추는 경쟁에서 협력으로 다시 한번 살짝 기울고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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