훵크록의 불타는 리듬감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최초입력 2017.05.19 06:01:00
최종수정 2017.05.18 21:30:43

Blood Sugar Sex Magik 앨범
▲ Blood Sugar Sex Magik 앨범
[스쿨오브락-6] 2000년대 초반의 일로 기억한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이 하나둘씩 한국에 상륙할 때였다. 토종 업체인 할리스도 매장을 하나둘씩 확대할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은 포화상태로 불리는 커피시장에 막 싹이 돋아날 때였다.

당시 커피전문점을 놓고 때아닌 '커피숍(Coffe Shop)' 논란이 인 바 있다. 논란의 핵심은 커피숍은 근본 없는 '콩글리시'이기 때문에 세련된 '카페(cafe)'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선 꽤 파급력이 있는 논란거리였다.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국에서 발매된 록 밴드의 한 앨범 제목 타이틀을 가져온 직후 논란은 그것으로 완전히 종결됐다. 주인공은 미국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가 1995년 내놓은 앨범 '원 핫 미닛(One Hot Minute)'에 실린 '커피숍'이 주인공. '미국 록 밴드가 내놓은 노래 제목이 커피숍인데 이게 콩글리시라니 말이 되느냐'는 일격에 사태는 단숨에 정리됐다.

이 밴드는 198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결성 당시는 보컬에 앤서니 키디스(Anthony Kiedis), 베이스에 플리(Flea), 기타리스트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과 잭 아이언스가 원년 멤버였다. 지금은 두 명은 빠지고 앤서니와 플리, 두 명만 남아 있다. 기타리스트 힐렐이 1988년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뒤 충격을 받은 드러머 잭까지 밴드에서 빠졌다. 이후 기타리스트는 오디션을 거쳐 들어온 존 프루시안테가 맡았다. 그 역시 두 번에 걸쳐 밴드를 탈퇴한다. 한 번은 멤버들과의 불화로, 다른 한 번은 개인적인 이유였다. 지금은 2010년 새 기타리스트로 들어온 조시 클링호퍼가 기타를 잡는다. 잭이 빠진 드러머는 이후 채드 스미스가 지금까지 맡고 있다.

이 밴드의 성격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굉장히 다양하다. 가장 흔히 쓰는 소개 멘트로 '펑크(funk) 록' 밴드라는 표현이 쓰인다. 노브레인 등이 추구하는 '펑크(punk)'와는 다르다. 한국어로 구분하기 위해 '훵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f 발음이니까). 흑인음악에서 갈래가 나온 훵크는 특유의 통통 튀는 리듬감과 몸을 들썩이게 하는 '그루브(groove)'가 특징이다. 이들의 초기 앨범은 절정의 리듬감을 보여줬다. 흑인 특유의 신명나는 박자와 리듬을 '록'적으로 가장 잘 해석했다고 보면 된다.

아까 언급한 '커피숍'이란 곡은 베이시스트라면 누구나 꼭 카피해야 하는 교과서 같은 곡으로 유명하다.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 플리는 최강의 실력을 자랑한다. 베이스는 화려한 기타와 보컬에 눌려 주목을 잘 받지 못하는 포지션이 되기 쉬운데, 플리는 곡 안에 본인의 베이스 솔로를 삽입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커피숍에서는 절정의 '슬래핑' 기술을 선보인다. 슬래핑은 엄지와 검지로 베이스를 리듬감 있게 치는 주법의 일종인데, 베이스 현을 엄지로 때리면서 검지로 뜯는 스타일이 주로 쓰인다. 엄지와 검지로 번갈아가며 현을 터치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의 음 이동 효과를 낼 수 있다. 베이스가 다른 악기와 보컬을 빛나게 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목받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해준 앨범은 1991년 녹음한 그들의 다섯 번째 앨범 블러드 슈가 섹스 매직(Blood Sugar Sex Magik)이라 할 것이다. 동명의 '블러드 슈가 섹스 매직'이란 곡을 들어보면 밴드 특유의 쫀득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 당시 보컬인 앤서니의 스타일은 랩과 보컬 그 가운데 어딘가를 추구하는 형식이었다. 전형적인 랩은 아닌, 그렇다고 노래는 아닌 애매한 외침(?)이 반복되다 특유의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다가, 다시 랩 비슷한 걸 하다가. 이런 식의 노래가 많다. 리듬감이 풍만한 연주 역시 보컬과 멋지게 어우러지며 듣는 이를 가만있지 못하게 한다.

그들의 스타일은 1999년 나온 일곱 번째 앨범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ication)'을 기점으로 조금 달라진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케이션'은 잔잔한 기타리프로 시작해 여전히 손놀림이 잦지만 분위기를 달구지 않는 베이스, 곡의 완급을 능란하게 조절하는 드럼으로 이뤄져 있다. 랩이 없는 앤서니의 보컬은 서정적이고 차분하고 애절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적으로 1500만장이 팔려나가 지금까지 밴드가 내놓은 앨범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잔잔한 기조는 다음 앨범인 '바이 더 웨이(By the way)'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동명의 곡 '바이 더 웨이' 역시 잔잔한 발라드에 초점을 맞췄고 '캔 스탑(Can't Stop)'은 밴드 초기의 리듬감이 살아 있긴 하지만 훨씬 톤 다운된 느낌으로 나왔다.

이들도 나이가 든 것일까. 넘치는 에너지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관객을 열광시켰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 살짝 변형을 준 것일 뿐 그들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뜨거운 것 같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 스타일 중 가장 화끈한 것은 '삭스 온 콕스(Sox on Cox)'로 하는 공연이다. 삭스는 양말이고, 콕스는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 말 그대로 홀딱 벗은 나체 상태로 남성의 성기를 양말에 넣은 뒤 길게 늘어진 양말을 덜렁거리며 이들은 공연을 했다(관객 쪽으로 등을 돌리면 당연히 엉덩이는 100% 알몸 상태다). 열기가 달아오르면 빼놓지 않고 한 번씩 벌이는 엽기 쇼였다. 이들은 2010년대에도 이런 스타일의 공연을 가끔 했다. 나체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양말을 위아래로 춤추게 하면 낯 뜨거울 것 같지만, 막상 이들의 흥겨운 음악에 귀를 집중하면 엽기적인 행동은 의외로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추천곡으로는 잔잔한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ication)'과 화끈한 '커피숍(Coffee Shop)', 열정적인 '기브 잇 어웨이(Give it away)', '포춘 페이디드(Fortune faded)'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홍장원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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