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세기보다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을까?

최초입력 2018.01.08 06:01:00
최종수정 2018.01.05 18:07:5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Tech Talk-100]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장 이후 온 세상이 미디어가 되었다. 테크놀로지의 가파른 발전에다 기존 미디어의 오만과 불신으로 시민들은 스스로 소식을 전하고 비평하는 주체가 되었다. 단순히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전달하는 단계를 넘어 특정 사건에 대한 심도 있는 취재, 저마다의 견해를 넣은 날카로운 분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고 의도치 않게 '페이크(fake)'를 인용하는 문제점이 없지 않지만 기존 언론이 전하지 못하는(혹은 않는) 진실과 통찰력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성과는 높히 평가되어야 한다. 부당한 권력에 영향받지 않고 그 누구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게 더 값지기 때문이다. 개인뿐만이 아니다. 브랜디드 콘텐츠로 무장한 기업들은 기존 미디어보다 훨씬 더 대중의 심금을 파고드는 감성과 마케팅 전략으로 자신들의 브랜드와 신상품을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롯데, 이마트 등 기업들이 선보인 웹드라마형 동영상은 SNS상에서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기존 미디어 광고에서 보기 힘든 성과를 기업들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이 사실 그대로 전해질 때 그 목소리는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된다. 개인의 주장은 다수의 외침으로 발전하고 대중의 바람으로 성장한다. '대중은 언제나 옳다'는 명제가 성립하는 한 이런 흐름은 진보적이고 역사 발전에 기여한다. 한 개인이 다수에서 대중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 가짜 뉴스 등은 자체 정화 작용을 거치며 걸러지고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런 것을 '집단지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미디어 철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에 따르면 사이버 공간에서 다수의 이용자들은 상호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도의 지능을 창출해 낸다고 한다. 이른바 집단지성의 실현이다. 수많은 사람이 참여해 특정 용어를 정의하고 수정하며 집대성한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아직 한국 위키피디아는 다소 부실하긴 하지만). 영문 위키피디아를 보면 세상에 출판돼 있는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 풍성한 최신 정보로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가 이처럼 글로벌 브레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용어를 해석할 때 편견과 당파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중립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립적 관점은 (상대적인) 약자 시각에서 봤을 때 사실을 왜곡한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체로 기계적 중립성이 이런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비록 충분한 배경 설명을 달아놓았다고 해도, 한국 위키피디아에서 '동해'로 검색되는 글이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Sea of Japan'으로 기록돼 있다면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위안부'에 대한 설명도 한국과 일본 위키피디아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위키피디아가 '일본 정부가 일본 군인들의 성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이른바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 및 점령지 출신의 여성들을 전선으로 수송하여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다'고 기술해 놓은 데 반해 일본 위키피디아는 정부 개입에 대한 언급 없이 '전쟁터 군인을 상대로 매춘하는 시설의 여성'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 위키피디아는 사실적이고, 일본 위키피디아는 사실적이지 않다고 누가 지적할 수 있는가.

당파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안도 이럴진대, 객관적 실체나 팩트에 대해서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편견이나 특정 가치가 개입되면 그 진행 과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가령 아이를 혼자 내리게 한 버스 기사와 같은 사건의 파장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엄마가 버스를 세워달라고 했는데 기사가 욕설을 퍼부었다는 글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해당 기사는 네티즌들의 원색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평소 버스 운전은 난폭하다는 편견과 '울부짖는 엄마'라는 감성적 문구가 사태를 키웠다. 이후 공개된 CCTV를 통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 버스 기사는 파렴치한으로 몰려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2012년 한 식당에서 임신부가 말싸움을 벌이던 종업원에게 배를 걷어차였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그 식당 프랜차이즈 본사를 집중 공격하며 공식 사과까지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언론들 또한 사실 확인보다 일방의 주장만을 전달하며 사이버 공간 분노의 파도에 편승했다. 임신부라는 약자를 폭행한데 대한 선의의 분노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다. '아전인수'라는 사자성어가 딱 맞는 말이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정치권 논평이 대표적이다. 수용자는 양측의 논평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신의 가치관, 신념에 따라 어느 한쪽의 논평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다른 한쪽은 부정의한 몽니로 받아들인다. 특히 이 같은 확신은 자신과 유사한 성향의 사용자들을 묶어 놓은 SNS 공간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수용자는 자신과 다른 의견이 상대적으로 소수(다른 쪽에서는 얼마든지 다수일 수 있다)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또는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하게 된다. 안도감은 네트워크를 타고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서울에서 일어난 3·1 독립만세운동이 유관순 열사에 의해 한 달이 지난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나게 된 20세기와 다르다. 정보는 느렸고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데도 수일이 걸렸던 때가 아니다. 무지막지한 정보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과거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잘 소통하고 있을까.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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