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아저씨 먹방이 인기 끈 이유

최초입력 2018.01.11 06:01:00
최종수정 2018.01.10 17:01:34

일본 중년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 일본 중년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사진=TV도쿄 캡처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91] '시간과 사회에 구애받지 않고 행복하게 음식을 먹을 때 자유를 느낀다. 혼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고독한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이다.'

'혼밥(혼자 먹는 밥)'의 메카인 일본에서 지난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성 이노가사라 고로가 한 말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재의 먹방'이다.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출장으로 찾은 지역 인근 맛집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독백한다. 원작은 만화인데 2012년 1월부터 드라마로 제작됐다. 매주 금요일 자정에 전파를 타는데도 입소문이 나서 큰 인기를 끌자 지난해 시즌6까지 방송됐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31일.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 황금시간대(저녁 10시~자정)에 고독한 미식가 연말 스페셜까지 등장했다. 이날 방송의 마지막 장면은 생방송으로 꾸며졌다.

일본에서는 매년 12월 31일 공영방송 NHK 홍백가요전 등 쟁쟁한 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되는데 고독한 미식가는 평균 시청률 4.6%를 찍으며 선방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매체들은 "일본 샐러리맨들이 2017년 마지막 날 저녁 각종 예능 프로그램 대신 고독한 미식가를 시청했다"고 전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비결은 뭘까. 사실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마저도 처음 출연을 제의받았을 때 "아재가 혼자 밥 먹는 게 전부인데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WP는 일본 특유 직장 문화에서 드라마 성공 비결을 찾았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은 맛집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검색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등 사전 조사를 하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심플하게 음식점을 선택한다. 회사에 얽매여 무언가에 쫓기듯이 평생 주야장천 일하는 샐러리맨과 달리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만큼 평일 대낮에 여유를 부린다.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서민 음식점만 골라 다닌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그가 혼밥을 즐기는 모습이 일본 남성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또 주인공의 평범함과 거창하지 않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모습이 일본 30·40대 남성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어딘가 2% 정도 부족하지만 주인공의 '진솔한' 연기와 대사도 인기 요인이다. 예컨대 가나가와현 가와자키시 중공업지역 한 불고기집에서 그는 잘 구운 고기를 입에 넣더니 이렇게 말한다. "오~, 내가 인간화력발전소가 된 것 같다." 뜨겁지만 맛있는 고기가 위장을 통과하며 소화되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혼자 밥을 먹으며 쏟아내는 독백을 듣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는 뜻에서 이 드라마를 가리켜 '식(食) 테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묘미는 주인공 대사는 같은데 드라마와 만화에 등장하는 맛집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만화 작가가 시청자들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 일부러 음식점을 바꾸기를 희망했다는데 이게 거꾸로 '신의 한 수'가 됐다. 뻔하지 않아서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이 혼밥을 한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맛집 순례족'도 등장했다. 한 일본 매체는 "주인공이 앉았던 자리에서 똑같은 메뉴를 순서대로 시킨다"며 "드라마 덕분에 손님이 늘면서 썰렁했던 골목상권에도 활기가 돈다"고 전했다.

1인 가구가 크게 늘며 '혼밥'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고독한 미식가 만화와 드라마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독일, 스페인, 브라질 등에도 수출되고 있다. 한편 시청자들은 고독한 미식가 시즌 7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방송사 측에 따르면 제작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임영신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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