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작곡가 김종서, 그가 작사는 전문가에게 맡긴 이유는

최초입력 2018.01.12 06:01:00
최종수정 2018.01.11 17:51:05

김종서 /사진=연합
▲ 김종서 /사진=연합


[스쿨 오브 락-40] 가수로서의 김종서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유연함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출신인 김종서는 탁월한 작곡가였다. 그가 앨범에 실은 거의 대다수의 곡은 그가 직접 쓴 것들이었다.

하지만 작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작사 전문가들의 힘을 십분 활용했다. '대답없는 너'에 이어 김종서 첫 번째 앨범에서 히트한 '지금은 알 수 없어' 가사를 잠시 뜯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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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깨달아야 해 이것이 운명인 것을

진정 사랑하기에 체념도 필요했음을

영문도 모른 채 그댄 울고 있지만

지금은 알 수 없어

그댈 떠나는 내 진심을

My Love 부디 나를 잊어줘

나는 그대의 짐이 될 뿐이야

My Love 벅찬 사랑의 기억도 이제는 잊기로 해요

먼 아주 먼 훗날 마지막 순간 눈 감을 때

난 그대 없음을 후회하겠지

My Love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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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노래의 최대 강점은 바로 이거였다. 청자들의 감수성을 콕콕 자극할 수 있는 아련한 노랫말이 노래의 풍취를 더했다. 이 곡 작사가는 '최명섭'이라는 음악인이다.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를 작사했고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에 노랫말을 붙인 사람으로 유명하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노랫말을 쓰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솔로 데뷔한 김종서에게는 '로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작사까지 전담해 무거운 주제의 노랫말로 데뷔했다면 대박을 쳤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종서는 유연한 길을 택했다. 고집을 버릴 줄 아는 음악인이었다. 작곡을 전담하면서 곡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줄 전문 작사가의 손길을 빌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 결과 노랫말을 중시하는 한국 가요 팬 입장에서 김종서의 절창은 더욱 빛을 발했다.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 사회에 막 노래방이라는 문화가 들어올 때였다(지금은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는 노래방이 많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공부를 잘했고, 지금 정부부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 갔다가 경찰 단속에 걸려 곤욕을 치른 일화가 생각난다). 가무에 능한 한국인들은 노래방이란 신문물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때 김종서의 노래는 한국 남성이 따라 부르기에 더없이 좋은 선택지 중 하나였다.

앞선 편에서 일부 설명한 바 있지만 밴드 시절 김종서의 노래와 솔로 데뷔 이후 김종서의 노래는 좀 다르다. 당장 그의 밴드 데뷔곡이라 할 수 있는 시나위의 '새가 되어 가리'와 솔로 데뷔곡인 '대답없는 너'의 악보만 봐도 차이를 알 수 있다. 밴드 시절 그가 표현하는 음폭의 범위가 훨씬 넓다. 김종서는 데뷔 이후 '대중성'이라는 가요의 핵심 가치를 소홀하게 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따라 불러야 가요로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다. 록 보컬 특유의 교조적인 자세를 그에게는 찾기 힘들었다.

김종서는 데뷔 이후 그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음까지 음을 쏘아 올리면서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록보컬이다'는 자세로 노래하지 않았다. 일반 남성이 다소 힘들지만 어떻게 음은 낼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음을 제한하고, 여기에 절절한 사랑 가사를 이어 붙였다. 그가 넉넉히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에서 오가는 음표들은 김종서가 어떤 컨디션에서도 편안하게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청자 입장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귀에 쏙 박히는 노래 가사가 더해지니 김종서 노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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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나온 김종서 두 번째 앨범 역시 히트 고공행진을 펼친다. 여기에 바로 그 유명한 '겨울비'가 들어있다. 시나위 시절 발표했다가 김종서 솔로 앨범에 다시 실린 그 곡이다(작사가 이름에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들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 실린 '그래도 이제는'도 인기를 끌었다. 작사가로 유명한 '채정은'이 힘을 보탰다. 1집과 2집의 연이은 히트로 김종서는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히트 제조기 반열에 올랐다. 1990년대 중반은 김종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1994년 나온 세 번째 앨범 타이틀 곡인 '세상의 눈물 마를 때까지'에서 표현한 김종서의 보컬은 탁월했다. 그의 장점인 '내지르기' 없이도 얼마나 섬세하게 곡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1집과 2집의 대중적 성공은 그에게 표현의 자유라는 새 길을 열어주었다. 레코딩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돈과 명분도 함께 선물받았다. 그의 세 번째 앨범은 전곡을 김종서가 편곡했다. 레코딩을 위해 일본 엔지니어가 날아왔고 믹싱 등 작업은 아예 일본 현지에서 진행됐다. 기타에 신대철 신윤철 함춘호 등 최고의 세션맨이 힘을 보탰고 김영진 등 일류 베이시스트가 녹음에 참여했다. 김민기가 드럼을 치기도 했다.

이어 1995년에 새 앨범을 낸 김종서는 특유의 록 느낌이 나는 메시지를 들고 나올 만큼 여유가 충만한 상태였다. 굳이 사랑 노래로 국한하지 않아도 가수 김종서를 좋아하는 팬층을 그는 두껍게 확보하고 있었다.

김종서 4집의 타이틀은 '플라스틱 신드롬(Plastic Syndrome)'이란 곡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드디어 김종서가 직접 작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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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걸 다 가지려 하지마

꿈은 꿈대로 남겨둬



오늘 늦은 밤 TV토크쇼

너를 천사로 만들 패션 매거진

세상은 수퍼맨만을 기억해

거리엔 똑같은 얼굴의 사람들

나는 나 너는 너 서로 비교하려 하지마

나는 나 너는 너 모두 똑같이 살 순 없어



중략



너의 화려한 겉모습보다

네 안에 숨어 있는 향기를 사랑해

지갑 속 가득한 신용카드가

영원한 행복을 줄거라 믿지 마

나는 나 너는 너 서로 비교하려 하지마

나는 나 너는 너 모두 똑같이 살 순 없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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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온 플라스틱이란 성형수술을 뜻하는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 에서 차용한 말이다. 개성이 함몰돼 남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김종서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이제 김종서는 록 특유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로 직접 작사한 곡을 타이틀에 내걸 만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김종서는 이 곡을 히트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앨범에 실린 '다시 난 사는 거야'라는 록발라드 역시 히트에 성공했고, 절친 서태지가 이끄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Free Style'이란 곡을 공동 수록하기도 했다(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에도 이 곡이 실려 있다. 이에 앞서 히트곡 '하여가'에 전반부에 실린 고음 백보컬 '예이예이예이 야이야'도 김종서의 목소리다).

다음해인 1996년 나온 5집 앨범도 파격이었다. 랩과 록을 접목시킨 '추락천사'라는 곡이 실려 있었다(이 당시 뉴메탈로 불리는 록의 새로운 물결을 적극 받아들인 결과였다. 안전하게 김종서식 록발라드만 밀었어도 흥행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을 텐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 그의 노력은 적극 평가되어야 한다). 이 앨범에는 지금도 널리 불리는 '아름다운 구속'이란 노래도 엄청난 흥행을 했다.

김종서는 1992년 1집을 낸 이후 1996년 5집을 낼 때까지 매년 빠짐없이 새 앨범을 낸 셈이다. 그리고 내놓는 앨범마다 전부 히트를 시키는 괴력을 보인다. 이 당시 록 음악계에서 꾸준히 인기를 끈 뮤지션으로는 1993년 첫 번째 앨범을 내놓은 '넥스트(NEXT)' 정도를 들 수 있는데 넥스트가 방송보다는 무대 위주로 활약한 점을 볼 때 홀로 방송 무대에서 록계를 '하드캐리'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물론 록에 기반을 둔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후반부로 갈수록 록 음악에 바탕을 둔 무대를 많이 꾸몄지만 이는 예외로 한다. 그 외에는 1992년 데뷔한 신성우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말 이후 김경호를 비롯한 록 신의 후배들이 히트랠리를 펼친 것에는 김종서의 공이 적지 않은 셈이다. 김종서는 1990년대 말에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1998년에는 김종서 밴드라는 이름으로 '에필로그'가 실린 6집을 내놨고 1999년 2001년에도 7집과 8집을 내놓게 된다. 이후로는 4년의 공백 끝에 2005년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이후로는 전성기에 비해 다소 주춤한 활동을 했던 게 사실이고(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외도를 하기도 한다) 이후 성악 발성을 접목시킨 새 목소리를 들고 나온 이후 지금과 같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김종서의 추천곡을 몇 개로 압축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모두가 아는 '겨울비'나 '대답없는 너' 등의 곡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곡 중에 하나를 꼽자면 록과 랩을 접목시킨 '추락천사'가 떠오른다. 지금 들으면 다소 생경할지 몰라도 당시에는 이게 글로벌을 강타한 록의 주류였다. 한국에서는 거의 처음 시도되는 무대였다. 그가 한 방송 무대에서 부른 '겟세마네'도 추천곡이다. 성악 발성을 접목시킨 그의 노력이 곡 전반에 걸쳐 절절하게 묻어 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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