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멜로디와 성스러운 가사···시대를 풍미한 밴드 '크리드(Creed)'

최초입력 2018.04.13 06:01:00
최종수정 2018.04.12 18:06:35

[스쿨 오브 락-53]
우울한 사운드에 실린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그리고 성스러운 가사
'포스트 그런지' 선두주자였던 밴드 크리드(Creed)

'크리드(creed)'란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종교적) 교리, 신념, 신조'라는 뜻이 나온다. '사도신경'이라는 뜻도 있다. 듣기만 해도 경건해지고 거룩해지는 단어다.

그런데 이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밴드 활동을 했던 뮤지션이 있다. 한때 이들은 '포스트 그런지' 선두주자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밴드 이름에 걸맞게 내놓는 메시지도 경건하고 엄숙한 것이 많았다. 온갖 자극적인 것이 판치는 록음악 동네에서 이색적인 전략으로 성공 스토리를 쓴 셈이다.

크리드는 미국 남부 플로리다 출신 밴드다. 그런데 음악적인 느낌은 서부 시애틀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린 기타, 허스키하면서 묵직한 보컬 그리고 우울하게 착 깔린 멜로디는 시애틀 그런지 4인방으로 불렸던 사운드가든, 그리고 펄잼과 묘하게 닮았다.

크리드는 스콧 스탭(보컬), 마크 트레몬티(·기타), 스콧 필립스(드럼), 브라이언 마셜(·베이스) 체제로 1997년 첫 앨범 마이 온 프리즌(My Own Prison)으로 데뷔했다. 음악 스타일은 '그런지의 후계자'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신실한 가사를 축으로 따라부를 만한 멜로디를 뽑아내는 이들의 능력은 탁월했다. 데뷔 앨범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지 사운드는 음악계의 주류로 통할 만한 상황이었다. 너바나(Nirvana)의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지만 오히려 그의 비극적인 결말은 그런지의 수명을 한참 더 연장시킨 측면이 있었다. 너바나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펄잼은(그러나 이 둘의 음악은 사실 사뭇 다르다. 너바나가 펑크였다면 펄잼은 하드록의 느낌 이었다) 1996년 앨범 노 코드(No Code)를 내놓은 데 이어 1998년 일드(Yield)로 건재함을 자랑했다. 시애틀 그런지가 낳은 사운드가든(Soundgarden) 역시 1996년 다운 온 디 업사이드(Down on the Upside)를 내놓았다. 1997년은 그런지의 물결이 여전히 거센 가운데 '시애틀 그런지 4인방을 잇는 후계자는 누가 될지'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있었던 시기였다. 이른바 '뉴페이스'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크리드는 그런지의 스타일을 잇는 적자로 부각되며 단숨에 인지도를 쌓은 것이다. 이 때문에 앨범 발매 초기에는 '짝퉁 그런지가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선배 밴드와 비교해 크리드의 음악은 분명 차별화되는 구석이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가사였다. '사도신경'에서 밴드 이름을 따온 것처럼 이들의 가사는 구원과 양심 등에 관한 주제를 다루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자조적이고 냉소적이었던 너바나와 자아의 성찰,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포괄했던 펄잼과는 분명 다른 각도였다. 가사만 들어보면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밴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었으니 놀랄 만한 일이다. 데뷔 앨범 마이 온 프리즌에서만 '마이 온 프리즌' '톤(Torn)' '와츠 디스 라이프 포(What's this life for)' '원(One)' 등 무려 네 곡의 히트 싱글을 뽑아내며 차세대 그런지 수장으로 단숨에 입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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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앨범 휴먼 클레이(Human Clay)는 더 대박이었다.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차트에 데뷔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 앨범에 실린 히트곡 '하이어(Higher)는 무려 17주간 빌보드 록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 앨범에는 '위드 암스 와이드 오픈(With arms wide open)'도 엄청난 히트를 쳤다. 휴먼 클레이는 전 세계에서 무려 1000만장이 넘겨 팔려나갔다. 이들의 음악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스쿨밴드들이 가장 많이 카피했던 음악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지의 인기가 여전하던 때라 특유의 무거운 사운드가 선호되기도 했고, 중저음 보컬인 스탭이 일반 한국 남성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역 안에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가사 역시 하나하나 뜯어보면 느낌이 있는 것들이었다. <하이어(Higher)>

When dreaming I'm guided to another world(난 꿈속에서 다른 세상을 인도받곤 하지)

Time and time again(몇 번이나 말이야)

At sunrise I fight to stay asleep(해가 떠도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애써)

Cause I don't want to leave the comfort of this place(왜냐면 그곳은 너무나 안락한 곳이라 떠나기가 싫거든)

Cause there's a hunger, a longing to escape

From the life I live when I'm awake(잠에서 깨어난 삶은 고단하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So let's go there(그러니 우리 함께 가자)

Let's make our escape(여기서 빠져나가자)

Come on, let's go there(자, 우리 가보자)

Let's ask can we stay?(우리도 거기 있을 수 있을지 물어보자)

Can you take me higher?(날 높은 곳(천국)으로 데려가겠니)

To the place where blind men see(장님도 앞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Can you take me higher?(날 천국으로 데려가 주겠니)

To the place with golden streets(황금빛 길이 펼쳐진 그곳으로)

Although I would like our world to change(난 지금 현실을 바꾸고도 싶지만)

It helps me to appreciate(그건 정말 날 감동시켜)

Those nights and those dreams(그날의 낮과 그 꿈은 말이야)

But, my friend, I'd sacrifice all those nights(하지만 내 친구여, 난 그 밤들을 전부 포기할 수 있어)

If I could make the Earth and my dreams the same(꿈과 현실이 같아진다면 말이지)

The only difference is(유일하게 다른 점은)

To let love replace all our hate(우리의 증오를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이야)

So let's go there(그러니 가보자)

Let's make our escape(여기서 벗어나자)

Come on, let's go there(자 서둘러 얼른 가보자)

Let's ask can we stay?(우리도 거기 살 수 있는지 물어보자)



후략



지금 쓴 가사는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아니다. 제목에서 썼듯이 크리드가 내놓은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하이어'의 일부다. 그리고 이 곡으로 이들은 빌보드 록차트를 무려 17주나 점령했다. 넉 달 넘게 차트 1위를 내주지 않은 것이다. 내친 김에 같은 앨범에 실린 두 번째 타이틀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점령한 '위드 암스 와이드 오픈(With arms wide open)' 가사도 소개해 본다.

<위드 암스 와이드 오픈(With arms wide open)>

Well I just heard the news today(음, 오늘 소식 들었어)

It seems my life is going to change(내 삶이 변하는 것 같아)

I close my eyes, begin to pray(난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지)

Then tears of joy stream down my face(그때 기쁨의 눈물이 뺨에 흘러내렸어)

With arms wide open(팔을 크게 벌리고)

Under the sunlight(태양 아래)

Welcome to this place(여기 온걸 환영해)

I'll show you everything(난 너에게 모든 걸 보여줄 거야)

With arms wide open(팔을 크게 벌리고)

With arms wide open(팔을 크게 벌리고)

Well I don't know if I'm ready(준비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To be the man I have to be(내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

I'll take a breath, I'll take her by my side(난 심호흡을 하고, 그녀를 옆에 데려올 거야)

We stand in awe, we've created life(우린 경외심 가득한 마음으로 서있겠지, 우리는 생명을 창조했어)

With arms wide open(팔을 크게 벌리고)



후략



퍽 하면 사탄 숭배 이슈가 나오는 록 음악계에서 이 무슨 성스러운 가사란 말인가.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임신한 아내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청교도적인 미국 가장이 떠오른다. 너무나 건전하고 아름답다. 바로 이 점이 당시 미국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묵직하고 경건한 멜로디 사이를 뚫고 나오는 스탭의 중저음 발성은 듣는 귀를 정화시키는 듯한 마력이 있었다. 스탭은 초고음 샤우팅을 선보이는 보컬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애초부터 그런지 스타일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본인이 표현할 수 있는 제한된 음역 아래서 부담스럽지 않은 허스키한 음색으로 청자를 감동시키는 보컬이었다. 펄잼의 에디 베더와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널과 비슷하면서도 좀 달랐다. 그리고 그들이 뽑아내는 멜로디만 놓고 보자면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도로 흘러가는 안정감 측면에서는 너바나와 펄잼을 뛰어넘는 구석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누구나 기억하기 쉬운 팝적인 멜로디를 중저음의 노래 잘하는 가수가 음산하고 무거운 연주에 실어 성스러운 가사로 전달하는 식이다. 한 문장 아래 몇 개의 아이러니가 있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지만 이들은 잘 안 맞을 것 같아 보이는 이 고차방정식을 매우 유려한 구도로 풀어냈다. 그 결과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 밴드로 올라선 것이다.



2001년 11월 나온 크리드의 세 번째 앨범 '웨더드(Weathered)' 역시 인기를 끌었다. 묵직한 디스토션의 기타로 잽을 날리다 한 방에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폭발을 보여주는 이들의 '카타르시스 문법'은 여전했다. 미려한 멜로디도 그대로였다. 새 천년이 되었지만 이들의 인기는 여전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데뷔한 이 앨범은 무려 8주 동안이나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차트 1위로 직행해 8주간 정상을 지킨 기록은 아이돌 보이밴드 개념이었던 엔싱크가 한 번, 최고의 래퍼로 손꼽혔던 스타 에미넘이 한 번씩 세운 바 있었다. 크리드의 인기가 당시 어느 정도였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성기 시절 인기만큼은 전 시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었다 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들의 전성기는 이 세 번째 앨범이 피크였다. 2004년 멤버 간 갈등 등이 불거지며 해체 수순에 접어든다. 포스트 그런지의 선두주자였던 이들은 새 천년이 되자마자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 정상에서 내려온 것이다. 2008년 재결합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뉴스의 한복판에 있는 밴드는 아니다. 이들의 추천곡으로는 앞서 예로 든 거의 모든 곡들을 들고 싶다. 굳이 성스러운 가사를 빼고서라도 이들의 음악은 멜로디 하나만으로 시원한 느낌을 십분 선사한다. 터질 듯 터질 듯 터트리지 않으며 밀당을 하다가, 한 방에 '뻥'하고 터트리는 이들의 작곡법은 언제 들어도 매력 있다. 오랜만에 이들의 음악에 다시 한번 빠지고 싶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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