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오너 밀수 의혹 한복판…관세청장의 호소

최초입력 2018.05.11 06:01:00
최종수정 2018.05.10 17:59:04

[뉴스&와이] "저희들 믿고 적극적으로 제보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지휘관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10일 오전 김영문 관세청장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다. 그는 "(이른바 비밀의 방에서) 물건보다는 자료에서 밀수 의혹과 관련해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면서 지난 2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자택을 두 번째 압수수색한 결과에 대해서도 말했다.

'물컵 갑질'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 불법 밀수·탈세 의혹으로 일파만파된 상황에서 관세청장이 직접 수사 진행 과정을 설명하며 제보자들의 협조 구하기에 나선 셈이다. 이렇다 할 결과를 발표하는 단계가 아닌 상황에서 수사기관장이 나선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김 청장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문 관세청장이 지난 30일 오후 인천세관 등 인천공항 업무 현장 점검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영문 관세청장이 지난 30일 오후 인천세관 등 인천공항 업무 현장 점검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관세청에서는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시그널(signal)'보다는 쏟아지는 '카더라'식 제보와 비난이라는 '노이즈(noise)'에 싸여 있다는 토로가 나온다. 시기나 사람을 특정하지 않은 채 불분명하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일부 언론에서 단독 보도 형식으로 전해지면서 '수사기관은 뭘 하냐'는 지적이 등장한다. 한편에서는 '대형 항공사-관세청-공항공사'로 이뤄진 삼각관계를 들면서 '의혹 당사자인 관세청에 과연 수사 자격이 있느냐'는 비아냥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행'이다. 별다른 시그널이 잡히지 않자 관세청 인천세관은 급기야 제보를 구하기 위해 지난달 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한동안 드루킹 수사 비난, 코인 투자 구호 '가즈아' 등 전혀 관련 없는 소음으로 가득 찼던 오픈채팅방은 결국 침묵에 빠졌다. 텔레그램 등을 통한 제보가 이따금 들어오지만 대부분은 신분 노출을 꺼려 구체적 정황을 확보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인천세관 조사과 직원들 말이다.

관세청을 향한 또 다른 소음은 '세관 유착 의혹'을 들이대며 '특검'에 넘기라는 누리꾼들의 비난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경찰이 수사하라'거나 '유착 기관의 대한항공 조사는 난센스'라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사법경찰로서 수사권을 가진 관세청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관세청은 천홍욱 전 청장의 '최순실 충성 맹세'와 면세점 특혜 선정 의혹에 얽혀 불명예를 떠안은 바 있다. 이번에 불거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관세 포탈과 세관 유착 의혹은 별개 사건으로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검사 출신인 김 청장은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일단 지휘관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만약에 유착됐다면 통관하는 사람들이 유착된 거고 조사·감사 쪽은 엄연히 다른 조직 사람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강조했다.

관세청은 지난해 7월 39년 만에 검사 출신 청장을 맞으며 과거와 다른 분위기로 바뀌는 중이다. 관세청은 유착 연루 의혹에 대해 내부 감사에 나선 한편 최근에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 사건으로 드러난 공항 내 밀반입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관세행정 혁신 태스크포스(TF)' 내 특별대응팀 출범을 검토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특별팀이 만들어지면 그간 관세 회피 목적으로 이용된 공항 상주직원 출입통로 불법 밀반출 가능성을 감시하는 방안이나 세관과 항공사 직원 간 유착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는 입·출국장 상주직원 통로 경비·검색 업무를 공항공사에 위탁하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를 다듬기 위해 관세법과 시행령에 관련 근거를 명확히 하고 위탁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밀수 의혹을 받고 있는 조 회장 일가에 대해서는 이달 안으로 관세청 소환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 청장은 이날 "소환조사 대상에 대해서는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씨 등 세 모녀 외에도 조 회장과 그의 아들 조원태 씨도 포함돼 있다"며 "안 할 리가 없다고 제가 자신 있게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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