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최초입력 2017.04.26 06:01:00
최종수정 2017.04.25 17:41:16

군복차림의 조선 철종 어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 군복차림의 조선 철종 어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디지털&휴먼-75]
-2070년경 인간끼리의 육체적 사랑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로봇과 교제의 어색함도 자주 접하게 되면 익숙해질 것이다.
-인간과의 미세한 차이까지 극복되면 로봇과의 사랑도 가능하다.


조선 시대 말기에 세도정치의 절정을 맞이한다. 특히 철종은 허수아비 왕이었다.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 김씨가 헌종을 이을 왕족을 찾아낸 것이 강화도령 철종이었다.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었던 철종은 자연스레 외척들에게 의존했다. 안동 김씨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심지어 나랏일의 결정 권한을 외숙부 격인 김좌근에게 주었다. 왕이었지만 안동 김씨 세력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 이들을 두려워했던 철종은 매사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신하에게 관직을 줄 때도 반드시 주위에 이렇게 물었다. "교동 아저씨(김좌근)가 아는 일인가?"(책 <조선시대 당쟁사2>, 이성무 저) 철저하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왕이었다. 그런데 이런 철종도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술과 여자였다. 안동 김씨 세력은 후사가 없는 왕을 걱정해 주었다. 왕을 위한 걱정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걱정이었다. 종실 자손 중 똑똑하고 명망 있는 자를 제거하는 일을 병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철종은 술과 여색으로 인해 33세에 죽었다. 14년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왕으로서의 삶을 별 볼일 없이 보낸 것이다.

이렇게 이성과의 교제를 좋아했던 철종이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놀라워하며 반가워할지 모르겠다. 이제 로봇 기술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인간이 아닌 존재와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선더랜드대학교의 성 심리학자 헬렌 드리스콜은 대담한 예언을 하였다. 조만간 섹스 전용 로봇이 성 관련 산업을 이끌어갈 것이며, 심지어 2070년경엔 인간 사이의 육체적 사랑이 원시적 풍속처럼 비칠지 모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이런 로봇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더 이상 이성과의 결혼이나 육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책 , 고장원 저). 지금은 다소 민망한 느낌을 주지만, 성생활에 일대 혁신을 불러올 로봇이 등장하는 셈이다.

테드 창 /사진=위키피디아
▲ 테드 창 /사진=위키피디아
최근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 2016)의 원작자로 주목받은 천재적인 SF 작가 테드 창의 작품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도 인공지능과 교감하는 인간 이야기에 빠짐없이 '인공지능과의 섹스'가 다루어진다. 여기서 가상 세계 속에서 사는 디지털 존재인 디지언트(digient)가 인간의 섹스 파트너로 훈련을 받는 단계가 설명된다. 원래 성별이 없는 디지언트는 최소 2년 정도의 훈련 과정을 거친다. 우선 섹스의 발견과 탐구 단계다. 성감대의 존재를 알려주고 디지언트들끼리의 성적 실험을 장려하여 각자 경험을 쌓은 후 자신에게 적합한 성별을 선택하게 한다. 그리고 특정 인간에 맞춰서 맞춤식으로 인공지능을 튜닝하여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유도한다. 사랑에 도달하기까지 몇 달이 걸릴 수 있지만 진정한 정서적 유대를 맺을 때까지 시도한다. 소설에는 이런 존재들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우리 회사가 제공하려는 것은 매력적이고, 정이 많고, 진정으로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비(非)인간 파트너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소위 섹스 로봇이 단지 성적 쾌락만을 목표로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연인 역할까지 가능해진다.

당연히 로봇과의 교제는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것 역시 시간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책 '보이지 않는 영향력'(조나 버거 저)에 언급된 리처드 모얼랜드 피츠버그대학교 교수의 성격심리학 수업 이야기다. 이 교수의 수업은 200명 정도가 참여한다. 남녀 비율은 5대5다. 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은 짧은 설문조사 작성을 요청받았다. 간단한 설문이었다. 남녀 학생 모두에게 A, B, C, D라고 쓰인 네 여성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매력적인지?", "사진 속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지?",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은지?" 등을 물어보았다. 사실 이 네 명은 모두 비슷한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이 과정은 학생 몰래 진행된 정교한 실험의 일부였다. 이 실험을 통해 재미나고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 네 명의 여성 중 A는 모얼랜드 교수의 성격심리학 수업에 한 번도 오지 않았고, B는 다섯 번, C는 열 번, D는 15번 출석했다. 수업에 참여한 횟수에 비례하여 학생들은 더 매력적인 인물로 꼽았다. 누군가 (알든 모르든)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상대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 것이다. 인공지능 애인이나 섹스로봇 등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다소 변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매체에 자주 노출되고, 주위 사람의 경험담을 듣게 되면 그 벽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확률이 높다. 익숙함은 호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시구로 히로시가 제작한 일본 로봇 여배우 제미노이드F
▲ 이시구로 히로시가 제작한 일본 로봇 여배우 제미노이드F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남아있다. 연인이 되어줄 로봇이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지막)단계다. 인간다운 느낌을 주지 못하면 아무리 자주 노출이 되어도 사랑에 빠지긴 어렵다. 오사카대학 컴퓨터과학자 이시구로 히로시는 가장 인간에 가깝고 매력적인 로봇을 만든 인물이다. 멀리서 보거나 사진으로 보면 인간과 상당히 흡사하다. 하지만 실리콘으로 만든 로봇의 피부를 만지면 그런 느낌이 사라진다. 피부처럼 탱탱한 느낌이 없고 차갑고 단조로운 기분이 든다. 심지어 실리콘 피부가 건조해지면서 수축되면 눈알이 빠져나오기까지 한다. 이 지경까지 이르면, 사랑스러운 연인에서 공포영화 주인공으로 돌변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감탄사가 나오지만, 결국 인간과의 한 끗 차이로 사랑에 빠지기 어렵게 된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일임을 이시구로의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다.

-엡스타인 "눈은 완벽하게 재현되었지만 여전히 뭔가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아마 실제 눈동자에는 빠르고 미세한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시구로 "전기모터를 쓰는데 이 모터의 반응이 아주 빠르지가 않습니다. 다음 제품에서는 조그만 직류모터를 사용할 겁니다만, 이때는 소음이 문제가 됩니다."

(중략)

-이시구로 "안드로이드가 전혀 움직이지 않거나 아주 미묘하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보고 2초 정도 눈을 깜빡이게 해봤습니다. 움직임이 없을 때는 70%의 사람들이 안드로이드가 사람이 아니라고 답했어요. 움직임이 있을 때는 70%가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시간 간격을 어떻게 조절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미묘한 눈의 움직임이나 동작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책 'SCIENTIC AMERICAN 인공지능',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엮음)

이러한 문제들도 결국 극복된다. 이미 많은 과학자, 사업가들이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봇과 교제를 하고 사랑에 빠지는 일도 머지않았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이 보여주는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로봇에 입력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 학습하여 더 간절한 눈빛,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면 사랑에 있어서 로봇의 경쟁력은 인간 이상일지 모른다.

[고평석 인문디지털 커넥터, 책 '제4의 물결, 답은 역사에 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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