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락실 휩쓴 갤러가 납치 개념 도입한 선구자

최초입력 2017.04.19 06:01:00
최종수정 2017.04.24 13:22:31

[게임의 법칙-28] 오락실을 중심으로 한 초기 상업 게임 중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둔 시리즈는 아마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필두로 한 슈팅 게임 시리즈일 것이다. 정체 모를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출격한 단일 기체의 주인공 플레이어가 뿅뿅거리는 빈약한 무장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간단한 구조를 지녔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만 한 구성은 당대에는 보기 드문 수준이었기에 그 인기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이후 비슷한 콘셉트를 띤 슈팅 게임들의 원조가 된다. 외계인의 침공에 맞선 방어작전을 다룬 슈팅 게임 중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무래도 '갤러가'일 것이다. 국내에선 주로 '갤러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게임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거의 유사하게 우르르 몰려나오는 외계인을 격추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마냥 오와 열을 맞춰 내려오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적 움직임과 달리 적기 하나하나가 가끔씩 혼자 근접비행을 하는 패턴이 포함되어 인기가 높았다.

그중에서도 30년이 흐른 지금 봐도 매우 특이한 적기의 움직임 하나가 오늘의 주제다. 적기 대열 맨 뒤에 서 있는 조금 세 보이는 적은 이따금 플레이어 쪽으로 내려와 일반 공격이 아닌 괴상한 빔을 쏘곤 한다. 이 빔에 맞으면 플레이어 기체는 폭파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끌려가며, 적은 끌어간 아군 기체를 뒤에 놓고 다시 대열로 복귀한다.

만약 플레이어가 아군기를 물고 있는 적을 격추시키면 아군기가 풀려나 플레이어 기체와 합체하게 되며, 이때부터 플레이어는 두 개의 기체를 동시에 조종하게 된다. 발사 버튼을 눌러도 두 발이 동시에 나가기 때문에 일부러 납치된 다음 풀어줘서 플레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특이한 패턴이 '갤러가'에 존재했었다.

"갤러가"의 트랙터 빔. 광선 안에 들어가면 아군 우주선이 빨려들어가 납치된다. 기존의 우주 슈팅 게임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요소로 "납치"가 포함되었다.
▲ "갤러가"의 트랙터 빔. 광선 안에 들어가면 아군 우주선이 빨려들어가 납치된다. 기존의 우주 슈팅 게임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요소로 "납치"가 포함되었다.
광선을 쏘아 물체를 당기는 기술을 SF 등에서는 이른바 '트랙터 빔'이라고 부른다. 게임을 넘어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도 미래 기술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외계 나방('갤러가'라는 이름은 갤럭시와 일본어로 나방을 뜻하는 '가'가 합쳐진 것이다)들이 쳐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트랙터 빔이 등장한다는 건 언뜻 보기에는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외계 나방의 공습에 트랙터 빔이 등장하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주 슈팅 게임, 냉전 시대 불안의 투사

UFO를 목격하거나 외계인을 만나는 일 등을 '근접조우'라고 부른다. UFO를 단순 목격한 것이 제1종 근접조우, 목격 외의 흔적이 남는 현상을 동반할 때 제2종 근접조우, 외계 생명체를 만나는 것을 제3종 근접조우라고 구분한다. 제4종 근접조우는 인간이 UFO로 납치된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갤러가'에서 아군기가 트랙터 빔에 의해 끌려간 상황은 UFO 구분에 따른다면 제4종 근접조우에 해당할 것이다.

UFO 목격담, 외계인에 의한 납치 사건과 같은 UFO 관련 미스터리는 재미있게도 1970년부터 1980년에 걸치는 시기에 매우 높은 빈도로 집중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UFO의 목격과 외계인의 침략에 대한 불안은 냉전 체제의 대립이 가져온 불안에서 기인한다.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우주 시대의 개막, 비밀스럽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동서 양 진영의 은밀한 첩보전, 베일에 가려진 많은 정보들은 UFO와 외계인에 관한 음모론과 불안을 키웠다.

그중에서도 제4종 근접조우, 납치와 관련된 내용은 냉전시대의 비밀주의가 낳은 음모론 중에서도 꽤나 사람들에게 가까운 불안감이었다. 지금처럼 다채로운 정보망이 발전하기 전의 시기였기도 했고, 외계인의 침공이 거시적인 불안이었다면 납치는 좀 더 개인적인 불안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미지의 외계세력에 공포를 투사한 형태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였다면, '갤러가' 에서는 트랙터 빔이라는 납치극이 포함되며 제4종 근접조우의 형태가 게임 안에 표현되기 시작한다. 비밀주의의 냉전이 주는 불안감을 외계에서의 침공으로 투사한 게임은 '갤러가'의 트랙터 빔을 통해 좀 더 개인적인 불안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기의 공격에 기체가 폭발하는 경우는 차라리 다음 기체가 그 빈자리를 대신하게 되므로 그러려니 하지만, 납치된 기체는 화면상에서 계속 적진 뒤에 잡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는 관용어로 표현 가능한 이 상황은 기존 게임과는 다른 색다른 긴장과 불안을 낳으며, 동시에 자기 구원의 서사에 이른다. 납치한 적기를 잘 조준해서 맞추면 납치된 아군기를 구하고, 함께 화력을 두 배로 올려 싸울 수 있다는 면에서 '갤러가'의 트랙터 빔 납치는 자기구원의 서사가 되는 것이다.

시대의 거울로서 게임의 존재

많은 정보들이 가려져 있던 비밀주의 중심의 냉전 시대가 가져온 불안감은 비디오게임에서 외계인의 침공, 납치라는 형태를 통해 드러났다. 그리고 냉전 구도가 해체된 후 다층적 갈등을 보이면서 동시에 네트워크와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 통제는커녕 정보 과잉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또한 시대적 불안감은 비디오게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려진 불안감이 외계인을 게임에 소환했다면, 이제는 '와치독스'와 같은 게임에서는 타인의 정보를 손쉽게 볼 수 있는 해커와 빅브러더에 대한 공포가, '레플리카'와 같은 게임에서는 미시 감시체계에 대한 공포가 드러난다.

"와치독스"의 주인공은 해커로, 스마트폰 해킹을 통해 길가는 모든 이들의 신상정보와 계좌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게임 속 세계가 빅브라더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으로, 우리 시대의 불안요소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 "와치독스"의 주인공은 해커로, 스마트폰 해킹을 통해 길가는 모든 이들의 신상정보와 계좌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게임 속 세계가 빅브라더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으로, 우리 시대의 불안요소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갈등과 극복이 중심을 이루는 게임의 구조를 생각한다면, 그 갈등의 기반을 게이머에게 가장 잘 이해시키기 위해 당대의 이슈를 녹여낼 수밖에 없고 또 그를 통해 좀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가 게임으로 우리 시대를 바라본다면, 게임이 어떤 주제로 갈등을 엮어내는가를 통해 우리 시대의 불안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낼 후대의 연구도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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