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안티 클라시코의 심장 - 카스텔로 폰테루톨리 (상)

최초입력 2017.04.19 06:01:00
최종수정 2017.04.18 18:46:47

까스텔로 폰테루톨리 와이너리가 자리한 마을 /사진제공=마쩨이
▲ 까스텔로 폰테루톨리 와이너리가 자리한 마을 /사진제공=마쩨이
[세계의 와인기행-27]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키안티 클라시코의 와인 생산자들을 만나면 꼭 한번은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목에 부착된 수탉을 가리키며 "이 수탉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가 도시국가 형태였던 14세기 무렵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을 두고 긴 전투를 벌이다 지친 피렌체와 시에나는 마침내 기병 경주로 영토를 정하기로 한다. 이른 새벽 각자의 수탉이 우는 순간 기병이 출발해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수탉이 조금이라도 일찍 울도록 하기 위해 양측은 서로 다른 방식에 승부를 건다. 피렌체에서는 검은 수탉을 굶겨서 어두운 곳에 두었고, 시에나에서는 흰 수탉을 배불리 먹여 편히 잠들게 했다. 결과는 피렌체의 승리! 검은 수탉이 먼저 울어서 피렌체는 시에나의 성을 불과 1.6㎞ 남긴 지점까지 영토를 차지했다.

당시에 기병들이 말을 달렸던 대로인 비아 카시아(Via Cassia) 주변으로는 수탉 문양의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으로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포진해 있다. 그중 600년 역사를 지닌 마체이(Mazzei) 가문의 '카스텔로 폰테루톨리(Castello di Fonterutoli)' 와이너리를 찾아갔다. 지하수에 의해 셀러의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고, 중력을 이용해 와인을 양조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까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와인 숍
▲ 까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와인 숍
먼저 카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손님들이 머무는 저택으로 향했다. 영빈관으로 쓰이는 저택을 중심으로 작은 성, 예배당 등 중세 건축물들이 자리한다. 그중 일부는 현재 부티크 호텔, 와인 숍, 도서관 등으로 쓰인다. 결 좋은 목재와 패브릭, 마체이 가문이 직접 재배한 라벤더로 꾸민 내부에 들어서니 지인의 집에 초대받은 듯 마음이 편했다.

수출 디렉터 조반니 마체이(Giovanni Mazzei)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20대 후반의 청년인 그는 차세대 마체이를 이끌어갈 젊은 리더로 쾌활한 성격이 돋보였다. 다 함께 거실에 앉아 환영의 의미로 스파클링 와인을 땄다. 와인의 이름은 '빌라 마르첼로 프로세코 밀레시마토 브룻(Villa Marcello Prosecco Millesimato Brut)'. 마체이가 베네토 지역에 소유한 와이너리인 빌라 마르첼로의 스파클링 와인이다. 토착 품종 '글레라' 85%와 국제품종 '피노블랑' 15%로 만들었다고 한다. 입에 머금는 순간 상쾌하게 다가와서 크림같이 번지는 질감이 매력적이었다. "아주 기분 좋은 바다나 하늘이 떠오르지 않나요?"라며 조반니 마체이는 활짝 웃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와인을 넘기니 그의 말처럼 구름이 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조반니는 문득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 전 만찬 연설에서 마체이의 설립자 필리프 마체이가 언급된 내용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건국에 이탈리아가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필리프 마체이가 토머스 제퍼슨의 친구로서 독립 전쟁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필리프 마체이 기념우표가 발행됐을 정도로 미국에서 그는 중요한 인물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All men are created equal)'는 문장이 바로 그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형제인 프란체스코 마쩨이 이사와 필리포 마쩨이 이사 /사진제공=마쩨이
▲ 형제인 프란체스코 마쩨이 이사와 필리포 마쩨이 이사 /사진제공=마쩨이
1435년 설립된 마체이 와이너리는 현재도 외부 자본의 간섭 없이 가문 소유로 25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라포 마체이(Lapo Mazzei) 회장을 주축으로 그의 두 아들인 프란체스코 마체이(Francesco Mazzei) 경영 이사, 필리포 마체이(Filippo Mazzei) 경영 이사가 이끌어 간다. 수출 이사인 조반니 마체이는 필리포 마체이의 아들이다. 조반니와 함께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도서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11~15세기 고서적들이 벽면 가득한 모습에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이곳 서적들 중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키안티 와인'이라는 명칭을 마체이에서 가장 먼저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록된 문서도 보관돼 있었다.

카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와인은 현재 5대륙 60여 개국에 수출된다. 슈퍼 투스칸 '시에피(Siepi)', 120개의 마이크로 구획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폰테루톨리(Fontelutoli)'가 대표적이다. 36가지 산조베세 클론에서 찾아낸 최상의 블렌딩으로 완성한 '카스텔로 폰테루톨리 그란 셀레치오네(Castello Fonterutoli Gran Selezione)'와 필리프 마체이 헌정 와인으로 연간 2만병만 생산되는 필리프(Philip)도 유명하다. 이 와인들은 저명한 와인전문지 감베로로소에서 31차례 만점을 받고, 미국 유력 와인매거진 와인스펙터이터에서 70번에 걸쳐 90점 이상을 받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마쩨이 가문의 차세대 리더 지오반니 마쩨이
▲ 마쩨이 가문의 차세대 리더 지오반니 마쩨이
본격적으로 와인을 시음하기 위해 이 지역 전통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조반니의 차에 오르자 커다란 사냥개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개의 이름이 큰 오크통을 뜻하는 바리크(Barrique)라고 조반니는 말했다. 반려견에게도 와인 양조 용어로 이름을 지을 정도로 와인에 푹 빠져 있는 이 가문의 와인은 어떤 맛일까? ('중'편으로 이어짐)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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