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서울을 다루는 방식-에이전트 오브 메이헴 (상)

최초입력 2017.09.13 06:01:00
최종수정 2017.09.13 09:16:03

[게임의 법칙-49] ◆서울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

맛간 센스로 유명한 게임 시리즈인 '세인츠 로우'의 최신작이자 스핀오프 시리즈인 신작 액션 게임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거두고 있다. 제작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에 비한다면 수작의 반열에 들기는 어려운 게임이 될 분위기다.


▲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로 전작의 명성을 이어가려 했지만 게이머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은 편이다.
게임은 여러 면에서 애매하다. 시리즈의 전작들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유발하는 헛웃음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인기를 끌었던 점을 되새겨 보면,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괴팍한 요소를 줄이면서 보다 메이저 게임에 다가서려는 욕망을 보인 점이 가장 큰 실패 요소로 꼽힌다. 특유의 '괴랄한' 센스는 완전히 빠지지도 남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며 가장 큰 애매함으로 남았다.

게임의 서사적 측면도 애매하다는 평가 이상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이야기는 대단히 단순한 선악 구도로만 잡혀 있어 식상하고 심지어 선과 악의 배경은 성의 없어 보일 정도다. 악당은 그저 전 세계의 국가를 모두 파괴하겠다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고, 그 행동의 배경은 무척 모호하다. 게다가 악당에 맞서기 위한 국제 규모의 특수부대는 국가라는 거대 관료제의 수호자가 되어 버린다. '엑스컴'이 똑같은 국제연합 대 외계인 대응팀이었지만 외계인에 비해 언더독의 입장을 가졌던 점을 생각하면, 애초에 국가라는 권력과 자본을 배경 삼은 메이헴 팀의 모험담은 대단히 정의롭지도, 그렇다고 험난한 고난을 넘어서며 불가능한 임무를 달성하는 영웅담스럽지도 않다.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에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주목받는 지점은 역시 게임의 배경으로 사용된 서울의 의미일 것이다. 한국어 기반 문화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한 규모의 메갈로폴리스이면서도 사실 문화콘텐츠 부문에서는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도시이기도 하다.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이 게임의 주무대로 서울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의 일들을 그려냈다는 점은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주목받을 만한 일이었다.

◆수직화된 밀집의 도시, 서울의 이야기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에서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의 점프 동작은 3단 점프 구조로 되어 있다. 기본 점프를 한 뒤에도 발에 달린 부스터 등을 사용해 공중에서 두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현실의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어지간한 높이의 난간과 구조물을 뛰어넘어 다닐 수 있는 쾌감을 제공한다. 낙하 또한 판타지의 영역인데, 모든 캐릭터는 착지 시 별도의 충격 대미지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낙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게임은 하이퍼 FPS의 느낌으로 3단의 점프가 가능해 수직적 카메라워크를 강조한다. 화면 곳곳에서 배경이 서울임을 알 수 있는 한글 간판들을 볼 수 있다.
▲ 게임은 하이퍼 FPS의 느낌으로 3단의 점프가 가능해 수직적 카메라워크를 강조한다. 화면 곳곳에서 배경이 서울임을 알 수 있는 한글 간판들을 볼 수 있다.
게임이 점프와 착지 같은 수직적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게임 속 배경 공간은 수직적 이동에 관한 설계가 적지 않게 적용된 세계가 된다. 고층 빌딩의 숲으로 이루어진 게임 속 공간은 이동과 전투의 배경으로 활용되며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동안 무척 잦은 수직적 카메라워크를 보여 주도록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게임이 서울을 바라보는 첫 번째 이미지가 드러난다. 수직적 근미래 공간으로서의 서울이다.

수직적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단지 시각적 도상으로서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뉴욕의 8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인구밀도는 제한된 넓이의 영역에 그 이상의 인구에 필요한 거주와 생산, 소비를 수용하기 위해 도시의 확장을 수직적으로 만들었다. 한때는 하늘을 찌르며 올라가는 마천루의 숲이 산업적 달성의 기념비로 자리하던 시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이 그린 서울이 이처럼 수직공간의 도시라는 점은 집적화된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바라본 예리함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부자가 큰 고민 없이 언뜻 스쳐 지나가며 바라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도 품는다.

한계를 짚기 위해 똑같이 수직적 밀집을 묘사하는 다른 매체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공간은 마천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공중도시에 가깝다. 마천루의 상층부와 하층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영화 속 도시는 산업화에 따른 집적이 계급 분할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장면과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의 장면을 같이 놓고 볼 때 우리는 굉장히 큰 차이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밀집도에 대한 묘사다.

블레이드 러너의 유통망-도로 혹은 상점가-은 매우 북적거리며 높은 밀집도를 보인다. 상공에서 줄을 맞추어 움직이는 비행형 탈 것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줄을 이루며 화면을 가로로 수놓는다. 주인공이 배회하는 도시 하층부는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사람과 가게로 가득 차서 누군가들의 사이를 헤집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형태를 취한다. 반면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의 도로는 어떠한가? 마치 북한의 평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산하며 비어 있는 모습으로 게임은 서울의 유통망을 그려낸다.

게임 속 서울은 무척 밀집된 수직적 도시지만, 이상하게도 도로는 평양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한산하다.
▲ 게임 속 서울은 무척 밀집된 수직적 도시지만, 이상하게도 도로는 평양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한산하다.
물리법칙하의 세계에서 밀집은 언제나 과열을 유발한다. 컴퓨터 부품 기술의 발전으로 연산 단위들이 보다 좁은 면적 안에 밀집하면서 연산의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됨과 함께 부각된 새로운 이슈는 쿨러(냉각장치)를 통한 발열 해소의 문제였다. 도시의 경우 열섬(urban heat Island) 현상으로 인해 언제나 주변부에 비해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결과를 나타낸다. 과밀함과 수직적 전개는 그래서 밀집과 과열을 부르는데,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수직화된 서울을 그리면서도 한산한 유통망을 함께 표현하는 바람에 수직 구조의 도시가 마치 죽은 듯한 느낌을 품는 디자인이 되고 말았다.

급속도의 발전 붐을 타고 올라온 서울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과밀하며,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는 서울의 이미지가 수직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 인상에 기댄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말이 품는 함의 자체가 수직화·집적화를 담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만 그에 대한 게임 속 묘사는 수직화와 연관된 다른 이슈들을 허술하게 다루면서 살아있는 밀집의 도시가 아닌 죽은 형태의 도시로 서울을 그려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왜 이방인의 눈으로 서울을 다룬 게임 제작사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서울을 관찰하고 묘사하게 된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다음주 2부에서는 이방인이 바라보는 서울 읽기의 배경과 저변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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