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세계 경계의 모호함, '레디 플레이어 원'이 투영한 자본주의

최초입력 2018.05.16 06:01:00
최종수정 2018.05.15 17:31:51

[게임의 법칙-84] '폴아웃'의 볼트 112와 가상현실

인기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의 세계는 핵전쟁으로 몰락해버린 공간이다. 핵의 공포를 빌미로 볼트텍이라는 회사는 핵전쟁 사태가 와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인 지하 벙커 형태의 볼트(Vault)를 건설하고 민간인에게 분양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 볼트는 순수한 민간 기업의 건설물은 아니었으며, 외부로부터 완전히 폐쇄된 지하 공간 안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이 난무하기도 했던 공간이었다.

그 여러 가지 실험 중 112번 볼트의 경우는 좀 더 흥미롭다. '폴아웃' 3편에 등장하는 이 볼트의 거주민들은 가상현실(VR) 기기 속에 들어간 채 살아간다. 포드 안에 몸을 뉘었지만 이들의 의식은 가상현실 속에서 작은 마을 안의 평화로운 주민으로 자리한다. 현실의 육신은 쇠락했지만, 의식만은 또렷했기에 200년이 넘게 기기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게임 안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볼트 112 주민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은 현실의 지하 공간 볼트 112였을까, 아니면 가상현실 속에 구현된 작은 마을이었을까? 가상의 세계와 현실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경계를 갖는다. 가상의 목표가 언제나 '현실 같은 가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현실과 연계되는 가상 공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VR 세계가 등장한다. 영화 속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VR 헤드셋과 햅틱 장갑을 끼고 오아시스에 접속해 새로운 삶을 누린다. 게임의 형식을 이용해 구현된 가상세계 오아시스는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그 자체로 거대한 아드레날린의 구덩이다. 일상이 피폐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가상 공간에 몰입하는데, 트레일러촌을 비추는 카메라가 잡아주는 가난한 집들 사이사이에서 모두가 오아시스를 플레이하는 광경과 거대 기업 IOI의 수장이 자신의 오아시스 계정 비밀번호도 모르는 광경은 대비를 이루며 이 공간이 현실로부터의 안식이자 도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두에 언급한 '폴아웃'의 볼트 112가 몰락한 세계로부터의 도피로서 가상현실을 이용했다는 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둘의 차이 또한 명확한데,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는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접속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반면 볼트 112의 거주민들은 특정인을 제외하면 이 공간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이 참여하는 공간이 가상임을 알기에 오아시스와 실제 현실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대표적인 장면이 게임 안에서 획득한 사이버머니로 현실의 햅틱 슈트를 주문하는 장면이다. 가상 공간의 화폐로 구매한 물건은 드론을 통해 실물로 배송되어 주인공 집에 도착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구매 행위가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당사자도 세계도 알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 가상의 공간과 현실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일종의 화폐라는 점이다. 사이버머니로 현실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연계성은 단순히 새로운 슈트를 구매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 안에서 IOI라는 이름의 거대 기업의 출현을 부른다. 이들은 오아시스라는 게임 공간 안에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나는데, 여기서의 수익은 게임 안에서가 아닌 현실 공간에 이윤을 가져다줌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마치 현대 온라인게임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템·골드 파밍 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존재는 화폐를 통해 현실과 교류하는 가상의 공간이 결코 완전히 현실로부터 분리된 공간이 아님을 역설한다.

가상의 공간이 자본의 이윤 창출 공간으로 이용되는 것은 그런데 비단 영화 속 오아시스 게임에만 보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대중문화들은 근본적으로 소비를 목적으로 제작된 생산품이며, 그 과정은 소비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된다. 소비와 향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양면성은 소비와 향유의 주체인 대중으로 하여금 간혹 소비가 향유의 영역을 넘어서려 할 때 반대를 명확히 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아이돌 그룹의 리패키지 음반이 나올 때 '장사가 과도하다'면서 분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구매하는 경우와, 지상파 예능에 출연하는 힙합 래퍼가 힙합정신을 버렸다고 비난하는 경우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IOI와 맞서기 위해 결집하는 개별 게이머 그룹들을 통해 드러난다. 대중은 자신들의 대중문화가 자본주의 상품이라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지만, 상품도 상품 나름의 정도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상품으로서 깔린 판 위에 쌓아올린 대중의 문화 향유만큼은 IOI로 대표되는 또 다른 상품화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양면성이 갖는 균형이 소비 쪽으로 과하게 기울어질 경우 대중은 이에 저항한다.
▲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양면성이 갖는 균형이 소비 쪽으로 과하게 기울어질 경우 대중은 이에 저항한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영화의 플롯에서 절정을 이루는 장면은 일반 게이머들이 연합해서 거대 자본 IOI가 이스터에그를 활용한 희대의 게임에 개입하는 것을 막아내는 장면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온갖 대중문화 아이콘들이 총출동해 싸우는 장면은 그래서 대중문화의 향유가 도를 넘은 소비 촉진에 저항하는 장면이 된다. 스필버그는 이 싸움을 통해 대중문화 소비자가 다시금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내는 결말을 보여주고, 대중문화 콘텐츠의 속성이 향유자들(최종 소유권이 주인공의 하이파이브 팀 전부에게 주어진다)에게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소유권을 얻어낸 이들의 결정은 일주일에 한 번 강제로 오아시스를 셧다운시키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상처받고 자기 안에 갇힌 이들에게 다시 세상과 소통하라는 메시지로 읽는 해석과 같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의미 또한 가상으로 인지하는 가상세계를 잠시 내려놓는 순간을 만들라는 이 결말의 메시지는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읽힐 것이다. 영화감독이 게임 세대에게 보내는 '게임 좀 작작 해라'로 읽을 수도 있고, 현실이 가상보다 역시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요소들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여기서 셧다운의 대상이 되는 공간은 단지 유희로서만의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오아시스는 그 자체로 현실의 생산과 소비를 대체하고 있는 확장된 현실로서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아시스에 대한 셧다운 추가는 가상 공간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만 읽기 어렵다. 오아시스의 폐쇄나 볼트 112 같은 완전한 가상 공간으로의 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절충의 지점으로 결론을 이끌어가는 것은 마치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여는' 정도의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잠시 헤드셋을 벗고 하늘을 보라는 권유는 자본주의 대중문화로 온통 둘러싸여가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 권리 하나를 가리킨다. 우리는 아직까지는 원한다면 언제라도 책을 덮을 수 있고, 이어폰을 뺄 수 있으며, 게임기를 끌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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