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반도의 14살 춤추는 소녀···그녀가 '나'를 치유했다

최초입력 2017.08.10 06:01:00
최종수정 2017.08.09 17:23:18


▲ '이즈의 무희'는 영화로만 6편이 만들어졌다. 1963년 서하 카츠미 감독이 만든 영화의 한 장면.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36] '이즈의 무희'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의미를 더하는 상징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나'와 유랑가무단 소속의 타비게닌(旅芸人) 5명이다. 가무단원 5명은 리더인 어머니와 큰딸인 치요코, 치요코의 남편인 에이키치, 작은딸인 14살짜리 카오루, 그리고 구성원 중 유일하게 가족관계가 아닌 17살 유리코다.

소설은 '나'와 유랑가무단이 아마기 고개에서 우연히 만난 후 동행하는 이야기인데,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여행 중 나와 카오루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다. 두 주인공이 미성숙한 호감과 연정 같은 걸 느껴가는 과정은 소설의 중심 이미지를 구성한다.

주인공 '나'는 아마기의 찻집에서 카오루를 처음 봤을때 그녀에 대해 불순한 마음을 갖는다. 그녀가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최하층 천민인 타비게닌에 속한 여인을 윤락 여성처럼 대하는 당시 일본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한몫했다.

불순한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묘한 연정으로 변해간다. 가무단이 공연하는 소리를 자신의 숙소에서 들으며 나는 카오루가 더럽혀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얼마 후 온천욕을 하던 카오루가 자신을 발견하고 알몸으로 뛰어나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가 순수한 아이였음을 깨닫는다. 카오루에 대한 생각이 성적인 욕망에서 순수한 감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 부분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그린다.

"어두컴컴한 욕실 안쪽에서 갑자기 발가벗은 여자가 달려 나오는가 싶더니, 탈의장 끄트머리에서 냇가로 뛰어내릴 듯한 모습으로 서서는 양손을 번쩍 들고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수건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게 무희였다. 어린 오동나무처럼 보기 좋게 쭉 뻗은 하얀 나체를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 킥킥 웃었다. 어린애였다."

카오루를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처녀로 생각하고 욕망으로 들끓던 나는 이 장면 이후 달라진다. 속세의 사랑이 정신적 사랑으로 옮겨갔으며 순수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유랑가무단과의 동행을 받아들이게 된다.

흥미로운 건 '나'에 대한 14살짜리 카오루의 생각인데, 그녀 역시 마음이 흔들린 것으로 묘사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분명 그녀도 마음속에 설렘 같은 게 자리를 잡고 있다. 카오루가 차(茶)를 엎지르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보자.

"무희가 아래층에서 차를 날라 왔다. 내 앞에 앉더니, 새빨개지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손이 떨려서 잔이 차 받침에서 떨어지려고 하자 급하게 다다미에 내려놓는 바람에 차를 엎지르고 말았다. 너무나 심하게 수줍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소설에서 주인공과 카오루가 분홍빛 밀당을 주고받기 시작한 순간을 야스나리는 찻잔을 엎지르는 것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소설이 진행되면서 묘사는 조금 더 진해진다. 나와 카오루가 바둑을 두는 장면이다.

"처음엔 멀찌감치 앉아서 손을 길게 뻗어 돌을 놓더니 점점 자신도 모르게 바둑판 위로 몸을 기울여 왔다. 아름다운 머리칼이 내 가슴을 스칠 정도가 됐다. 그 순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실례하겠어요. 야단맞으니까요"하면서 돌을 내던지고는 뛰쳐나갔다. 공동탕 앞에 어머니가 서 있었던 것이다."

순수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설렘으로 다가오는 카오루를 보면서 '나'는 세속의 고민과 불안에서 벗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지고 있었던 뒤틀린 고아의식과 우울함이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치유의 느낌은 카오루가 타인에게 자신을 평하는 말을 엿듣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은 좋아."

주인공은 자신이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보편적인 의미로 좋은 사람임을 카오루의 말을 통해 신내림 받듯 깨닫는다. 카오루는 자신의 서툰 애정 표현으로 한 남자의 영혼을 구제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순간 소설은 불현듯 마을 어귀에 있는 푯말을 보여준다. 푯말에는 '거지와 유랑가무단은 마을에 들어오지 말 것'이라고 써 있다. 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영혼이 치유되는 순간 이 푯말이 등장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차별받는 대상들과 함께 마음을 열고 길을 걷는 '좋은 사람'으로서의 주인공 모습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소설 전체에 가득한 상징들을 간과하면 이 소설은 그 빛을 잃는다. 야스나리의 소설이 모두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작은 상징적 사건들을 거치며 종교적인 정화의식을 치르듯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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