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사람이 개로, 영어발음에 얽힌 사건들

최초입력 2017.08.11 15:01:00
최종수정 2017.08.11 15:04:0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두바이 파일럿 도전기-14]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나 어릴 적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곳 두바이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더욱 통감하고 있다.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리트의 제1언어는 아랍어지만, 1970년대까지 영국 보호령에 속했던 역사도 있고, 무엇보다 전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글로벌 도시이기 때문에 공용어인 영어가 훨씬 널리 쓰이고 있다.

재밌는 점은 우리 기수의 경우 총 16명 중 영국인 한 명을 빼고는 전부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다 보니 영어 발음을 둘러싼 소소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Priciple of Flight(항공학원론)' 수업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피칭 모먼트(Pitching Moment)'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상하로 움직이는 행동을 피칭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운동을 피칭 모먼트라고 한다.

엄숙하고 조용한 수업시간. 서서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집중도 잘 안 되는 즈음에 교관이 맨 앞자리에 앉은 요르단 친구에게 책에 쓰여 있는 피칭 모먼트에 대해 읽으라고 시켰다. 그가 읽어내려 갔다.

"In aerodynamics, the pitching moment on an airfoil is the moment produced by the aerodynamic force on the airfoil…(대기역학에서 피칭 모먼트는 에어포일의 공기역학적 힘에 의해 생성되는 모먼트를 의미한다)."

그런데 갑자기 실실 웃는 교관. 다시 한번 '피칭 모먼트'를 발음해보란다. 그가 대답했다.

"Bitching Moment."

교관이 다시 물었다. "What?"

"Bitching Moment. Bitching Moment."

알다시피 영어에서 'Bitch'는 여성에게 쓰는 비속어다. '피칭 모먼트'를 끝까지 '비칭 모먼트'로 발음하는 그의 모습에 교관이 웃겨서 다시 읽어보라고 시킨 것이었다. 과학자들이 힘들게 찾아낸 비행기의 물리법칙이 한순간에 욕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남 얘기 같지 않아 왠지 웃지 못한 나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이 같이 웃었다.

교관이 말하길, 자신이 어제 아침에 주차구역을 두고 이웃 주민과 잠깐 시비가 붙었는데 싸우는 사람이 "This is my Parking Zone(이곳은 내 주차구역이야)"를 "This is my Barking Zone(이곳은 내가 멍멍 짖는 구역이야)"이라고 소리 질렀다나 뭐라나. 심각한 순간인데 순간 웃음이 '빵' 하고 터질 뻔해서 굉장히 곤란했다고 한다.

이러한 깨알 같은 '디스'에 요르단 친구는 "나는 영어를 20세 때 처음 접했다. 내 모국어는 아랍어다. 아랍어에는 P발음이 익숙하지 않아서 보통 P를 B발음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별로 개의치 않으면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뭐 나보고 어쩌라고,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나와서 솔직히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사실 그의 영어는 유창하다. 그러니 교관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지).

그런데 말이다. 내가 보기엔 교관도 남의 발음 가지고 놀릴 처지는 아닌게, 본인도 인도 출신이라서 정통 브리티시 영어나 아메리칸 영어와 발음이 엄청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참. 예를 들면 '텐던시'라고 발음하는 Tendency(경향)를 "뗀~떠언~~씌"라고 한다든지 '퓨설러지'라고 발음하는 fuselage(비행기 몸통)을 "쀼쌀뤄어어~~~취"라고 발음한다든지… 이런 식이다. 최대한 늘어뜨려 읽는 것이 포인트. 조금의 과장도 섞지 않았다. 그래 누가 누굴 놀리냐.

하지만 어쨌든 영어발음 웃기게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인도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동기들에게 직접 들은, 나를 비롯한 한국인 영어발음 특징은 'R 발음을 제대로 안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Rice(쌀)'를 발음할 때 혀를 꼬면서 "롸이스"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 그냥 '라이스'라고 발음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Am I right(내가 맞아)?"라고 물어봐야 하는데 "Am I light(내가 불이야)?" 이렇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얘기를 들을 때는 그런 점을 미리 숙지하고 자신들이 알아서 필터링해서 듣는다고 친절히 내게 알려줬다. 그래 고맙다 얘들아. 나도 노오력하고 있으니 '어륀쥐(Orange)' '미열크(Milk)' '에이쁘을(Apple)'이라고 발음할 날이 언젠가는 올거야. 언젠가는.

[Flying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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