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탈춤의 만남 '오셀로와 이아고'

최초입력 2018.01.13 06:01:00
최종수정 2018.01.17 09:29:06

오셀로와 이아고
▲ 오셀로와 이아고


[더 스테이지-106] 한국 공연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은 다름 아닌 셰익스피어다. 희·비극을 포함해 38편의 작품을 남긴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올겨울만 해도 '햄릿-얼라이브', '리어왕', '템페스트' 등 그의 작품이 다양한 장르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12일 개막하는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만드는 '오셀로와 이아고'다. 셰익스피어가 탈춤과 만났기 때문이다.

연극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 제례에서 야외 극장에서 실연되는 가면극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비극 공연 무대에는 배우가 세 명 이상 출연하지 않았다. 대신 서른 개의 다른 유형의 가면이 있었다. 배우들은 이 가지각색의 탈을 쓰고 자신의 본얼굴을 가린 채 젊은이와 노인, 상냥한 사람, 성난 사람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연기했다.

'탈'과 셰익스피어의 만남이 흥미로운 건 '탈'이 가면과 외형적으로는 같으나 근본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의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른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탈을 썼다. 반면 우리 '탈춤'은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썼다. 탈이 갖는 은폐성, 상징성, 표현성에 힘입어 일반 서민들의 정서, 특히 지배층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데 널리 활용됐다. 당시 탈춤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파계승, 몰락한 양반 등이었다. 이들의 부조리함을 폭로함으로써 지배층이 내세우는 도덕의 추악함과 특정 지배계층의 비리를 공격하고 극적 갈등을 더해 관람자의 흥미를 유발했다.

'오셀로와 이아고'는 탈의 흥미로운 지점이 셰익스피어의 고전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다. 원작 '오셀로'는 베니스의 흑인 장군 오셀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셀로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하지만 둘은 끝내 결혼한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셀로를 시기하는 이아고가 간교한 꾀와 세 치 혀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이 말에 홀딱 넘어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끝내 죽이고 만다. 극 말미 모든 게 이아고의 계략임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죄책감에 목숨을 끊는다. 처참한 비극이다.

오셀로와 이아고
▲ 오셀로와 이아고


탈춤 '오셀로와 이아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굳건한 사랑이 숨결처럼 가벼운 이아고의 말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탈춤의 과장으로 풀어낸다. 각 인물의 행위를 탈춤의 춤사위에서 발견해 적용해보고 새로운 춤사위를 창작해냈다. 세 명의 개성 강한 인물들의 탈춤이 무대를 구성하는 공간, 빛, 소리 등과 조화를 이루어 사위와 정서를 극대화한다.

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오셀로는 진실은 보지 못하고 거짓에 속아 파멸하는 인물이다. 정숙한 데스데모나의 진실한 모습은 보지 못하고 이아고가 속삭이는 거짓만 본다. 탈의 감정 없이 웃는 얼굴에 속아 그 내면의 악의는 통찰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이아고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문제적인 캐릭터로 일컬어지곤 한다. 이아고는 어느 악한보다 더 철저하고 치밀하고 잔인하게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킨다. 이아고는 의사처럼 오셀로의 취약점을 찾아내 약 대신 치명적인 독약을 처방한다. 그러고는 그 독약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냉정하게 지켜본다. 이아고가 오셀로를 질투할 이유는 있다고 해도 그가 이토록 철저하게, 또한 냉정하게 오셀로를 파멸시키는 의도는 극 중 설명되지 않고 있다.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듯 극의 결말 부분에서 오셀로가 묻는다.

"바라건대, 저 악마 같은 놈에게 물어봐 주시겠소. 왜 저자가 이처럼 내 영혼과 육신을 덫에 몰아넣었는지?"

"이제부터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아고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영문학자들은 물론 심리학자들에게도 이아고는 흥미로운 연구대상이었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있단다. 두 독일어 단어 'Schaden'(손실, 고통)과 'Freude'(환희, 기쁨)의 합성어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어로는 '쌤통' '고소하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는 이토록 비뚤어진 감정이 똬리 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깊이 봉인해 둔 감정을 이아고는 다만 풀어놓은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진정 탈을 쓴 건 관객 아닐까?

허창열, 이주원, 박인선 세 명의 탈꾼들은 각각 고성오광대,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령탈춤의 이수자로 이번 공연에서 안무와 연기를 맡아 공연을 이끌어 간다. 탈춤은 오래전 민중의 삶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한국 탈춤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동시대의 예술로 발전시키고자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다.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2017년 초 공모와 5월 쇼케이스를 거쳐 무대에 올랐다. 쇼케이스 당시 탈춤과 고전의 만남이라는 형식과 쇼케이스의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4일까지 공연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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