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흥행을 넘어선 감동 실화 '히든 피겨스'

최초입력 2017.03.08 15:02:00
최종수정 2017.03.08 18:58:58



[비욘드 무비-151] 불과 50여 년 전 일이다. 미국의 수많은 흑인은 오직 피부색 때문에 '법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직장도 학교도 대중교통도 화장실도, 심지어 공용 커피포트도 '흑인 전용'이 아니면 쓸 수 없었다. 적잖은 백인은 대놓고 흑인과 같은 시설을 사용하면 미지의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세계 최강 경제 대국인 미국의 현실이었다. 지금으로서 상상조차 어려운, 야만의 시대였다.

 그러나 어두운 시절에도 별들은 빛났다. 그 밝기가 다소 가려졌을 뿐. 오랜 기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찬란한 존재들에게 아낌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영화가 등장했다. 비참한 현실을 다루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은 유쾌하고 희망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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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히든 피겨스'(감독 시어도어 멜피)는 실존 인물 3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이중 차별을 뚫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전설로 남은 위풍당당한 여걸들이다. 주인공은 미국과 소련 간 우주개발 경쟁의 전환점을 제공한 NASA의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1918년 8월 26일~), NASA 최초의 여성 그룹책임자(supervisor) 도로시 본(1910년 9월 20일~2008년 11월10일),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1921년 4월 9일~2005년 2월11일). 영화는 셋의 실화를 고루 다루면서도 타라지 P 헨슨이 연기하는 캐서린 존슨 캐릭터에 가장 공을 들였다. NASA 랭글리 연구센터에서 미국 최초 우주 궤도 프로젝트를 위한 수학공식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존슨은 NASA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공로로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자유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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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합리한 차별을 이겨내고 '최초'의 역사를 이뤄낸, 감동적이지만 자칫 천편일률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스토리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실존 인물의 역할을 맡은 세 배우(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저넬 모네이)의 설득력 있는 호연과 음악·패션, 소소하고도 재미있는 일상적 장면들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은 탁월한 연출이다. 세계적인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와 영화음악계의 전설 한스 치머가 함께 영화음악을 맡았다.

 생존해 있는 캐서린 존슨과 NASA 수석역사학자 빌 베리 박사의 생생한 자문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한껏 살린다. 영화 속에서 존슨이 종이와 연필만으로 방정식을 계산해 최초의 지구궤도 비행우주인 존 글렌의 무사 귀환을 돕는 장면이나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모두 그녀가 제작진에게 들려준 실제 경험이 스크린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존슨 역의 헨슨은 "캐서린 존슨 같은 여성을 연기하는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영광으로 느껴졌다. 그녀 앞에는 온갖 장애물이 쌓여 있었지만, 무엇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헨슨은 실제 존슨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 자문위원인 모어하우스칼리지의 수학 교수 루디 혼과 따로 공부를 진행하며 '인간 컴퓨터'로 불렸던 천재 수학자의 모습을 멋지게 재현했다.

 '히든 피겨스'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여우조연상·각색상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개봉 이래 1억5000만달러가량의 북미 흥행 수익을 이어가며 '라라랜드'의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오신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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