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맞선 로비스트의 분투 '미스 슬로운'이 그린 세상

최초입력 2017.04.12 15:02:00
최종수정 2017.04.12 14:44:21



[비욘드 무비-156]
미스 슬로운
냉혹하고 교활하며, 정의로운 그녀
권력 맞선 전설적 로비스트의 분투 다룬 '미스 슬로운'


거대 권력에 맞서 정의를 좇는 인물의 싸움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인물이 선인보다 악인에 가까우면 다가오는 감동이 배가 된다는 사실. 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안티 히어로의 모습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존 매든 감독의 '미스 슬로운'은 그런 인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미국 워싱턴 DC의 기세등등한 권력자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여자가 있다. 승률 100%를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채스테인).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냉혹함과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 상대의 수를 몇 단계씩 앞서 예측하는 기막힌 통찰력과 화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녀는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인물. 가정을 포기하고 매일 같이 약물에 의존해 일터로 나가지만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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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어느 날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린다. 논란의 총기 규제 법안으로 미국 전역이 떠들썩한 가운데, 슬로운은 미국 정계 최고 권력자와 대기업들이 한패가 된 거대 권력에 맞서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소규모 회사로 이직을 선언한다. 기발하고 교활한 전략으로 야금야금 승리를 얻어 가던 그녀는 결국 오직 자신을 겨냥한 반대파의 무차별 공격에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미스 슬로운'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각본과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낸 존 매든 감독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영화다.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란 해당 연도에 발표되었지만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호평받은 작품 리스트를 말한다. 여기에 속해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로 '위플래쉬' '스포트라이트' 등이 있다. 매든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대해 "캐릭터는 영리하고, 모든 것이 체계적인 전략을 통해 세워진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매력은 절대 생각한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영화는 총기 규제에 대한 '히튼-해리스'라는 가상의 법안을 놓고 벌어지는 슬로운과 거대 권력 간의 로비전쟁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담아냈다. 법의 테두리 가장 끝에서 매일 치열하게 싸우는 로비스트들과 그들이 속해 있는 정치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편, 시시각각 위협을 가해오는 거대하고 막강한 권력에 맞서 상대의 허를 찌르며 영리한 로비전쟁을 펼치는 슬로운의 활약은 통쾌한 재미를 제공한다.

시나리오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각본을 맡은 영국 변호사 출신의 작가 조너선 페레라는 영화 각본 집필 경험이 전무한 인물. 우연히 감옥에 다녀온 한 로비스트의 인터뷰를 접한 그는 강렬한 영감을 받아 홀로 '미스 슬로운'의 각본을 완성했다. 변호사 출신의 작가가 단독으로 처음 쓴 각본이, 그것도 단번에 발탁되어 영화로 만들어지는 일은 할리우드 역사상 극히 드문 사례다.

보다 사실적인 로비스트의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 페레라와 매든 감독은 글로버파크그룹이라는 로비회사에 도움을 청했다고 전해진다. 자문을 맡은 아담 블릭스테인은 이 영화를 위해 자문 전담 팀을 구성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많은 영화가 정치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실은 아주 피상적인 일면만을 다루는 반면, 탄탄한 사실을 배경으로 진짜 정치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제대로 된 이야기다"고 말하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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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운 역할을 맡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은 직접 워싱턴 DC에 가서 열 명 넘는 현역 로비스트를 만나 그들의 개인적인 삶부터 업무 일상까지 꼼꼼히 들으며 변신을 위한 준비를 했다. 전문용어로 가득한 까다로운 속사포 대사는 물론 강렬한 내면 연기까지 섬세하게 소화한 채스테인의 연기는 영화의 몰입을 십분 돕는다.

[오신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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