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쉐리단 감독의 '로즈' 시대가 버린 그녀 불러내다

최초입력 2017.04.19 15:01:00
최종수정 2017.04.19 14:46:48



[비욘드 무비-157]
시대가 버린 그녀, 로즈의 찬란한 삶
짐 쉐리단 감독의 강렬한 드라마 '로즈'
칸 여우주연상 루니 마라 주연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50년가량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한 여자가 있다. 긴 세월을 견뎌 내며 공허한 눈빛의 백발 노인이 된 로즈(버네사 레드그레이브). 그녀를 담당하게 된 정신과 의사 그린 박사(에릭 바나)는 로즈와 대화를 이어가며 그녀의 삶 속에 감춰져 있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수십 년간 로즈가 써내려온 글들을 발견한 그는 그녀가 누명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녀의 회상을 통해 관객은 50년 전 찬란하고 비통했던 로즈의 젊은 나날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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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즈'는 녹록지 않았던 시대 스스로 선택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여성 로즈의 삶을 그려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 등 명작들로 잘 알려진 짐 셰리든 감독의 신작이다. 금기시된 여성 간의 사랑을 섬세하고 애틋하게 담은 영화 '캐롤'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루니 메라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됐다. 맨부커상 최종 후보 작품이자 2009년 아이리시어워즈에서 '올해의 소설'로 뽑힌 아일랜드의 유명 작가 서배스천 배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루니 메라는 영화 속 젊은 시절의 로즈를 연기한다. 지극히 보수적이며 종교적, 가부장적 질서가 단단한 1940년대 아일랜드의 고향 마을에서 진취적이고 매사에 거리낌 없는 도시 여성 로즈는 눈부신 매력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지만, 동시에 고향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린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파일럿 마이클(잭 레이너)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잠시나마 희열을 맛보지만 전쟁과 공동체의 폭력은 연인을 갈라놓는다. 곤경에 처한 로즈는 결국 사랑을 위해 삶을 내던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셰리든 감독은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자유롭고 매혹적인 여성 로즈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그녀를 둘러싼 세속적인 인간군상들 간의 관계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로즈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활용된다. 영화의 음악을 총괄한 작곡가 브라이언 번은 정신병원에서 로즈가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젊은 시절 로즈와 마이클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는 테마곡을 탄생시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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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속에서 펼쳐지는 아일랜드의 드넓은 자연과 해변 풍경 역시 인상적이다. 아일랜드 킬케니주의 작은 도시 아니시티그를 배경으로 로즈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그려진다. 셰리든 감독은 "관객들이 정신병원 장면을 보면서 지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더 큰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한 비주얼 감각을 가진 적임자가 필요했다. 미하일 크리치만 촬영 감독은 기대했던 이상이었다"고 전했다.

표정만으로도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전달하는 루니 메라의 호연도 볼거리다.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2)로 8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그녀는 2016년 '캐롤'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낸 바 있다. 관록의 여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연기한 백발의 로즈와 진중한 눈빛의 에릭 바나가 표현한 그린 박사의 모습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오신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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