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느냐 용서하느냐, 외국어영화상 '세일즈맨'

최초입력 2017.05.17 15:09:00
최종수정 2017.05.17 18:19:23



[비욘드 무비-161]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준비 중인 연극인 부부 에마드와 라나. 어느 날 집에 있던 아내는 남편과 통화를 마친 후 샤워를 하려다 들려온 현관 벨소리에 남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준다. 얼마 후 돌아온 남편은 집안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발견한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 라나. 느닷없이 닥친 비극적 사건은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에마드는 역시 약하고 불행한 존재로 살아가는 범인에 대해 복수심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며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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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석권하고 이란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신흥 거장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 '세일즈맨'이 국내에서 개봉했다. 파르하디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등의 전작들로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그려내며 세계의 관심을 독차지한 인물.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구상했다는 그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 인간의 커다란 딜레마를 담길 원했다"고 전한다. 평범했던 연극인 부부가 비극적 사건을 겪고 죄책감, 복수심, 용서의 욕망 등 가장 인간적인 감정의 딜레마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날카롭고 영민하게 그려낸다. '세일즈맨'은 제89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파르하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무슬림 정책을 공개적으로 강력히 비판하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한 것으로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지난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하루 전날 영국 런던 도심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이 영화의 무료 상영회를 열고 "종교, 국적,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세계의 시민이다. 미국의 이민자 여행 금지에 맞서기 위해 취한 대처가 강력한 운동으로 발전돼 기쁘다. 이 운동 안에는 파시즘에 저항하며 극단주의에 맞서고 강압적인 정치 권력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파르하디 감독이 사전에 진행한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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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정의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렇다. 모든 것은 관객 자신만의 특별한 주관이나 사고방식에 달렸다. 만약 이 영화를 사회적 비평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 요소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도덕적 이야기로 또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에서 '세일즈맨'의 아들이 엄마에게 아빠의 비밀을 밝히려는 것처럼, 영화에서 남자 또한 누군가의 명예를 짓밟으려 한다. 또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는 가족 안에서 인간적 관계의 복합성과 연관 있다는 것이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항상 극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젊었을 때 연극과 관련된 일을 했고 이는 내게 여전히 큰 의미로 남아 있다. 학생 때 많은 면에서 나를 흥분시켰던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리게 됐다. 연극과 시나리오의 주제가 마치 거울처럼 매우 비슷했다. 둘 다 굴욕과 경멸이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그래서 극장을 배경으로 연극을 하는 등장인물에 관한 시나리오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특정 사회 계급의 파멸을 초래했던 시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연극에 담겨 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망가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과도 강력하게 맞물린다. 현재 이란은 숨 가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적응 아니면 죽음이다. 연극의 핵심적·사회적 비판이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정말 미묘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부부의 삶은 연극과 평행을 이룬다.

-당신의 영화들은 평범한 두 가족의 충돌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이고, 끊임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인간이 맺는 가장 오래된 관계는 가족이며, 가족 관계에 관한 경험의 총합은 다른 어떤 경험보다 크다. 그러나 새로운 가족이 생길 때마다 이 경험치는 효력이 없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가족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주행 거리계가 다시 0으로 설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에게 가족은 몇 번이나 헤엄쳐도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바다와도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유사점이 많지만 부부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다. 비슷한 두 사람이 나란히 놓이면 그 조합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발전한다.

-당신의 영화들에서 등장인물은 법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올바른 일을 하려고 한다. 사회 시스템이 신뢰할 수 없거나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필요가 있기 때문인가?

▷당신이 열거한 모든 것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법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분노하고 화가 나 있을 때 복수를 할 때까지는 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데, 법의 손에 정의를 맡기게 되면 복수는 아주 오래 걸린다. 법을 신뢰하지 않거나 사적인 문제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이 비로소 만족을 느낄 때는 스스로 정의를 행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날 때이다.

-당신의 작품들은 모두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그렇다.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공감을 느낄 만한 지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는 갈등의 원인이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과 선의 갈등이나 불일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영화가 복잡하게 보이는 이유다. 선과 선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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