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여행스케치] 뼈아프게 배우는 ‘군산의 일제 유산’

최초입력 2017.05.11 17:25:38
최종수정 2017.05.11 17:26:25
근대의 문화와 생활상이 잘 보존된 군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일제강점기 마이너스 유산이 남아있다. 마이너스 유산이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과거의 수치스럽고 아픈 역사’를 말한다. 군산이 겪은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 근대문화를 지키고 있는 군산의 근대문화역사지구를 걸으며 되새겨보자.

▶ 근대역사박물관, 아픈 역사의 생채기
군산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 : ⓒ MK스타일
걸어서 충분히 다 볼 수 있는 군산의 근대문화역사지구는 일제강점기 시절 근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한국 속 일본’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 명칭이 오롯하게 수탈의 흔적까지 보여주지는 못하기에 일본식 건축물들을 겉핥기식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는 근대역사박물관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건축학적 역사 가치가 높은 구 군산세관 : ⓒ MK스타일
가혹한 수탈의 현장이었던 군산 미곡 취인소 : ⓒ MK스타일
근대역사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왼편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08년 준공된 (구)군산세관인데, 화강암 기초 위에 붉은 벽돌 조적조 건물로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하다. 서울역사(驛舍),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현재 남아있는 국내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인 (구)군산세관은 일제 수탈의 상징. 군산이 일제강점기 수탈과 그로 인한 개항기 근대 도시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전국 최고 곡창지대인 호남평야가 있고, 서해안 포구이면서 동시에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모이는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 군산은 예부터 지형적으로도 중요 지역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곡(稅穀)을 보관하는 군산창과 이를 보호하는 군산진이 설치되는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군산항은 1899년 5월 1일 개항하며 일본 조계지가 형성되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게 되었고, 쌀이며 목화 등의 일본으로의 반출이 이뤄지게 되었다.

개항 후 일본 정부의 정책 강화로 일본인 농업경영자와 미곡상 등의 이주가 늘어나는데, 특히 농장 지주의 가족단위 이주가 많았고 이를 계기로 미곡 수탈량도 크게 늘어 일본인의 부가 축적되었다. 뿐만 아니라 10대 중후반의 소녀들을 동원한 가혹한 노동으로 목화 반출 또한 열성이었다. 면제품 원료인 목화를 반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면직물이나 무명실 등을 다시 수입하여 판매하는 방식으로도 부를 쌓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히로쓰 가옥)의 주인 히로쓰 게이샤브로였다.

▶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 촬영지로 인기
신흥동 일본인 가옥 : ⓒ MK스타일
정문에 새겨진 소화라는 일본식 연도 표기는 해방 후 지웠다. : ⓒ MK스타일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 2층 주택으로 일본인의 생활을 알 수 있는데 가옥의 지붕, 외벽, 내부, 우물, 일본식 정원이 잘 유지되어 있다. 인력거가 드나드는 문까지 따로 갖추고 온돌방과 다다미방을 같이 설계한 점이 독특하다. 보존 상태가 좋아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 다수의 영화 촬영지로도 쓰였다.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높아 일본인들 역시 관광지로 찾으니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다.

동국사 대웅전 : ⓒ MK스타일
평화의 청동 소녀상과 참사문 비 : ⓒ MK스타일


일본인 조계지가 형성되고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남으로써 일본의 종교시설 역시 설립되었다. 일본강점기 일본식 사찰 7곳 중 유일하게 남은 사찰이 근대문화역사지구에 있는 동국사다. 1909년 6월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찌다가 포교소로 개창하여 1913년 현재의 자리에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법당인 대웅전과 승려의 거처인 요사는 복도로 연결된 에도시대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외부 자재는 가볍고 습기에 강한 일본산 삼나무(스기목)를 사용했고 대들보만 백두산 금강송을 사용했다. 1935년 개축을 거쳐 1945년 해방 후 정부에 이관을 거쳐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 선운사에 소속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55년 김남곡 스님에 의해서 동국사로 개명되었다. 일본식 사찰로 유명한 동국사지만 우리가 꼭 보고 가야 하는 것은 범종각 옆쪽에 있는 비문이다. 2013년 이치노헤 쇼고 스님 주도로 건립된 이 비문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 의지가 담긴 ‘참사문’이다. 그 앞으로 2015년에 세운 위안부 기림 청동평화 소녀상도 보인다.

마음 아픈 역사와 일본이 보내온 당연하고도 용기 있는 반성의 행동. 군산에 남은 일본의 조각들이 아프고도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군산의 ‘아픈 여행’은 역사를 반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앞을 보고 걷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깨달음을 준다.

[MK스타일] 글·사진/ 김경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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