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남도 기행] ‘천사의 섬’ 주민들의 어머니 ‘문준경 순교기념관’

최초입력 2017.05.18 11:22:11
전남 신안군은 우리나라 지자체 중 섬이 가장 많은 군으로, 섬 갯수가 무려 1004개라는 의미에서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섬으로 이루어져 조선시대까지도 유배지로 이용되었던 고립과 단절의 불편한 지역이었다.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섬에서는 주로 토속신앙이 깊게 뿌리내려 있어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다.

이런 곳에서 문준경 전도사(文俊卿 1891~1950)는 여성의 몸으로 신안군 일대의 여러 섬을 나룻배를 타고 갯벌을 빠져 다니면서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6.25동란 중인1950년 10월 5일 증동리 앞 백사장(솔무등:터진목)에서 인민군들에 의해 순교했다.

문 전도사는 한국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신앙적 모범의 삶을 몸소 실천했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예배소가 되었고 교회가 세워져, 증도에는 현재 11개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증도는 90% 이상의 주민이 기독교인이며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그야말로 신앙 중심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신안군 전체로 퍼져나가 14개 면 1004개 섬으로 구성된 섬 일대에는 약 1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신안군 복음화율 역시 35% 이상으로 국내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제일 높은 곳이기도 하다.

생전의 문 전도사는 장티푸스로 신음하는 환자의 집에 들어가 손수 돌보고 장례를 치르며 의사와 산파로서 사람들을 치료하였고, 잔칫집 음식을 거둬 가난한 집에 나눠주는 등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참 목자였고 섬사람들의 어머니였다. 그런가 하면 찬송을 잘 부르는 놀이꾼이었고 멋들어진 노래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어서 성경을 전하는 탁월한 복음전도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성결교단이 강제 해산됐고, 이 과정에서 문준경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수차례 고문을 당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는 인민군들에게 체포되어 60세의 나이에 순교했다.

1964년 증동리 교인들이 세운 순교 비문에는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은 집에 산파, 문맹퇴치 미신타파의 선봉자,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적혀 있다.

증도면소재지를 방문하면 증도초등학교 옆에 순교기념관이 있고, 기념관 앞 순교지에는 증동리교회에서 세웠던 순교비와 순교기념사업회에서 세운 비가 있다. 또한 증동리교회 앞에는 1951년 호남지방회에서 세운 순교비가 있고, 최초의 교회터에 재건한 옛 교회가 보존되어 있다.

순교기념관 뒤편 상정봉에 오르면 기도하던 장소와 한반도 모습의 사구 해송 숲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MK 스타일] 글·사진/ 이강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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