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⑧ - 스웨덴] 세월과 함께 ‘잃어버린 왕국’

최초입력 2017.07.05 15:29:55
스웨덴 도자기 산업의 양대 메카는 뢰르스트란드와 구스타브베리였다. 이 두 회사는 현재도 사업을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스웨덴 회사는 아니다. 두 회사 모두 다국적 기업에게 팔렸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세 번째로 도자기 공장을 설립했을 만큼 도자기 산업이 발달했던 스웨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구스타브베리의 굴욕

구스타브베리는 회사 이름에 앞서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스톡홀름 외곽의 아름다운 항구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구스타브베리 공장과 박물관, 아웃렛이 함께 모여 있고, 이탈라와 뢰르스트란드 아웃렛도 바로 옆에 있다.

구스타브베리의 역사는 1640년 경 마리아 소피아 드 라 가르디에라는 여성이 남편 구스타브 가브리엘손 옥센스티에르나를 기리기 위해 지은 벽돌공장에서 출발했다. 이 벽돌공장은 180여 년을 이어오다 1821년 요한 헤르만 외만이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는 1825년 국가로부터 도자기를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 구스타브베리를 도자기 공장으로 변모시켰다. 1827년 첫 석기 제품을 내놓았지만 품질은 매우 낮았다.

이어 1829년부터 영국 방식의 도자기 제조법을 도입해 접시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점토는 독일에서 수입해 사용했으므로 품질은 그리 만족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1839년 영국에서 ‘본차이나’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원료를 수입하고, 제조 공정도 영국식으로 바뀌면서 품질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당시는 영국 ‘대번포트’ 도자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63년에는 스웨덴 국왕 카를 15세가 구스타브베리 공장을 방문해 왕실에서 사용할 디너웨어 세트 제작을 명령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구스타브베리는 본차이나 기술로 디너웨어 ‘파인 본차이나’ 디너웨어 세트를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북유럽에서 본차이나 제품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1869년 구스타브베리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칸디나비아 예술과 산업박람회’에 구피겨린과 본차이나 디너웨어 세트를 출품하면서 마침내 유럽 시장에 알려진다.

1875년에는 주식회사로 바뀌면서 빌헬름 오델베리가 최대 주주가 되고, 이후 회사는 안정적인 경영을 바탕으로 근대적인 틀을 잡기 시작한다. 또한 1925년 파리 박람회에서는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1937년 오델베리 가문의 경영이 끝날 때까지 성장을 지속했다.

구스타브베리의 ‘릴예블로’세트. 코게의 작품으로 오븐에 넣어도 변형되거나 깨지지 않아 가정주부들로부터 사랑받는 실용적인 도자기였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1947년 구스타브베리는 세면대와 욕조, 변기 등을 생산하는 시설을 새로 만들고 욕실용품 쪽으로 시장을 확장시킨다. 한편 1974년에는 설립 150주년을 앞두고 박물관을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회사 이름을 구스타브베리 주식회사로 바꾸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구스타브베리의 베르소 시리즈. 구스타브베리의 대표 디자이너 린드베리의 작품이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구스타브베리에는 역사상 중요한 인물 두 명이 있다. 빌헬름 코게와 스티그 린드베리이다. 빌헬름 코게는 1917년부터 1960년까지 구스타브베리의 생산 총감독을 지냈다. 그는 ‘릴예블루’, ‘퓌로’, ‘아르겐타’, ‘파르스타’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구스타브베리의 명성을 일궈낸다.

한편 스티그 린드베리는 구스타브베리의 아트 디렉터로 두 번이나 일했으며, 1948년 밀라노 비엔날레에서 금메달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73년 파엔차 비엔날레 금메달까지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베르소’ ‘스펙트라뢰브’ ‘퓐타’ ‘폴’ ‘프루누스’ ‘살릭스’ ‘스피사 립’ ‘베클라’ ‘테르마’ ‘페스통’ ‘푼고’ ‘카르네발’ ‘렙틸’ ‘아담과 이브’ 등 다양한 라인이 있다. 코게가 기본에 충실하고 전통에 가깝다면 린드베리는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기교를 마음껏 부리고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경영권이 세계적인 선박용 엔진 생산업체인 배르칠래에게 넘어갔고 이듬해에는 하크만 그룹에게 다시 이전되었다. 이어 1990년에는 뢰르스트란드와 합병되었고, 1994년에는 다시 덴마크 스핑크스 그룹으로 넘어갔다.

다시 2000년에는 독일의 ‘빌레로&보흐’그룹이 뢰스르스트란드에서 구스타브베리만 따로 떼어내 지금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인수합병 과정을 겪으며 구스타브베리는 현재 욕실용품만 생산하는 회사가 되었다. 구스타브베리의 유명 도자기 제품들은 이제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뢰르스트란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스틴디아’ 세트. 스웨덴 동인도 회사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서 1932년에 만든 라인이다. 이 제품의 문양에 영감을 준 무늬는 1745년 침몰한 예테보리 동인도회사 소유의 배에 실려 있던 중국 화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잃어버린 땅 ‘뢰르스트란드’

스웨덴에 도자기 생산공장이 처음 생긴 것은 1726년이다. 뢰르스트란드이다.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등이 독일 마이슨 이후 50년 지난 이후에나 도자기 생산공장을 만든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일찌감치 시작한 것이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유일한 도자기공장이었으므로 상표에 스톡홀름으로만 표기했다.

하지만 1758년 스웨덴에 두 번째 공장인 마리에베리가 설립되자 상표에 ‘뢰르스트란드’ 마크를 찍기 시작했다. 1788년 마리에베리 도자기공장은 뢰르스트란드에 흡수된다. 1790년대까지 뢰르스트란드의 도자기는 품질이 그리 좋지 않았다.

뢰르스트란드의 대표 디자이너 마리안네 베스트만의 피크닉 시리즈. 그녀의 작품들은 뢰르스트란드의 수익률을 450%나 올려놓았다. 당시 종업원 수만 1,500명에 달했다. 이는 공장이 있던 리드셰핑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1824년 뢰르스트란드는 영국의 앞선 도자 기술을 배우기 위해 견습팀을 파견하는 한편, 새로운 장식 기법을 도입했다. 또한 1855년에는 ‘카켈룽’이라는 타일로 만든 벽난로 사업에 뛰어 들며 공장 규모를 확장한다. 1857년 뢰르스트란드는 본차이나 경질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후 수년 뒤에는 장석을 활용하여 동양의 자기와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874년에는 러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핀란드 헬싱키 외곽에 ‘아라비아’ 공장을 만들었고, 1884년이 되면 왕관이 들어간 현재의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어 이듬해부터 매력적인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영업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아르누보 디자이너인 알프 발란데르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아르누보 작품들을 내놓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한편 1911년에는 예테보리에 있는 도자기 공장을 사들이고, 1916년 ‘뢰르스트란드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아티스트 루이세 아델보리를 영입한다. 그녀는 40년 동안 뢰르스트란드에 일하며 많은 작품을 내놓았는데, 그중에서도 ‘밀 이삭 패턴’은 오늘날까지 생산되고 있다.

1932년이 되면 프레데릭 베셰가 새 경영자로 와서 뢰르스트란드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는데, 그는 뛰어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해 군나르 뉠룬드를 비롯한 유명 아티스트를 대거 영입했다. 그리고 ‘오스틴디아’ ‘블루 엘드’ ‘코카블로’ ‘나의 친구’ ‘피크닉’ ‘프리스코’ ‘나의 정원’ 등의 명작 시리즈를 내놓으며 뢰르스트란드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1963년 프레데릭 베셰가 경영자 위치에서 물러난 시기를 즈음해 위기와 굴욕이 시작한다.

1964년 웁살라 에케비 그룹이 뢰르스트란드를 매입하고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려 했지만 1970년 200명, 이듬해에는 260명이 실직하며 한때 1500명이 넘었던 뢰르스트란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급기야 1975년 핀란드의 도자기 회사 아라비아가 웁살라 에케뷔를 사들인다. 자회사였던 아라비아가 거꾸로 자신의 모회사를 흡수한 것이다. 이어 1989년 하크만 그룹이 다시 사들이면서 뢰르스트란드와 아라비아, 구스타브베리가 모두 한 회사에 들어왔다. 이때 회사명이 ‘하크만 뢰르스트란드’였다.

하지만 1994년에는 구스타브베리가 떨어져 나갔고, 2003년에는 이탈라가 뢰르스트란드를 흡수했으며, 2005년에는 결국 리드셰핑 공장이 문을 닫는다. 공장 시설은 헝가리와 스리랑카로 옮겨졌다. 또한 2007년에는 피스카스가 이탈라와 뢰르스트란드를 사들였다.

현재 뢰르스트란드 도자기의 공식 매장은 없고 오직 이탈라에서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뢰르스트란드는 ‘로스트 랜드’인 셈이다.

[MK스타일 주동준 기자 / 도움말 : 조용준 (‘유럽도자기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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