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⑨ - 핀란드] 북유럽 통일한 ‘피스카스’의 반전

최초입력 2017.07.06 14:13:20
영화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아라비아 핀란드의 ‘24h 아베크’ 플레이트는 19세기 일본 에도시대의 한 접시와 기막히게 닮아 있다. 바로 이마리(伊萬里)에서 제작한 ‘그물무늬 접시’다.

아라비아 핀란드의 ‘24h 아베크’와 이마리의 ‘그물무늬 접시’는 엄밀하게 보면 문양이 약간 다르다. ‘24h 아베크’는 세로의 작은 막대들이 동심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그물무늬 접시’는 서로 얽힌 그물 무늬가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개가 꼭 닮은 친형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성이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19세기는 이마리 자기가 대대적으로 유럽 시장에 수출되던 때였다.

아라비아 핀란드의 ‘24h 아베크’가 만든 빗살무늬가 이마리 자기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일까?

아라비아 ‘24h 아베크’(왼쪽)와 일본 이마리의 19세기 빗살무늬 접시.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아라비아 핀란드'의 역사

핀란드에 도자산업이라고 할 만한 시설이 들어선 것은 1873년이었다. 스웨덴의 뢰르스트란드가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핀란드에 도자기 공장을 짓기로 했던 것이다. 이 공장이 바로 핀란드의 대표 도자기회사 아라비아 핀란드(이하 ‘아라비아’)이다. 이듬해인 187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해, 1875년이 되면 아라비아 직원은 이미 110명을 넘어섰고 공장설립 2년이 지나지 않아 연간 생산량은 핀란드 전체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한다.

1882년에는 헬싱키를 지칭하는 핀란드 말인 ‘헬싱포르스’ 디너웨어가 등장한다. 이는 핀란드 지명이 들어간 최초의 장식 접시였다. 1890년대 아라비아의 생산품 3분의 2가 러시아로 수출된 반면, 국내시장에서는 독일 제품과 치열한 경쟁 중이었다. 1893년 핀란드어로 된 카탈로그가 나왔고 1896년에는 스톡만 백화점에도 입점하게 된다.

1900년 아라비아는 파리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기분 좋게 출발한다. 1903년 왕실문장이 도자기 장식에 도입되었고, 1906년에는 아르데코 양식의 장식 디너웨어인 ‘카펠라’,‘에스터’, ‘히두르’ 등이 등장한다. 1차 세계대전은 아라비아의 지배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1916년 뢰르스트란드는 핀란드 사업가에게 아라비아의 지분을 전부 팔면서 이제 핀란드 자본으로 움직이는 핀란드 회사가 된 것이다.

이에 맞춰 경영 감독도 변경되는데, 1881년 기술 감독으로 파견되었던 구스타브 헤를리츠의 아들인 카를 헤를리츠로 변경이 된다. 신임 감독은 대대적인 구조 개혁에 착수해 5년 만에 공장을 완전히 근대화하기에 이른다.

1941년 세계대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는 공장을 확장한다. 새로 지은 공장과 건물은 1947년에 완공되었고 현재까지도 아라비아의 본사로 사용 중이다. 새 공장이 완공된 1947년에는 선박 디젤엔진 및 해양설비 업체인 배르칠래에 경영권이 넘어가지만, 새로 완성된 설비를 통해 1950년대 아라비아는 생산 역량이 급증한다.

카이 프란크의 대표작 ‘킬타’라인. 카이 프란크는 모든 불필요한 형태와 장식을 배제하는 디자인을 추구하여 ‘핀란드 다지인의 양심’이라 불린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1953년 마침내 핀란드를 대표할 수 있는 디자이너 카이 프란크의 ‘킬타’ 라인이 출시된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밋밋한 디자인으로 인해 ‘성실하지만 융통성이 모자라고 멋대가리 없는 남편’처럼 보이지만, 오븐에 바로 넣어 요리를 해도 좋은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주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그는 밀라노 비엔날레 그랑프리를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런 그의 실력과 업적을 인정해 1983년에는 영국 런던 왕립예술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세라믹의 황태자’ 비르예르 카이피아넨, 울라 프로코페, 라이야 우오시키넨, 에스테리 토물라, 헤이니 리타후타 등이 참신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아라비아 도자기의 명성을 이어나가게 된다.

라이야 우오시키넨의 에밀리아 라인 꽃병. 에밀리아 라인은 1949년 생산을 시작하여 1964년까지 15년 동안 지속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오일 파동과 값싼 수입품의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아라비아는 스웨덴의 뢰르스트란드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한편, 1984년 배르칠래는 뢰르스트란드를 사들인다. 러시아 진출을 위해 핀란드에 아라비아를 세운 이후 뢰르스트란드가 반대로 자회사에게 흡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989년 아라비아는 하크만 그룹에 넘어가고, 2003년 하크만 그룹은 다시 이탈라에게 넘어가고, 2007년이 되면 이탈라 그룹 역시 피스카스에게 또 다시 넘어간다.

창업한 지 365년도 넘은 피스카스는 원래 지역 이름으로, 헬싱키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도시이다. 1649년 네덜란드인 페터르 토르보스테가 이곳에 제련 공장을 세웠는데, 주변국들의 잦은 전쟁 덕에 제련 산업은 급성장했고, 1757년에는 주변에서 구리광산까지 발견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지금의 피스카스를 있게 한 것은 작은 가위였다. 1967년 생산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위는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7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기업이 되었다. 여전히 이 그룹의 주력 상품은 손도끼와 야전삽, 쟁기 등이다. 특히 이 회사의 도끼와 삽은 미군이 유일하게 수입해서 사용할 만큼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에스테리 토물라의 ‘파스토랄리’라인 쟁반. 에스테리 토물라는 아라비아에 무려 150종이 넘는 디자인 라인을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라인으로는 위의 ‘파스토랄리’ 라인과 ‘보타니카’ 라인, 그리고 ‘크로쿠스’ 라인이 있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현재 피스카스는 로열 코펜하겐(덴마크), 뢰르스트란드(스웨덴), 아라비아와 이탈라(핀란드)를 모두 소유하며 북유럽 도자기 시장을 통일했다. 사람 살기 어려운 물 많은 늪지의 나라, 겨울에는 4시간 정도밖에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백야가 이어지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항상 이리저리 휩쓸리던 나라의 위대한 반전이다.

[MK스타일 주동준 기자 / 도움말 : 조용준 (‘유럽도자기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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