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⑪ - 스페인] 지각 출발 ‘야드로’가 완성한 자존심

최초입력 2017.07.11 17:54:50
스페인의 도자기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711년을 주목해야 한다. 이 해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를 침공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는 500년을 넘게 이어간다. 이 시기에는 이슬람 문화 역시 전파가 된다.

이슬람 지배 시기에 뿌리내린 다양한 문화는 기독교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 이후로도 배척되지 않는다.
이곳을 다시 회복한 기독교 왕국들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재들을 파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기독교 문화와 융화시킨다.

그 예가 유명한 알람브라 궁전이다. 그라나라에 있던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식으로 건축된 건물이지만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스페인 특유의 기독교 문화와 융화되어 독특한 멋을 내며 발전했다. 스페인에는 이런 건물들이 제법 많다.

타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슬람풍의 세비야 알카사르 궁전. 타일은 특성상 시원한 느낌이 있어 더운 곳이 어울리지만 러시아나 동유럽에서도 왕궁을 꾸밀 때 타일을 많이 사용했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스페인은 자기라고 불릴 수 있는 고품질의 그릇을 생산한 적이 없다. 그나마 전통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러스터웨이라는 도기다. 이것 역시 이슬람 문명의 산물이다. 하지만 품질은 경질자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은 도기 수준이다.

유럽에는 경질자기가 일반화되었지만 스페인에서 고품질의 경질자기를 생산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흙 때문이다. 13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낼 수 있는 흙이 있어야 자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스페인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고품질의 도자기 문화보다는 타일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타일 문화가 발달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유럽이 도자기 생산에 박차를 가할 때 스페인은 제국 붕괴에 따른 내부 혼란으로 그럴 수가 없었던 정치적 이유도 있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의 도자기는 대부분 이탈리아의 마욜리카나 프랑스의 파이앙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연질자기들이 많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연질자기 개발에 영향을 미친 것이 스페인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15~16세기 발렌시아의 러스터웨이. 러스터웨이는 투명한 유약을 바른 상회기법의 도자기다. 러스터의 기술을 전해준 것은 중국으로,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잡힌 수많은 포로 중 투후안이라는 도공과 그의 동료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이후 1953년 야드로 가문의 후안, 호세, 비센테 삼형제는 발렌시아 알라세라 마을에 있는 그들의 집에 무어식 가마를 만들고 첫 작품을 만들었다. 이들 삼형제는 타일과 도자기 그릇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그들의 예술적 관심을 키웠다.

공방 초기 그들은 화분과 물통 등을 만들었으나 1956년부터는 도자 조각과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8년 현재의 야드로 공장이 있는 타베르네스 블랑퀘스 지역으로 공방을 옮기며 본격적인 야드로의 신화가 시작된다. 이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또한 기술적으로 3단계로 이루어진 도기 굽는 방식을 1단계로 줄임으로써 크리스털 같은 섬세한 마감 처리와 파스텔톤의 색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1962년 비약적 성장에 힘입어 ‘야드로’는 삼형제의 경험과 창조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65년 야드로는 캐나다에 수출을 시작했고, 마침내 1969년 야드로 형제가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야드로는 세계화에 성공하며 세계 최고의 피겨린 생산업체가 된다.

스페인의 자존심이 된 야드로 가문의 도자기 작품. 발렌시아의 야드로 박물관에 전시된 ‘피겨린’, 미국 진출의 신호탄이 되었던 ‘양치기 소녀’, 흙 고유의 색을 살린 따뜻한 느낌의 ‘그레스 라인 피겨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는 ‘돈키호테’ (왼쪽부터).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미국 진출의 신호탄이었던 <양치기 소녀>, 흙색의 <그레스>라인, 수백 송이 꽃들로 이루진 <계절의 꽃>라인을 비롯한 예술성 높은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야드로는 피겨린 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1980년대부터는 해외 사업을 성장시키고, 1990년대부터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확장을 계속한다.

특히 1991년에는 세계적인 걸작 예술로 인정받는 척도라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야드로 피겨린들이 선정되어 전시되었다. 이중 <18세기 마차>와 <돈키호테>는 영구 전시되는 영광까지 얻는다.

금과 도자 재료가 잘 조화를 이루는 ‘아기 인어공주’ 피겨린(왼쪽)과 야드로의 대표작인 ‘계절의 꽃’라인 피겨린. 도자기로 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층 전문화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2000년대부터 야드로는 아름다움과 기능성을 접목한 새로운 홈 데코라인에 집중한다. 조명기기, 목욕용품, 테이블 아트사업에 입성했고, 향기 컬렉션을 가정용 방향제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해 가면서도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은 지속해 ‘하이 포슬린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야드로가 가진 모든 기술과 예술성이 극대화되고 총집약된 이 작품들은 피겨린 심미성의 세계가 이토록 진화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대표작으로는 2006년 출시한 <나일강의 여왕>으로, 160cm가 넘는 대작이다. 야드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크다. 이후 2009년의 <일본의 왕과 왕비 히나>와 2010년 <인도 가네샤> 피겨린은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도 야드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새로운 실험을 지속하며 스페인 도자기의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

[MK스타일 주동준 기자 / 도움말 : 조용준(‘유럽도자기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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