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 향(香)의 의미와 우리나라 향의 역사

최초입력 2017.01.23 16:06:37
음력 정월 초하룻날.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다가오고 있다. 묵은 해를 내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설. 설빔을 입고 온 가족과 함께 전날 준비한 설음식을 절차에 맞게 차례상을 마련하여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우리 설날의 모습이다.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설 당일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차례는 향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이는 혼을 불러오는 절차라 할 수 있다. 분향(焚香)은 향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향을 피우면 조상신이 내려온다고 믿는 것이다.

정화와 기원의 의미를 갖는 향ⓒ MK스타일 / pixabay
차례와 제사의 풍습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찰을 방문하게 되면 법당 안에 향을 피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 육법공양이라는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육법공양이라는 것은 순서대로 쌀, 향, 꽃, 과일, 차, 촛불로 부처님께 올리는 여섯가지의 공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중 두번째 공양물인 향 공양은 자신의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희생이다. 그 연기는 덩어리가 되어 화합을 의미하며, 연기가 되는 것은 자유로움을 상징하여 해탈향이라는 궁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또한 마음을 깨끗이하는 정화의 의미로, 또는 기원의 의미로도 향을 사용하고 있다.

불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우리나라 향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즉 서기 450년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땅에 들어와 포교를 하며 중국에서 전래된 향을 백성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맑아지며 기원하면 소망을 이룰 수 있다” 묵호자는 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향의 사용은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주로 천연향료를 건조시킨 형태로 분말화시켜 찍어 바르는 형태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난초 향유를 초에 넣어 향내가 나게끔 했으며, 난초를 우려낸 물로 목욕을 하는 등 발전된 형태로 향을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의 조향사 격인 향장이라는 기술자가 생기고, 그들이 만든 향낭을 의무적으로 선비들과 관리들이 착용하게 했다. 또 상궁은 치맛 속에 줄향 노리개를 착용했고, 선비들은 향수로 머리를 감고 목욕까지 하는 등 조선시대에는 향의 문화가 생활 속에 깊숙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자칫 서양의 문화와 역사의 범주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향의 문화와 역사. 하지만 동양의 향에 대한 기여와 전파 또한 서양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유산과 많은 문헌들은 입증해 주고 있다. 비록 그 다양성과 흡인력은 동과 서가 다를 수 있어도 향을 소중히하고 사랑해온 점에서는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을 것 같다.

[MK스타일 이진욱 기자/도움말 : VOIR de Hwal(브아 드 활) 조향사 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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