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이해⑥] “변기도 작품” 뒤샹이 제시한 미적 개념

최초입력 2017.10.05 12:01:21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미술 작품을 평가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작품이 얼마나 미적으로 아름다운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고, 어떤 이는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숙련된 기술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기준으로 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작품에 담긴 미술가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기발하고 독창적인지에 중점을 두기도 하고, 그것을 만든 미술가의 명성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이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양하다. 특히 작품 속에 담긴 의미, 그것을 만들어낸 작가의 생각이 중시되는 현대 미술에서는 때로 아름답지 않아도 높은 가치를 지닌 미술로 인정받기도 한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 Wikimedia Commons


여기 미술관에 전시된 한 점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술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이라는 작품이다. 1917년 뒤샹은 뉴욕의 한 상점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구입하여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한 후 조각대 위에 눕혀 놓았다.

당시 뒤샹은 이 작품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하였지만 운영위원들의 반대로 전시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재 현대미술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뒤샹은 <샘> 외에도 병을 꽂아 두는 병걸이에 자신의 서명을 한 후 <병걸이(Bottle Rack)>(1914)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고,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얹어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1913)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뒤샹은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뒤샹의 <자전거 바퀴> 전시 모습, 뉴욕현대미술관 ⓒMK스타일


남자 소변기, 병걸이, 의자와 자전거 바퀴는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이다. 뒤샹은 일상의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와 미술 작품으로 만든 것을 ‘이미 만들어진’이라는 의미의 ‘레디 메이드(Ready-made)’라고 불렀다. 뒤샹은 일상적인 물건들을 미술에 사용하여 그것을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개념을 제시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현대미술 이전에는 미술가가 손으로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만이 미술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뒤샹은 미술가가 꼭 무엇을 그리거나 만들어 내야만 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뒤샹의 주장에 따르면 미술가가 무엇인가를 선택하여 거기에 예술적 의미를 담았다면 그것 역시 미술이 된다는 것이다.

뒤샹의 작품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이유는 물감이나 돌과 같은 미술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미술가가 손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가가 ‘생각해낸’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숙련된 기술로 오랜 기간 동안 만들었다고 해서 그 작품을 꼭 명작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현대미술에서 중시하는 것은 미술가의 ‘아이디어’다. 이 개념을 100여 년 전 마르셀 뒤샹이 제시하였다.

뒤샹 이후에도 그를 이은 시도들은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는 다니엘 스포에리라는 미술가가 자신의 식탁에 놓인 그릇과 음식을 있는 그대로 벽에 붙여 ‘현실을 포착’한 작품이라고 했고, 1990년대에 트레이시 예민은 자기가 자던 침대를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 놓기도 했다.

사람들이 쓰던 여행가방(왼쪽)과 버려진 문짝을 이용한 현대미술 작품, 2016 아트바젤 전시 전경 ⓒMK스타일


뒤샹은 예술적 아이디어를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 진부하거나 대량생산된 물건들도 미술 작품이 될 수 있고, 꼭 아름답지 않아도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나타냈다. 이는 관습적인 미(美)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전통적인 미술품 제작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뒤샹의 미술 개념은 이후 일상적인 요소를 작품에 반영한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작품 제작 방식, 개념미술 등에 영향을 끼쳤다.

[MK스타일] 글 / 임민영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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