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책세상] 제자리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가”

최초입력 2018.01.09 15:08:51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경찰은 박 처장(김윤석 분) 주도 하에 시신의 화장을 요청한다. 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 검사였던 최 검사(하정우 분)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경찰은 서둘러 쇼크사라고 발표한다.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이 분명함을 말해준다. 사건을 취재하던 윤 기자(이희준 분)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였다고 보도하고, 마침내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 의해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영화 <1987> 얘기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허구가 아니라 1987년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쿠데타로 부당하게 권력을 쥔 군인들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짓밟고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젊은 대학생을 강제로 연행하고,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87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탄압했다. / 영화 <1987>


<논어> 자한 편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중병으로 자리에 눕자 제자인 자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스승의 장례를 국장에 버금가는 형태로 치르기 위해 다른 제자들에게 가신(家臣)의 지위를 부여한다. 가신은 대부 계급 이상이어야 둘 수 있었는데, 사(士)의 신분이었던 공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공자는 과거 노나라 대부를 지냈지만 현직 대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승의 장례를 대비해 가신을 두겠다는 자로의 생각은 예에 어긋날 뿐 아니라 공자의 기본 정체성을 속이는 것이었다. 공자는 병중에도 자로를 엄히 나무란다.

“오래 되었구나, 자로가 속임을 행한 지가! 가신을 둘 수 없는 사람에게 가신이 있는 척하게 하다니. 내가 누구를 속이겠느냐? 하늘을 속이겠느냐? 나는 가신의 손에 죽는 것보다 차라리 너희 손에 죽는 것이 더 낫겠구나. 비록 내 장례가 성대하지는 못하더라도 길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공자는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기본을 망각하지 않았다. <논어>에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군인이 권력을 넘보고, 재벌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넘보고, 학생이 스승을 넘보면 정의는 무너진다. 권력분립을 기초로 성립되는 민주주의에서도 대통령이 입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거나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면 정의가 무너진다.

결국 하나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정의다. / unsplash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 <논어> 안연 편 중에서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박영규 (‘다시, 논어 : 논어에서 찾은 열 가지 정의의 길’ 저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